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가지 고민 가운데는 그 무게가 너무 큰 나머지 선뜻 직면하기 어려운 주제들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 모두가 언젠가 틀림없이 맞이하게 될 ‘죽음’이 그러하다. 오늘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당신은 가까이는 백 년 후 아니면 그보다 더 나아가서 만 년 후나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SF 영화처럼 이 세상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가 아니다. 당신 자체에 관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만 년 후 당신은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을까. 그리고 당신의 소중한 가족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나는 아주 어릴 적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내가 타고 있는 이 그네처럼 나는 다시 삶의 처음 순간으로 돌아가서 무한반복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음 생이 있어서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저 구름 너머 어딘가에서 두둥실 떠다니며 지내고 있을 것인가.

이어서 나는 이런 상상을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두뇌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내가 죽고나서 두뇌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과연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라면 그때 나는 어떤 기분일까. 꿈을 꾸는 기분일까. 아닌데. 꿈을 꾸는 것도 두뇌가 있기 때문일텐데. 혼란스러웠다. 결국 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는 내가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맞겠다. 그때마다 나는 내게 엄습해오는 공포를 느꼈다.

세월이 흘러 20대가 되었을 때 나는 이런 공포감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것은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훗날 내가 죽게 되면 ‘나의 영혼이 나를 떠난다’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에 따르면 가족을 비롯한 소중한 이들은 세상에 남게 되고 나는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생각을 살짝 바꾸어보았다. 죽음을 ‘나의 육체가 나를 떠나는 것’이라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통해서 죽음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약간의 평안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끝나고 나 자신을 인식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밀린다는 엄연한 미래에 대해서는 여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한 번민이 해소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오래도록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껴왔다. 한편으로 죽음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는 분명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인류 역사상 모든 문화와 종교의 궁극적인 주제는 죽음에 대한 공포의 극복이 아니던가.

그러던 중 나는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줄 것 같은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가 직설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 원제 : Death | 셸리 케이건 지음 |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21일 출간>였다. 정말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는 말인가. 나는 이 책을 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원제는 Death, 말하자면 죽음 그 자체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은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20년 가까이 죽음에 대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 책도 그 강의의 내용을 근간으로 쓰여졌다. 저자는 <정의란 무엇인가 원제 : Justice | 마이클 샌델 지음 | 김명철 옮김 |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20일 출간>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처럼 이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두 사람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셸리 케이건은 죽음에 대한 주제에 대해서 탄탄하면서도 일면 무미건조한 논리전개로 접근한다. 이 글의 시작에서 내가 죽음을 감정의 대상으로 다룬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 대중들에게 죽음이란 주제는 공포라는 강력한 감정의 대상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죽음에 대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저자의 시도는 단연 빛난다고 하겠다.

먼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기 전인 이들을 위해 밝혀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보기에 저자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번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만약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어내고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을 얻기 위해서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저자는 심리상담가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죽음을 다룬다. 책 표지에 적힌 ‘오직 이성과 논리로 풀어낸 죽음과 삶의 의미’라는 문구는 그냥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철저한 철학적 사유와 논리 전개로 죽음이란 주제를 파헤친다. 책이 처음에는 다소 냉정하고 딱딱하여 쉽게 읽히지 않을 수 있지만 저자의 논증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것이 바로 철학적 사유의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란_무엇인가저자는 죽음이란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 우선 삶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한다. 우리 인간의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관한 두 가지 시각을 정리한다. 그것은 물리주의와 이원론이다. 쉽게 말해서 물리주의는 ‘인간이 육체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영혼은 없다’는 것이며, 그에 반해 이원론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류 종교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원론적 입장에서 삶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일관되게 물리주의적 입장을 옹호한다. 저자는 이원론자들의 주장을 하나씩 언급하며 이것들이 타당하지 않음을 논증하고 결론적으로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저자는 죽음이란 것이 있기 위해서는 ‘존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어서 ‘나’라는 존재의 실체에 대하여 정리한다. 쉽게 말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그 존재의 소멸을 죽음으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존재의 후보로 육체, 영혼, 인격의 세 가지를 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는 이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존재의 실체로 결론내리지는 못했다. 결국 저자는 죽음이란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고, 그때는 ‘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라고 정리한다. 존재의 실체가 육체, 영혼, 인격 가운데 어떤 것인지 명확히 지정하지는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저자는 물리주의와 이원론에서 시작하여 존재에 대한 규명에 이르기까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한 기초 지식들을 먼저 정리하였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책의 절반 가까이를 할애한다. 그리고 책 중반부터는 드디어 ‘죽음’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죽음의 개념을 살펴보고, ‘죽음은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는 죽음의 가치와 기회비용을 살펴본다. 죽음을 슬프고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는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죽음이 개인과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의 졸업식 축사에서 말한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란 말이 떠올랐다. 이어서 저자는 ‘영원한 삶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영생은 가능한지,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모든 주제들이 흔들림 없이 탄탄한 논리전개 아래에서 진행되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지적 자극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죽음에 대한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일지 다룬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삶의 종착지를 앞두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할지 ‘철학적 해답’을 제시한다. 한편, 삶의 태도 가운데 극단적인 한 예로써 삶을 스스로 중지시키는 행위, 즉 자살에 대해서 언급한다. 저자는 자살이 죽음에 대한 사람의 인식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살펴보고,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정당한 선택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저자가 일관되게 냉철하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죽음을 다루었지만, 에필로그에서는 저자가 본문에서 못다한 죽음의 감정적 측면의 내용을 다룬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서 공포로 움츠러들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죽음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란 흔한 비유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모든 여행은 끝난다. 하지만 여행이 끝날 것을 미리 걱정하며 여행에서의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과 만남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여행 중에는 미련과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그 시간을 소중히 써야한다.

여행 중에 ‘아 여행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그것만큼 부질없는 일도 없다. 우리의 삶과 죽음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5개의 생각

  1. 아! 그렇군요. 존재는 무기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이 있고 삶은 유기적인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제가 갖고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삶이 있으면 존재가 분명히 있지만 존재한다고 삶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지요. 예로 돌멩이는 존재하지만 삶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돌이 오랜 세월을 지나며 부서져 흙이 되는 과정을 돌의 삶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자는 유기적인 존재와 삶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요. 그래서 다른 예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 사람이 식물인간이 되어 생명연장기기의 도움으로 겨우 숨쉬고 심장이 뛰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 사람은 분명히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감성과 영혼이 어우러지는 삶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자의 논리를 따르면 이 사람에게도 삶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요. 그런데 되 돌아서 삶의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결론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 아, 골치 아프네요. 삶과 존재에 대한 정의는 역시 어렵군요. 죽음까지 가기도 전에 걸려버렸습니다.

  2. 저자의 논리에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이원론자들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논증하고 영혼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존재의 후보로 육체, 영혼, 인격을 들었다고 하였는데 앞서 내린 결론과 대치된다는 생각입니다. 삶과 존재를 전혀 별개로 본다는 뜻인가요?

    1. 충분히 혼동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주의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반하여 이원론은 육체와 영혼의 존재를 모두 인정하는 관점입니다. 또한 이어지는 존재의 실체에 대한 설명 즉 육체, 영혼, 인격에 대한 논의는 앞서 말한 물리주의와 이원론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존재’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삶과 존재를 전혀 별개로 두고 논의를 이어간다고 해도 틀린 해석은 아닐 것 같습니다.

      1. 책을 읽지 않고 이렇게 질문을 드리니 답답하시겠지요? 삶 가운데 벌어지는 모든 감성적인 부분을 물리적 현상으로 본다는 이야기인가요? 저자의 논리에 동의한다면, 제 소견으로는, 삷과 존재의 정의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삶과 존재 이 두 단어의 어감을 혹시나 혼돈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1. 답답하다니요. 그렇게 생각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자에 따르면 감성적인 요소의 기원이 물리적인 부분에서 기원한다고 보는 것이 물리주의이고, 영혼과 같은 비물리적인 요소에서 기원한다고 보는 것이 이원론입니다. 달리 설명하면 감성을 물리적인 요소로 보면 물리주의, 아니면 이원론입니다. 또한 존재라는 것은 삶을 영위하는 대상으로 삶 자체와는 별개 개념이고요. 저는 그렇게 이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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