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돌아봐야 할 때

멈추어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돌아봐야 할 때우리나라의 아파트 단지가 대체로 그렇지만, 내가 어릴 적 살던 곳 근처에도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뒷산이다.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이면 잠에서 덜 깬 나에게 등산을 가자고 하였다. 일요일 아침마다 나는 어떻게든지 늦잠을 자려고 했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끌고 등산을 가려고 했다. 그리고 거의 예외없이 나와 동생은 뻑뻑한 눈을 비비며 아버지를 따라 뒷산의 등산로로 향했다.

그날도 그렇게 일요일 아침을 맞이해서 산을 오르던 중이었다. 지금과 같은 초겨울의 쌀쌀한 날씨였다. 등산로에 얕은 눈이 쌓였고 사람들이 밟고 지난 곳으로 듬성듬성 흙이 드러나 있었다. 길을 따라서 십여분을 걸으니 약수터가 나타났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체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약수터의 차가운 물로 목을 축였다. 잠깐 쉬다가 능선을 따라 난 등산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또 얼마간 가다가 잠시 쉬어가기 위해서 멈춰섰다. 그때 옆을 보니 우리가 걸어가는 등산로 왼쪽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리고 울타리 바로 안쪽의 작은 나무 팻말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곳은 사유지임.”

아버지는 잠시 걸음을 멈추시더니 그 팻말을 말없이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바로 앞에 놓여있던 주먹만한 돌맹이 하나를 집어 들고는 나에게 물어보셨다.

“여기는 사유지구나. 너는 그게 무슨 뜻인 것 같으냐.”

나는 아버지가 ‘사유지’라는 단어를 알게 하려는 취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쉬운 질문인듯 이렇게 대답했다.

“그야 뭐 주인이 있는 땅이란 뜻이겠지요.”

나의 대답을 듣고 아버지는 말씀을 이어갔다.

“그래. 누군가 이 땅의 주인이란 의미지. 하지만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아마 여기 놓인 돌맹이들 거의 대부분을 한번도 만져보지 못한 채 이 산의 주인으로서의 시간을 마감하게 될거야. 그리고 그 다음 누군가에게 주인 자리를 넘겨주게 되겠지. 그게 그 사람 자녀이건 아니면 새롭게 산을 사들일 사람이건.”

아버지는 시선을 손에 든 돌맹이로 옮기고는 계속 말씀을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 놓인 돌맹이 하나, 나무 하나조차도 만져보지 못하고 이 땅을 진정으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주인은 자신이 이곳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이 땅이 그를 잠시 잠깐 스쳐지나가는 것 뿐 아닐까.”

이날 아버지와 나누었던 이 대화는 내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후 내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켰다. 그날 나는 삶은 여행이며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horizon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 최근에 ‘느리게 더 느리게,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세가지 삶의 시간표’라는 부제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기 시작한 책 <멈추어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돌아봐야 할 때 쑤쑤 지음 | 김정자 옮김 | 다연 | 2015년 03월 07일 출간>는 오래 전 아버지와 나누었던 그날의 대화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책에서 저자는 인간을 ‘지구를 여행하는 나그네’라고 부르며 삶의 매 순간을 경험할 기회가 단 한번뿐임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적당히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경쾌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돌아보는 인생’을 소박한 이야기와 담백한 인생철학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집 앞에 피고 지는 꽃을 감상하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따라 걸어보며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보라 말한다. 반면에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성공 일색의 인생 노선을 내려놓기를 제안한다.

나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의 핵심적인 메세지를 나름대로 추려냈다. 그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후회가 없다는 것’과 ‘체면 치레와 허영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후회가 없다는 것’은 세상의 여행자로서 경험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소유보다는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중심에 두는 삶의 방식이다.

한편 ‘체면 치레와 허영에 빠지지 말자는 것’은 한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남의 시선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관점에서 이끌어가자는 의미다.

즉 전자는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삶의 자세를, 후자는 주관적이고 독립적인 삶의 자세를 뜻한다.

최근에 내가 겪은 경험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보겠다. 이 경험은 내가 아버지와 돌맹이에서 얻은 깨달음을 아직도 잘 지키고 있는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던 기회였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에서 내가 추려낸 두 가지 핵심 메세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후회가 없다는 것’과 ‘체면 치레와 허영에 빠지지 말자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

요근래 나의 블로그에 글이 쌓이고 점차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몇몇 언론사 등에서 칼럼을 기고해 달라는 요청이 그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솔직히 기분이 우쭐해지고 심지어는 유명세에 대한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한편으로 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요청에 답하기 전에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 블로그를 시작한 초심을 생각해 보았다. 애초에 이 블로그를 만들 때 ‘조용히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소박한 뜻 외에는 없었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진솔하게 생각을 나누는 것이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 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나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제안으로 부지불식간에 내가 그런 욕구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허영에 빠지는’ 내 모습을 발견한 순간 나는 처음 시작했던 지점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언론사 기고 등과 관련하여 얻을 수 있는 세속적 이점이 컸기에 고민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내 곁을 지켜주는 현명한 아내의 조언 덕분에 나는 언론사 기고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원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글은 오직 이 블로그에만 올리는 것으로 정리하며 처음의 소박한 마음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여행이다. 어차피 지나갈 이 모든 삶, 사사로운 것에 집착하지 말자.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질없는 욕구와 환상에 사로잡혀 하나뿐인 인생에 상처를 주지 말자. 이제부터는 무엇을 남길지보다 무엇을 경험할지에 관심을 두는 삶을 살아보자.

저자의 말마따나 ‘하늘에 날개짓을 한 흔적은 남지 않을지라도 당신은 이미 날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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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돌아봐야 할 때”에 대한 6개의 생각

  1. 생각이 반듯하시네요
    누구나 한번쯤 언론사기고는
    써보고 싶은 부분일텐데요..

    초심을 잃지않는 귀하의
    생각에 박수를 보냅니다.

    다음 서평도 기대됩니다…^^

  2.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벌써부터 칼럼 요청이 들어온다니 필력이 상당히 인정받는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조금 쌓이면 출판까지도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거절하셨다니 아쉽지만…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 분명해보이네요. 화이팅입니다!

    1. 과분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출판은 저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마음가짐 그대로 조용히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의견 나누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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