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의사는 돈보다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직업일지라도 돈이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많은 의사들이 사람의 생명보다는 돈을 좇아서 움직이고 있다.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함을 넘어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의사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오늘 하루에 얼마를 벌었는지를 밝히며 자기의 수입이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은지 물어보는 의사들이 수두룩하다. 그런가 하면 전공의 지원시에 인기과와 비인기과의 기준은 오로지 예상 수입이다. 의료 정책이 바뀌어 수입이 급감하게 되면 소위 잘나가던 과들의 인기도 곤두박질 친다.

의사들이 돈을 좇다보니 정작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들이 적확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폐단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담당하는 의사 자체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 수련 후 고소득이 보장되는 성형외과와 정형외과를 제외하고, 수술을 하는 외과 계열은 지원자를 찾기 어렵게 된지 오래다. 일이 고되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외과 뿐만이 아니다. 최근 내과 전공의 지원자가 급감하여 의료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2014년 사상 처음으로 내과 전공의 모집에서 미달이 났으며, 앞으로도 개선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내과 전공의 과정이 고되기만 하고 그 과정을 마친 후 돈을 벌기 어렵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하지만 내과 의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그 피해는 우리들 자신과 후세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탓을 ‘돈벌이가 되지 않는 과를 지원하지 않는 젊은 의사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 그 원인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가 물질 만능으로 치닫게 된 책임은, 저비용 고효율 의료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의사들이 돈 밖에 생각하지 못하도록 내몬 정부, 그리고 그 의료 제도에 안주하며 ‘편안한 돼지’로 살아온 기존 대다수의 늙은 의사들에게 있다.

나는 이런 취지로 ‘돈 벌기를 원하면 진료가 아닌 다른 사업을 하는 것이 옳다’는 평소 지론을 갖고 있었다. 우리집은 부자가 아니다. 그래서 나도 한 때는 남들처럼 돈을 벌어 풍족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결코 진료를 통해서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료가 아닌 IT 사업을 시작하였다. 진료는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을 좇는 의사들의 모습을 의료계 밖에서 더욱 똑똑하게 목격하게 되었다. 그런 의사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진심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돈을 좇는 우리나라의 의사 집단 전체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프니까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것 뿐이지 의사에 대한 존경은 커녕 호감도 없었다. 의사의 한 사람으로써 마음이 아팠다. 내가 그 대안은 되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올바른 의사로 살아가는 모습을 실천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환자들 앞에 서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고심 끝에 공공의료의 맏형격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수련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귀한 시간을 보냈다.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사설 병원보다 비교적 낮은 보수로 기꺼이 사회의 어려운 분들과 함께하는 훌륭한 의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사들을 존중하며 믿고 따라오는 환자들을 만날 수 있어 뿌듯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많이 온다. 그래서 우리 말고는 보살펴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어디서도 반기지 않는 이들을 우리가 보살피지 않으면 이들은 결코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내게 귀한 기회를 주며 끊임없이 나를 자극했다. 하지만 결국 이곳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극히 일부일 뿐이고, 여전히 이곳 밖에서는 옳지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고민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은 기회에 좋은 동영상을 보았다. 우연이 아니라 우연찮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항상 관심을 놓지 않고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어야 보이는 법이다. 아는 이들도 많겠지만 ‘지식채널e’라고 하여 EBS에서 방영하는 5분 남짓의 훌륭한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어떤 의사들‘ 편에서 쿠바Cuba 의료제도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끝자락에 참고 자료로 소개된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요시다 다로 지음 | 위정훈 옮김 | 파피에 | 2011년 05월 27일 출간>라는 책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그 후 한참이 흐른 어느 봄날이었다. 결혼 전 아내와 데이트를 하며 연극을 보기 위해 대학로를 갔다. 연극을 보고 대학로 이곳 저곳을 거닐다가 지하에 위치한 작은 책방에 들어섰다. ‘이음’이라는 40평 남짓한 작은 책방이었다. 그곳에서 그 책을 발견하였다. 마침 그때는 내가 외과 의사로서 처음 수술을 주관한 집도식이 있던 시기였다. 아내는 ‘칼을 올바로 쓰는 외과 의사가 되라’는 메모와 함께 그 책을 선물해 주었다.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의 내용은 공감할 수 있는 것과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뉜다. 내가 아쉽게 느꼈던 부분에 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우선은 내가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짚어보려고 한다. 항상 말하는 바이지만 나는 책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받은 느낌을 위주로 써내려 가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온전히 접하고 싶다면 책을 구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에서 소개하는 내용 가운데 공감가는 내용을 먼저 살펴보면 크게 세가지이다. 일차의료의 발달, 정보화 시대에 대한 열린 접근, 그리고 활발한 의료봉사가 그것이다.

첫째로 일차의료의 발달을 살펴보면, 지역사회와 융화되어 살아가는 쿠바 의사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들은 1층은 진료실, 2층은 가정집으로 사용하며 자신이 담당한 지역의 사람들의 건강을 세세하게 관리해 주고 있다.

말로만 일차진료인 우리나라의 동네 병원과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환자에게 필요하지 않더라도 수익창출을 위해서 여러가지 검사와 처방을 권하는,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우리네 동네 병원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환자를 진료하고 그 밖의 치료가 필요하면 욕심없이 더 나은 상위 병원으로 보낸다.

둘째로 정보화 시대에 대한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쿠바가 결코 IT 기술이 앞서가는 나라는 아니다. 책에서도 낙후된 장비와 기반 시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내가 주목한 것은 정보화 시대에 대한 쿠바 의사들의 열린 자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논제가 되고 있는 원격의료에 대해서도 그들은 매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여러 이해당사자 간의 밀고 당기기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원격의료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나의 견해는 이전 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세번째로 나는 쿠바 의사들이 해외에서까지 활발하게 의료봉사를 하는 모습을 통해서 깊은 감화를 받았다. 그들의 해외 의료봉사의 근간이 되는 정신은 ‘의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당시 기준으로 24,950명의 쿠바 의사들이 68개 의료 취약국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도 1958년 전후 복구 시기에 노르웨이Norway, 스웨덴Sweden, 덴마크Denmark로 구성된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3국의 의료지원으로 세워진 병원이다.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쉽게 느꼈던 것은 크게 두가지가 있었다. 먼저 이 책이 지나치게 쿠바 정책을 홍보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책의 저자는 일본인으로 쿠바 의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몇 차례의 탐사를 통해서 이 책을 썼는데, 쿠바의 정책 홍보에 과도하게 감화가 되었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려웠다. 책에 나오는 쿠바 의료 관계자들의 자화자찬 일색의 말들도 진실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쿠바 의사들이 그들의 공로를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에게 돌리는 대화 내용에서는 다소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쿠바의 대체의학에 대한 내용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나는 대체의학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포장되고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이전 글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다.

쿠바 의료 관계자들은 대체의학을 자신들이 갖추고 있는 하나의 경쟁력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아마도 미국 주도의 오랜 경제 봉쇄 정책이 가져온 의료품과 기자재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자구책일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보통 사람들이 비과학적인 대체의학에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은 의사를 비롯한 의료 관계자가 택해서는 안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쿠바의 의료 제도를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쿠바의 의료 제도도 완벽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가 그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쿠바 의료를 보여준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아는 의료 제도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현재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은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일으킨다.

이처럼 쿠바 의료를 새롭게 알게 해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 책의 더 큰 메세지는 따로 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외면해 왔을 뿐이다. 이 책은 그 진실을 대담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의사는 돈보다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진실이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두가지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배웠습니다.
하나는 의학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성입니다.”

이 책을 접하게 해준 EBS 지식채널e ‘어떤 의사들’ 편에 나온 쿠바 의과대학생의 말이다. 이 말에 내가 전하고 싶은 모든 뜻이 담겨 있다.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에 대한 6개의 생각

  1. 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돈벌이 수단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인간성이 부족한것 같아요
    앞으로는 의대에서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겠어요

  2. 누가 추천해줘서 읽었는데
    이건 평범한 서평이 아니군요
    글쓴이의 인생 철학과 열정이 담긴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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