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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평판이 부를 결정한다

디지털 평판이 부를 결정한다

중학교 3학년 말,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겪었던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서 좋은 평판을 얻는 비결이 진실함 외에는 없음을 깨달았다. 오늘 다룰 책의 핵심 주제도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먼저 나의 경험을 소개한다.

당시 나는 중학교 졸업 후 진학할 고등학교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집에서 멀리 떨어진 경상남도의 거창고등학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자율성을 중시한다는 교육 이념에 공감하였고, 결국 그 학교에 진학할 뜻을 갖게 되었다.

거창고등학교는 기숙사 학교다. 달리 말해 고등학교 3년 동안 집처럼 지내야 하는 곳이다. 때문에 그곳이 과연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다르지 않은 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생 유치를 위해서 사실과 다른 홍보에 열을 올리는 학교들이 좀 많은가. 그래서 부모님과 나는 주말을 이용해 사전답사와 진학상담을 겸해서 거창으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받은 첫인상은 좋게 말해서 수수함이고 나쁘게 말해 허름함이었다. 별도의 교문도 없이 학교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학교 정문을 대신했다. 주말 아침에 학교 운동장을 가면 느껴지는 한산한 기운이 주위를 감돌았다. 그때 운동장 옆 화단에서 운동복 차림으로 홀로 휴지를 주우며 청소를 하는 노인 한 분이 눈에 띄었다. 학교 시설을 관리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한 부모님과 나는 혹시 학교 본관이 어느 쪽인지 그 노인에게 물어보았다.

휴지를 줍던 노인은 잠깐 허리를 펴더니 손으로 운동장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로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 노인은 다시 청소를 이어갔다. 우리는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그 건물로 향했다. 면담을 마치고 거창고등학교에 지원하기로 한 그날 오후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는 적잖이 놀랐다. 아침에 만난 운동복 차림의 노인이 거창고등학교 교장 도재원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학교 측으로부터 우편으로 받은 소개 책자에 ‘양지보다는 음지를, 높은 곳 보다는 낮은 곳을 향하라’는 이른바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의 십계’가 실려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을 접한 후 그 말이 허구가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시 거창고등학교에 관하여 전해지던 좋은 평판들이 그러한 진실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평판은 기억의 한계 때문에 시공간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평판의 대상을 직접 경험한 이들과 그 주위의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에게만 평판의 영향력이 있었다. 앞의 경우도 그 자리에서 우연히 교장 선생님을 마주친 나와 부모님으로부터 거창고등학교가 좋은 평판을 얻었을지 몰라도 이제껏 부모님과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기억의 확장에 더불어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언제든 확인이 가능하다. 이 글에 담긴 나의 경험을 읽은 당신에게도 거창고등학교는 좋은 평판을 얻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전에는 나와 부모님만 알고 있던 사실이 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이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평판의 규칙이 바뀌고 있는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맛집 평가를 하는 수많은 서비스를 비롯해서, 영화마다 매겨진 별점은 우리가 그 영화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전에는 세상에 없던, 집단 지성이 구축한 평판 덕분에 우리는 더욱 편리하고 실수를 줄일 수 있는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평판의 위력,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디지털 세상이 가져온 평판이 갖는 힘이 당신이나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맛집이나 영화처럼 점수로 평가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온라인상의 평판이 과거에 비해서 어떻게 달라졌으며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접하였다. 정보 보안과 평판 관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로 알려진 마이클 퍼틱Michael Fertik이 쓴 『디지털 평판이 부를 결정한다 원제 : The Reputation Economy | 마이클 퍼틱, 데이비드 톰슨 지음 | 박슬라 옮김 | 중앙북스 | 2015년 08월 25일 출간』가 그 책이다.

먼저 나는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이 다소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밝힌다. 이 책을 마치 부를 축적하는 방법에 대한 자기계발서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읽어본 결과 이 책은 빅데이터big data에서 촉발된 사회 변화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특히 경제와 교육 분야에서 평판이 갖게 될 성격과 위상이 달라진다는 분석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다른 글에서도 다루어온 내용들의 연장 선상에 있다. 본질적으로 기존의 빅데이터에 대한 논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우리는 이전 글에서 빅데이터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야를 열어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빅데이터가 데이터 분석을 거쳐서 상호 간에 더 적나라한 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평판 경제’의 사회이다. 참고로 ‘평판 경제’, ‘The Reputation Economy’는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에서 ‘SNS에서 경력을 관리하는 법’, ‘온라인에서 사생활을 보호하는 법’과 같이 실질적으로 유용할 만한 정보도 소개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말 중요한 내용은 그런 조처들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평판 관리의 본질은 우리의 삶에 진실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더 이상 사고를 치고 장막 뒤로 숨을 수 있거나 어두운 과거를 은폐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기술이 사람들의 어두운 과거를 세상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의 세상의 모습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단편적인 경력, 소위 스펙이 지닌 힘이 약화될 것이다. 이전에는 누군가 경력을 내세우면, 그 경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일부의 사람들만 알았다. 그러다보니 실상을 잘 모르는 사람은 부실한 경력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제 정보가 공유되고 개방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특정 경력의 실제 가치를 모르면 아는 사람이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외에 돈 내고 단기 연수를 다녀와서는 마치 초청을 받아 다녀오거나 중책을 맡았던 것처럼 홍보하는 것도 이제 더 이상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조용히 자신의 업무 능력을 배양하고 실무에 강한 이들이 더 높은 평가를 얻게 될 것이다.

둘째, 신뢰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예약 문화이다. 우리나라 음식점 주인들의 가장 큰 고충 중 하나가 예약 손님의 ‘노쇼no show‘라고 한다. ‘노쇼’란 예약을 해놓고 실제로 오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그 예약 손님을 위해서 다른 손님을 받지 않은 음식점 주인 입장에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한 경우 예약자 가운데 1/3이 ‘노쇼’라고 하는데, 당하는 음식점 주인 입장에서는 정말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으로 ‘평판 경제’가 자리 잡으면 이런 ‘노쇼’의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손님이 맛집을 평가하듯 맛집도 손님을 평가하는 것이다. 예약해놓고 실제로 오지 않는 이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음식점들끼리 공유를 하여 다음부터는 이들이 음식점에 예약 시 음식점은 거절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식당 예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신뢰를 지키지 않는 이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잠깐의 불편함을 피하고자 신뢰를 저버린다면 조만간 삶 자체가 불편해지게 될 것이다. 이로써 신뢰는 우리 삶에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

셋째,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고 ‘평판 경제’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판 경제’의 핵심 개념은 누군가 실력이 있다면 기술이 어떻게든지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찾아내는 것은 기술에게 맡기고, 찾아낼 만한 가치 있는 대상이 되는데 집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 사회가 점차 연결되고 공유되어 평판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게 되었다. 당신이 과거에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누구든지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온다. ‘만인이 만인을 평가하는 시대’가 눈앞에 와있다.

이런 세상에서 평판을 관리하는 지름길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본질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거짓되지 않고 정직한 삶을 사는 것이다. 당신이 옳은 삶을 산다면, 이제 기술이 그것을 드러내어 좋은 평판을 얻게 도와줄 것이다.

이것은 위기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다. 남을 속이며 평판을 쌓고자 하는 데 익숙한 이들이라면 위기이겠지만, 조용히 실력을 쌓아왔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전에 없던 기회가 될 것이다.

“디지털 평판이 부를 결정한다”의 3개의 댓글

  1. 미국에서는 cyberspace reputation 또는 online reputation을 중요시 여긴지가 꽤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소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자기 이름을 google해보라고 권면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누명이나 헛소문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긴 새로운 서비스 업이cyberspace reputation repair입니다. 정보공유의 시대는 분명한데 그 공유하고 있는 정보가 100% 정확하고 진실된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남을 속여 평판을 쌓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남의 평판을 속여서 끌어 내리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일은 정치가들이 주로 하는 일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한다면 어느 틈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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