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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 전국시대戦国時代 말엽을 대표하는 세 명의 정치가가 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 家康가 그들이다. 이들에 관해서 전해 내려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에도시대江戸時代에 쓰여진 고전시가 중 하나인 ‘갑자야화甲子夜話‘가 그 출처로,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이들 세 사람의 성격을 다루고 있다.

세 사람 앞에 울지 않는 뻐꾸기가 있다. 이를 울리기 위해서 세 사람은 각각 어떤 방법을 썼을까. 오다 노부나가는 뻐꾸기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뻐꾸기가 울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인데 그는 뻐꾸기가 울 때까지 그저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세 사람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뜻이 무엇인지 와 닿는다. 잔혹한 오다 노부나가가 통일의 기반을 닦지만, 꾀가 많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체를 통일한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어버린다. 결국, 마지막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앞서 두 사람이 통일해 놓은 일본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손에 넣는다. 말없이 기다린 자가 결국 모든 것을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말을 삼가고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는 것의 중요성을 역사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시선을 지금의 우리 주변으로 돌려보자. 오늘날은 어디를 가나 말이 넘쳐 난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어 많은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이 성공의 필수 요건이 되었다. 이름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연예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기보다 TV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쳐서 유명세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정치인들은 민생을 살피는 것 보다 자신의 말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더 큰 관심을 둔다. 한편, 말 자체가 목적인 SNS는 새로운 유행이 되었다. 사람들은 가상세계에서 몇 명의 친구나 추종자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로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처럼 말은 넘쳐 나는데 정작 꼭 해야 할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세상의 부조리한 면을 마주해도 이해관계를 따져서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으면 눈을 감거나 피하기 바쁘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에서 세상을 깨우는 참된 말이 나오는데, 정작 그런 말보다는 겉모습을 포장하거나 남을 깎아내리는 말만 넘쳐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제목 하나만으로 손이 간 책이 있다. ‘43일간의 묵언으로 얻은 단순한 삶’이라는 부제가 달린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편석환 지음 | 시루 | 2015년 06월 22일 출간』가 그것이다. 이 책은 광고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저자가 어느 날 목에 문제가 생겨 말을 할 수 없게 된 후 겪게 된 경험을 담고 있다. 남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 스스로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저자는 43일간 회복을 겸하여 소위 ‘묵언 수행’에 도전하고 날마다 경험과 느낌을 글로 남겼다. ‘묵언 수행’이란 정해진 기간 말을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주로 불교에서 하는 수행 방법의 하나이다.

저자는 처음 묵언 수행을 시작할 때 만만치 않은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한다. 특히 6일째, 가족으로부터 묵언을 중지하라는 요청이 그러하다. 그리고 15일째에는 문득 SNS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나며 좋은 점이 불편한 점보다 훨씬 많았다고 고백한다. 묵언 수행을 시작하니 남과 다툴 일이 없어졌고 오히려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저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요점은 말을 줄임으로써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되고 자신 안의 소리에 집중하니 비로소 다른 이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말을 줄인 것이 생각할 여유를 가져온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에 비추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그리고 우리가 말을 하는 행위에서 개선할 점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먼저,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말의 목적을 알아야 실제로 우리가 그 목적에 맞게 말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말의 목적 가운데 가장 큰 두 가지는 ‘설득을 위한 수단’과 ‘소통 자체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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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설득을 위한 수단’으로써 말하기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상대방의 행위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말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효용을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하는 말보다는 자기 자신의 말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남에게 아무리 열심히 말하며 설득해도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득을 하기 위해서 말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남을 설득하고 싶을 때 말보다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실천한다. ‘보여주기’, ‘듣기’, ‘기다리기’가 그것이다.

첫째, ‘보여주기’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나부터 행동에 옮기는 것을 뜻한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을 아무리 남에게 듣기 좋게 이야기해도 그 말에 힘이 실릴 턱이 없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들에게 아무리 출근 시간에 늦지 말라고 구슬리고 때로는 윽박질러도 상사 본인이 지각한다면 직원들은 그 상사 말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뒤에서 수군대며 험담만 할 것이다. 반면, 상사 본인이 아침마다 다른 직원들보다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그 상사가 굳이 직원들에게 출근 시간을 지키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지킬 것이다.

둘째, ‘듣기’이다. 당신이 매일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꺼내보자. 위쪽에는 스피커, 아래에는 마이크가 달려있을 것이다. 혹시 스피커가 망가져서 오로지 마이크 기능만 남아있는 휴대전화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그것은 더는 휴대전화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화의 시작은 듣기이다. 그리고 듣기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정보를 당신에게 전달해주는 가장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듣기가 우선되어야 한다.

셋째, ‘기다리기’다. 시간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앞서 살펴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내와 기다림이 상대방으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상대방의 마음이 변할 때도 있지만 내 생각이 변할 때도 있다. 자기 자신이든 상대방이든 누군가 변한다면 기다림은 그 자체로 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처럼, 말을 앞세우는 것보다 ‘보여주기’, ‘듣기’, ‘기다리기’를 실천하는 것이 상대방을 설득할 때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안다. 오히려 설득을 그 본연의 목적으로 하는 말 자체보다도 말이다.

이어서 말의 또 다른 목적인 ‘소통 자체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트위터Twitter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흥미롭기는 한데 전혀 유용하지는 않다.”라는 반응이 있었다. 이에 트위터의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Evan Williams는 “아이스크림도 유용하진 않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말에는 기능적 요소 외에 감성적 요소도 있으며 이를 ‘소통 자체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기술 발전의 흐름을 살펴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소리를 통한 말을 적게 해도 되는 환경이다. 카톡은 음성 대화의 상당 부분을 대체했다. 은행계좌번호처럼 정확한 숫자를 전달하고 싶을 때 통화 대신 카톡을 활용한다. 직접 대화로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운 경우도 카톡은 유용한 도구다. 한편, 구글Google 검색 덕분에 사람들은 궁금한 것을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검색창에 단어만 입력하면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담겨있는 지도도 좋은 예가 된다. 이제 더 이상 낯선 곳에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볼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음성인식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이 말로 기계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계에 대한 입력 방식의 변화이다. 사람 사이에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던 내용의 상당 부분이 텍스트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우리는 더 이상 음성으로 된 말을 통하지 않고도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글을 쓰고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의 발달로 말미암은 부분이 크다. 이는 우리가 ‘소통 자체의 즐거움’도 음성으로 된 말이 아닌 글로 실현 가능함을 의미한다. 글을 통한 소통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블로그이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단발적인 말소리가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여 신중하게 글로 써내려가는 블로그는 그 자체가 ‘소통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이때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앞서 언급한 ‘듣기’의 중요성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에서 ‘듣기’가 중요한 것처럼 블로그를 쓸 때도 ‘듣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블로그에서 ‘듣기’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각 글 아래의 댓글이다. 그래서 나는 내 블로그에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지면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이 글 아래의 댓글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의 의견을 듣고 소통이 시작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말 대신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가져오는 무시 못 할 순기능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위선을 예방하는 것이다. 휘발성 강한 말과는 다르게 글로 남긴 것은 오래도록 남아서 언제든 다시 확인해볼 수 있다. 이는 글쓴이로 하여금 남긴 글을 실제로 지키게 하는 큰 동기가 된다. 사실 내가 블로그로 글을 남기며 사람들과 나누는 것에는 나 자신이 위선적으로 살지 않고자 하는 의지도 반영되어 있다. 내 생각이 글로 표현되어 세상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나를 직접적으로 아는 이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이 읽고 갔는데 어떻게 이와 어긋나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오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오늘은 묵언 수행을 주제로 한 책을 통해서 말을 줄이고 생각을 늘리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말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설득’과 ‘소통’에서도 말을 대신할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대안이 말 자체보다도 ‘설득’과 ‘소통’이라는 목적에 훨씬 충실할 수 있다는 것도 살펴보았다.

요컨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져오는 장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그러니 살다가 말에 지치는 때가 오면 묵언 수행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의 10개의 댓글

  1. 제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노년을 아름답게 보낼려면 이제 부터는 듣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오늘 또한편의 좋은글과 함께
    서평까지 읽게 되었네요~
    필요없이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나
    나쁜말을 해서 남에게 피해는 주지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1. 정말 귀한글이네요.
      나를돌아보며 더깊이생각하는시간이되였습니다.듣기,기다리기에많이신경쓰며살고있는데그것이제뜻대로안되네요.
      신승건님의글을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3. 매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꾸준하게 업데이트되고 있어서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주의 책도 기대가 많이 되는군요. 즐거운 일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4. 말을 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동물 이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침묵도 하나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속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해서 인지 생동감있게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5. 감사합니다~
    성찰이 담긴 제게 필요한 글인듯 합니다.
    생각해보니 말하기나 글쓰기가 세상이나 상대를 위한, 상대와 뭔가를 상호작용하는 면도 있겠지만 자신의 배설이나 위장, 방어를 위한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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