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종말 –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

권력의 종말오늘날 전세계 15억명을 연결하는 세계 최대의 SNS 페이스북Facebook Inc., 하지만 모든 대단한 것들의 출발이 그러하듯 페이스북도 처음에는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에서 시작하였다. 페이스북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2000년대 초 하버드 대학교Havard University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미국의 대학교들은 인터넷으로 재학생들의 사진과 기본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즈음 나도 미국에 사는 사촌 누나가 다니던 워싱턴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름을 찾은 후 이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마치 재학생 명부를 인터넷으로 옮겨놓은 것과 같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재학생들의 사진과 학과 그리고 이메일 주소 등의 간단한 정보를 몇 번의 검색으로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인터넷으로 학생들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다른 대학교들과는 다르게, 하버드 대학교는 재학생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학생 정보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한편 학생들 간의 사교와 정보 교류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마크 저커버그Mark Juckerberg는 대학교측에 이런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정보 사용을 요청한다. 하지만 담당자는 이 요청을 거절한다.

이에 마크 저커버그는 대담한 선택을 한다. 하버드 대학교 전산 시스템을 해킹하여 재학생들의 사진과 기본 정보를 빼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재학생들의 사진을 비교하여 평점을 매기는 서비스인 페이스매쉬Facemash를 시작하였다. 훗날 페이스매쉬는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SNS 페이스북의 시초가 된다.

페이스북이 하버드 대학교라는 기존 권위에 대한 도전과 함께 시작해서였을까. 지난 1월 마크 저커버그는 ‘책의 해A Year of Books‘이라는 이름으로 1주에 책 한 권 읽기의 새해 목표를 공개하였는데, 그 첫 책으로 <권력의 종말 모이제스 나임 지음 | 김병순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02월 27일 출간>을 선정하였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연구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모이제스 나임Moises Naim이 지은 이 책은 정치, 경제, 금융, 미디어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존 권력과 이를 위협하는 작은 세력이 서로 맞붙어 싸우는 현상을 파헤친다. ‘오늘날 세계가 전통적으로 정부와 군대 같은 거대한 조직만 보유했던 권력이 개인들에게 더 많이 주는 쪽으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탐색하는 책’이라고 설명한 마크 저커버그의 말처럼 새로운 권력 세계에 대비하기 위한 조언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power오늘날에는 기존 권력의 피라미드가 붕괴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기존 권력을 위한 위계질서, 조직력, 자본 등이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존 권력의 바깥에 있던 작은 세력이 기존 권력을 위협하고 새로운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 유지하고 있는 현상을 다양한 예시와 함께 보여준다.

요컨대 기존의 왕들보다 현대 사회의 대통령 같은 최고권력자들이 점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 백악관이나 국방성과 같은 극소수 권력 집단이 원하는 대로 세계를 주무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수많은 비정부기구NGO, 시민 언론, 사회 단체, 해커,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을 비롯해서 심지어는 테러 단체 등에 의해 더 이상 독점적 권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비정부기구, 사회 단체와 같이 작지만 나름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새로운 권력의 참여자들을 미시권력micropower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미시권력이 출현할 수 있게 된 배경으로 세가지를 들고 있다.

첫번째로 양적혁명이 일어났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분명 과거보다 세상은 풍요로워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의식주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극빈층이 줄어들고 중산층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러한 풍요는 개개인의 삶에 여유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단순히 생존 이상의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두번째로 이동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사람들은 더 다양한 곳으로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발달로 굳이 직접 가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과거처럼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권력자들에게 불리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세번째로 의식혁명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더 지혜로워졌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 권위에 대한 복종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권위라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된다. 만약 어느 순간 그 추종자들이 등을 돌리면 권위는 설 기반을 잃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기존의 권위에 의문을 던지며 더 이상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게 되면 공고하던 기존 권력 체계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요컨대 보통 사람들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더욱 자유로워지고, 더욱 똑똑해졌다. 반면에 오래도록 사람들의 무지와 가난에 뿌리내려 살아가던 기존의 권위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저자는 이제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은 자라면 사람들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이 아닌 다수에 대한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들은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나 외교와 관련된 현실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턱밑까지 차올랐을 것이다. 그 생각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는 여기서 조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한다. 정치와 외교는 나보다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분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내가 책을 읽을 때 가장 마음 깊이 느낀 것은 다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내가 속한 의사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사람들이 의사에게 갖고 있는 인식을 살펴보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몇년전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조사에 따르면 의사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53.7%가 꼽은 ‘집단 이기적’이고 그 다음이 48.2%가 꼽은 ‘권위적’이다.

환자들이 이용하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의사들을 성토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하나의 맥락을 갖고 있다. ‘의사들이 많이 배운 사람들인 것은 알겠는데, 서비스 직종이면서 왜 이렇게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저자와 함께 살펴본 정치와 외교 분야에 일어난 변화에 못지 않게 거센 변화의 바람이 의료에도 불어오고 있다. 이 변화는 의사와 환자 그리고 보호자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정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권위의 붕괴가 다른 분야처럼 의료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 권위 붕괴는 의사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의사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고 의사들을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게 할 수도 있다.

의사의 권위 붕괴 현상이 일어난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이유를 알아야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저자가 말한 세가지 권력 붕괴의 배경을 기초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의료에서 양적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의사가 아닌 사람들도 의사들 이상으로 의학적 정보에 접근할 길이 많아졌다. 수많은 정보가 도처에 널려있다. 선택할 수 있는 의료기관도 양과 질 모두에 있어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되었다.

두번째로 의료에서 이동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값싸고 편리한 교통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이 더이상 가까운 의사들로 선택의 폭을 제한할 이유가 없어졌다. 게다가 조만간 원격의료가 시작되면 어느정도 남아있던 물리적 공간의 개념도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내가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는 ‘지리적 배타성’을 의사들은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 세번째로 의료에서 의식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의사에게 예전과 같은 무조건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의사라는 직업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과거에 사람들은 의사를 신의 대리인으로 대우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권위를 내세웠던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하였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의사들 모두가 과거의 구태의연함을 벗고 하루빨리 변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환자에게 권위를 휘두르려는 시도를 접으면 된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바대로 더 중요한 것을 갖출 수 있으면 된다. 그것은 바로 신뢰이다. 권위 대신 신뢰를 얻으려는 자세로 환자에게 다가간다면 그 어떤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사는 여전히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료의 중요한 참여자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권력을 ‘다른 집단과 개인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려운 정의다. 쉽게 말하면, 권력이란 ‘다른 이들을 원래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의사들은 환자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어루만지고 낮은 자세로 공감해야 한다. 그리하면 환자들이 가진 의사에 대한 반감도 사라질 것이다. 그 후 환자들은 의사를 진심으로 신뢰하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의사가 가질 수 있는 진정한 권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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