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시대, 인간의 일

로봇시대 인간의 일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겨울, 나는 며칠째 컴퓨터에 음성 명령을 가르치는 작업에 빠져있었다. 당시 내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에는 당시로써는 최첨단 기술인 음성 명령 인식 기능이 있었다. ‘시작’, ‘확인’, ‘취소’, ‘실행’과 같은 간단한 명령어를 이해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다. 요즘과 같이 문장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주위에 소음이 날 만한 것들을 모두 없애고, 혹여 발음이 흔들릴까 봐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컴퓨터에 말을 가르쳤다. 사실 그냥 키보드를 치거나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이 훨씬 편했다. 하지만 내가 말할 때마다 모니터에 음파 그래프가 움직이면서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그것은 컴퓨터라기보다는 마치 강아지에게 “앉아! 일어서!”를 가르치는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오늘날, 내가 어디를 가나 가지고 다니는 아이폰iPhone에는 음성 인식 비서 기능인 시리Siri가 탑재되어 있다. 홈버튼을 1초 이상 누른 후 음파 표시가 나타날 때 “아내에게 전화 걸어줘.”라고 말하면 곧바로 아내와 연결된다. “내일 날씨 알려줘.”라고 말하면 내가 있는 지역의 내일 날씨를 마치 사람이 알려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요약해서 말해준다.

아직도 완벽하지 않은 음성 인식 기능이지만 20년 전 조심스럽게 명령어를 말해서 겨우 한 번 실행이 되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변화시켜 주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의 발전이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2015년 4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의 칼 프레이Carl Frey 교수와 마이클 오스번Michael Osborne 교수가 발표한 <창의성 대 로봇Creativity vs Robots>이란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직업군 가운데 47%가 10~20년 이내에 컴퓨터와 자동화로 줄어들거나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고 한다. 특히 위험에 놓인 분야는 교통, 물류, 제조, 건설, 사무 행정 분야이다. 우리 주변에 부모 형제자매들이 종사하는 평범한 일들이 대거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부분 의사들은 아직 잘 인식하고 못하고 있지만, 내가 종사하고 있는 의료계도 이러한 기술 발전의 파도 앞에 안전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IBM의 왓슨Watson이라는 슈퍼컴퓨터가 수많은 의학 논문과 임상 사례를 습득하여 이를 토대로 가장 최적의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이미 실용화 단계에 와 있다. 무엇보다도 그 치료 성적이 인간 의사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의사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유식하고 똑똑한 로봇이 제시해주는 몇 가지 선택지 안에서 습관적으로 진단과 치료법을 선택하게 될 것이고, 점점 그것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종 판단은 의사의 몫이라는 이유로 컴퓨터는 몇 가지 유력한 진단과 치료법을 제시하는 형식을 취하겠지만, 의사들은 큰 고민 없이 컴퓨터가 가장 추천하는 선택지를 고를 것이다. 이처럼 의사의 업무가 로봇 덕분에 단순화된다면, 이는 결국 의사의 존재 가치를 의심받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navigation을 사용할 때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내비게이션은 몇 가지 경로를 함께 제시하지만 우리는 거의 예외 없이 최단 시간이 걸리거나 최단 거리를 거치는 경로를 습관적으로 선택한다. 기계를 신뢰하는 것이 습관화된 이상 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다른 직종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요즘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고용 없는 성장’이다. 이러한 추세는 로봇이 점차 실용화됨에 따라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로봇 시대, 인간의 일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1월 출간>은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쓰여졌다. 저자는 다가올 로봇의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로봇이 재편할 직업의 미래, 대학의 몰락과 새로운 지식의 구조, 감정인식 로봇과의 교감이 바꿔놓을 인간관계 등 우리가 로봇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마주하게 될 상황을 살펴본다. 하지만 로봇 시대에 우리가 직면해야 할 문제는 정해진 답이 없는 복잡한 딜레마 더미라는 점을 알게 된다.

저자는 로봇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진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작은 실마리를 제시한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묻고 모색하는 것, 새로운 질문을 품게 하는 것, 이것이 저자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방식이다.

future-175620_1280말하자면, ‘로봇시대 우리 인간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가 생각할 것은 ‘로봇과 경쟁해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니다. 로봇이 참여하는 영역에서 로봇과 경쟁하는 것은 사람에게 승산이 없다. 로봇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그 영역이 로봇의 차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의 초점을 ‘로봇이 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은 무엇일까’와 ‘로봇이 번거로운 일을 해주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할까’로 바꾸어야 한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로봇시대에 우리 인간의 일은, ‘도덕적 감정’과 ‘여가의 활용’으로 귀결될 것이다.

우선 ‘로봇이 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으로 ‘도덕적 감정’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의료 영역에서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와 같은 주제는 로봇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로봇에게 맡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또한, 경제학에서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 즉 ‘도덕적 감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도덕적 감정’이란 것에서 나는 한 가지 깨닫게 된 바가 있다. 지금까지 나는 책과 경험을 통해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것을 업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나는 환자 개개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질병 너머에 놓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환자의 아픔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회복될 때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감정, 혹시라도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 그 가족과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감정, 그 감정이 인간 의사인 나는 가질 수 있지만 로봇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서, 로봇이 번거로운 일을 해주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할까’에 대한 답으로 ‘여가의 활용’을 들 수 있다. 저자도 앞으로 맞이할 로봇 시대에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삶의 질에 큰 격차를 가져오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교육기관이 ‘일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자유롭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중요시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여가 시간을 통해서 의미 있고 보람있는 경험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 또한 의사인 내 직업에 비추어보았다. 자동화 등으로 효율성이 극대화된 진료 환경 덕분에 많은 시간적 여유가 생길 것이다. 나는 이 시간적 여유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보았다. 의사로서 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답은 ‘의료 봉사’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답을 갖고 있다. 나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확보’하는 데 활용할 생각이다. 나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내게 가장 소중한 이들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인간으로서 인간답기 위해서 놓치지 않아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면 ‘도덕적 감정’과 ‘여가의 활용’이다. 이 두 가지 주제가 내가 책을 통해 얻은 핵심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겪은 일을 나누고자 한다. 나는 이 책에서 작은 오류를 발견하였다. 사실 오류라고 하기에도 미약한 편집상의 조그만 실수였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표현이 책 안의 두 군데에서 각각 아마존과 알리바바를 수식하기 위해 동시에 사용된 것이다. ‘세계 최대’는 하나일 수밖에 없는데 저자나 출판사가 편집 과정에서 작은 실수를 한 것 같다.

나는 책을 읽다가 오류가 발견되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저자에게 이를 알려준다. 그것이 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준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나는 이 책의 저자인 한겨레 신문사 구본권 기자의 이메일로 내가 찾아낸 오류를 보냈다. 그랬더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전작인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10월 출간>를 보내준다는 뜻밖의 답장을 보내왔다. SNS가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을 다룬 책으로 전부터 독서 예정 목록에 담아두고 있던 책이라 저자의 호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한 독자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수정에 반영하겠다는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다.

아마 저자가 로봇이라면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진 못하였을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역시 책만큼은 로봇이 아닌 인간이 써야 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느끼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조만간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를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게 될 것 같다.

“로봇시대, 인간의 일”에 대한 4개의 생각

  1. 좋은 리뷰 잘보았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이 로봇세상에서 발생한 ‘잉여 생산물과 시간의 분배’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작금의 신자유주의 세태처럼 생산자본(로봇)의 독점으로 부익부빈익빈이 더 심해진다면 로봇시대의 과실은 오로지 소수의 자본가들만 독점하게 되고 그 의미는 퇴색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 분배, 법규, 규칙, 합의 등을 이루어내는 정치적 업무가 인간의 주요 업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선정국이라 그런가 정치병일지도 모르겠네요 ㅋㅋ
    좋은저녁되세요

    1. 공감가는 의견입니다.
      한 마디 거들자면 정치적 업무란 것도 결국 그 본질은 옳고 그름에 관한 것, 즉 도덕적 감정의 영역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날 정치가 가장 훼손된 도덕적 감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2. 로봇은 program 된 대로 반복되는 일을 능률적으로 할 수 있지만 program 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모든 자동화 된 기기들의 성능은 hardware의 내구성 및 신뢰도, 그리고 programmer의 실력만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 a system is as good as reliability of hardware and ability of programmer. 지능 면에서 사람의 뇌를 대치할 만한 기능을 갖은 CPU가 나오기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Artificial Intelligence가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사람의 뇌에 비하면 창의력은 어린이 수준입니다. 그래서 programmer(software engineer)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1999년 Kosovo 전쟁 때 미국의 cruise missile이 엉뚱하게 중국대사관을 때려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인은 programming error. 로봇시대가 되면 programming error를 방지하는 일, 로봇이 실수하지 않나 감독하는 일, 이런 것들을 사람들이 하게 되지 않을까요?

    1. 로봇시대가 되더라도 그 로봇 자체를 관리하는 업무는 여전히 인간이 담당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로봇에게 대체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귀한 시간 글을 읽고 의견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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