유리감옥 –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

유리감옥바야흐로 인간을 도구처럼 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도구를 인간처럼 대하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 이야기는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에 당신이 누리게 될 자동화된 세상의 혜택과 그 뒤에 숨겨진 위험에 관한 것이다. 동시에 앞으로 당신이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과 의미를 가지는 존재로 남게 될지에 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이다.

도구에 관한 이야기이니, 먼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기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그것은 역시 자동차가 아닐까. 자동차 운전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당신은 내비게이션navigation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운전했는지 기억나는가. 내가 맨 처음 자동차 운전대를 잡기 시작한 15년 전만 해도 지도책은 운전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어느 차에나 조수석 앞 수납함에 한 권씩은 꼭 있었다.

운전을 위해서 지도책을 활용하는 방법은 거시적인 수준에서 미시적인 수준으로 이동하는 단계적 과정을 거친다. 먼저 가고자 하는 곳이 있다면 지도책의 목차에서 그 해당 도시의 페이지를 찾는다. 그리고 도시 전체를 보여주는 지도에서 원하는 지역을 자세히 확대한 페이지를 찾는다. 지도에는 가로와 세로로 격자선이 그어져 있고 격자선 마다 세로와 가로에 각각 알파벳과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지구본의 위도, 경도와 같은 개념이다. 이를 이용해 페이지, 알파벳, 숫자의 조합으로 원하는 위치를 찾을 수도 있다. 그렇게 찾은 출발지와 목적지는 보통 다른 페이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출발지부터 시작해서 주행로를 예상하며 지도를 살펴보다가 페이지의 모서리에 맞닿으면 다음에 이어지는 페이지를 찾아서 계속 눈으로 따라가며 목적지까지 집중하며 지도책을 이리저리 넘겨야 한다.

오늘날은 그런 식으로 지도를 살펴가며 운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요즘 운전자들은 일체형 또는 부착형으로 된 내비게이션을 사용한다. 혹은 나처럼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을 사용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우리는 이처럼 지도를 펼쳐보기 보다는 내비게이션이라는 자동화된 도구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는데 더 익숙하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이 어떻게 바뀔까. 머지않은 미래에 자율주행자동차 즉 차량에 탑승한 사람이 원하는 위치만 입력하면 그 이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자동차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지나갈 경로조차 신경 쓰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이다. 예전에 사람이 지도를 참고하여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자 한다면 각종 지형 지물에 대한 고려를 해야 했다. ‘공원을 끼고 우회전을 한 후 학교가 있는 언덕을 넘어가고 그다음 주유소가 있는 사거리에서 직진’하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가 사는 3차원적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반응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오늘날 내비게이션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가는 길, 그것도 기계가 알려준 길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가 선으로 이루어진 2차원적 사고로 퇴행했음을 의미한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일상화되면 2차원적 사고마저 쓸모없어진다. 그야말로 출발지와 목적지 두 점만을 고려하는 1차원적 사고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계에게 많은 일을 맡기는 현대 사회의 단면의 한 예에 불과하다. 사람들에게는 기술의 자동화가 인류에게 생각과 노동으로부터 해방을 선물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습관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앞으로는 기계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가에 삶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모든 기술은 양날의 검과 같은 특징이 있다. 자동화가 인류에게 혜택 뿐 아니라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세계적인 디지털 사상가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의 신작 <유리감옥 원제 : The Glass Cage | 니콜라스 카 지음 | 이진원 옮김 | 한국경제신문사 | 2014년 09월 12일 출간>은 자동화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든 수작이다. 지난주에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같은 저자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원제 : The Shallows | 니콜라스 카 지음 |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5년 01월 09일 출간>에서 우리는 인터넷이 사람들의 사고력을 저하시키고 결과적으로 산만하게 만들 수 있음을 살펴본 바 있다. 이번에 저자는 <유리감옥>을 통해서 자동화가 사람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본다. 간단히 핵심을 전하자면 자동화로 인하여 우리가 기술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화 기술이 없던 시대에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의 능력들이 퇴화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이어서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이 책의 번역에는 개선의 여지가 무척 많아 보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두 눈을 부릅뜨고 거듭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원문을 찾아봐야 할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어쩌면 이 책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번역은 일부러 자동화된 번역을 흉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동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몸소 보여주려는 번역가의 배려이겠거니 생각하니 세상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보였다. 아무튼, 불편하고 어색한 번역체는 책을 읽는 내내 거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만큼은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가치를 느끼게 했다.

유리_감옥책의 전반부에서는 자율주행자동차, 로봇, 자동화된 비행기 조종, 의료 분야에서의 자동화 등 현재 도입되었거나 도입이 예상되는 다양한 자동화 기술들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서 자동화에 대체될 인간의 일자리 문제를 살펴본다. 한편, 자동화에 의존하다가 기억력, 숙련된 기술 그리고 대처능력까지 저하된 인간의 모습도 비춰본다. 저자는 자동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직관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후반부에서는 ‘과연 누구를 위한 자동화’인지에 관하여 고찰한다. 자동화를 속수무책으로 맞이하기보다는 깊은 고민과 성찰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나는 저자의 후반부 메시지에 깊이 공감한다. 자동화의 주도 세력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자동화를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관심사는 당신의 행복보다는 그들 자신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자동화 기술을 만드는 기업들의 목적은 결국 그 기술을 통해서 더 많은 이익을 거두는 것이라는 냉혹한 사실이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 시대의 자동화의 다른 모습을 들고 싶은 것이 있다. <유리감옥>을 다 읽은 후 퇴근길에 항상 지나쳐가던 대형 마트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전혀 상관없는 것 같지만, 우리 일상으로 파고든 대형마트에는 자동화의 다양한 요소가 녹아있다.

첫째, 생각의 부담을 줄여준다. 이는 고객과 점원 두 가지 입장에서 나타난다. 고객 입장에서는 체계적으로 구성된 매장에서 효율적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찾기 쉬울 뿐 아니라 예상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편리함과 유사하다. 한편, 이전에는 각자 작은 가게의 주인들이었을 사람들이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경쟁이 안되자 자신의 사업을 접고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는 점원이 된다. 업무는 단순해졌고 고용주 입장에서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인력이 넘쳐나기 때문에 비싼 급여를 주지 않아도 된다. 이는 자동화된 로봇들 때문에 숙련된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그나마 남은 일자리도 단순히 로봇을 관리하는 작업으로 전락한 모습과 흡사하다.

둘째, 노동의 부담도 줄여준다. 라면을 사기 위해 동네 슈퍼를 가고 망치를 사기 위해 철물점을 가지 않아도 된다. 대형마트에 가면 다 있다. 여러 제품들이 한자리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건물 하나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차를 끌고 와도 편하게 주차할 수 있다. 이것은 각종 물건들이 알아서 집 근처에 모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달리 손쓰지 않아도 알아서 준비된다는 측면에서 자동화의 성격을 갖고 있다.

셋째, 비용을 줄여준다. 생각과 노동의 불편을 덜어주는 것에 더해서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서 써야 하는 돈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이것에 반론의 요소가 있음을 알지만, 기본적으로 박리다매가 가능한 대형마트의 특성상 기존의 구멍가게나 재래시장에 비해서 저렴하게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는 자동화가 가져오는 효율성에 의한 비용 절감과 맥이 닿아있다.

결과적으로 대형마트에 익숙해진 우리는 예전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형마트가 없던 시절이 어떠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마치 우리가 자동화에 익숙해지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내비게이션을 쓰던 사람이 다시 지도를 보고 운전할 수 없게 된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그것에 종속된다. 저자의 말마따나 무엇을 배우는 것보다 이미 배운 것을 쓰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자율주행자동차 때문에 운전하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직 시간이 남은 이야기이다. 그보다는 이미 우리 생활에 익숙해진 대형마트를 분별 있게 활용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적인 과제이다. 그러고 보니 퇴근길에 보는 대형마트의 모습 그 자체가 말끔한 유리로 이루어진 것이 마치 유리감옥을 연상케 한다.

편리함의 이유로 누군가 우리 주위에 설치한 유리감옥들에 익숙해져 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익숙함이라는 유리감옥을 과감히 깨뜨리고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지혜이다. 초등학교 앞의 과속방지턱처럼, 불편함은 때로 우리가 모두 공존하는 데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유리감옥 –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에 대한 6개의 생각

  1. 저도 읽고 읽는데 많이 공감합니다.
    항상 좋은 글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여주심에 늘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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