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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정치인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길거리에서 악수를 청하며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하지만 일단 당선되면 180도 태도가 돌변하여 다음 선거 때까지 국민 위에 군림하며 각종 편의와 권위를 누리는 이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시선의 끝은 국민들에게 있기 보다는 유리한 지역에 후보로 지정해주는 정당의 결정권자들에게 향해 있다. 올바른 정책이나 정치 철학보다, 어느 지역에서 출마하는 것이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는 기회주의적인 계산에만 몰두한다. 정치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인데, 이들은 정치가 자신들에게 봉사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접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한심함을 넘어서 때로는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한편, 내가 느끼는 독서의 즐거움 중 정수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주변에서 항상 접하던 암울한 현실과 단단하게 자리 잡은 고정관념들을 흔들 수 있는 순간이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니는 먼 이국땅 우루과이Uruguay의 대통령 이야기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기존 정치인들로부터 갖게 된 고정관념과는 정반대이다. 그 대통령의 이름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호세 무히카José Mujica이다.

호세 무히카는 젊은 시절에 무장 게릴라 활동에 몸담았지만 훗날 민주적인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3년과 2014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고 2014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선정된 바 있다. 호세 무히카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정치인이다.

현직 기자인 마우리시오 라부페티Mauricio Rabuffetti가 쓴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원제 : La revolución tranquila |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 박채연 옮김 | 부키 | 2016년 02월 12일 출간』은 호세 무히카의 정치인과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집중 탐구한 첫 책이다. 저자는 소박하고 청렴한 생활로 널리 알려진 호세 무히카의 모습 너머의 모습을 세밀하게 포착해 낸다. 그가 대통령 시절 시도한 정책들과 그 과정에서 맞닥뜨린 현실의 벽, 대통령의 고민과 열정, 성공과 실패를 통해 진정한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가 꿈꾸는 지도자는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저자는 먼저 호세 무히카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우루과이의 수도 외곽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주택에 사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평범한 우루과이 서민과 다를 바 없는 소박함을 발견한다. 물론 이것은 정치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호세 무히카가 수십 년간 그렇게 살아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소박함이 설정보다는 현실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서 저자는 호세 무히카가 과거 무장 투쟁에 참여하던 당시의 시절을 되짚어 본다. 호세 무히카는 정치범으로 13년을 감옥에서 지내며 온갖 고초를 겪는다. 격리와 고문이 이어진 나머지 정신이 황폐화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수십 년 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호세 무히카의 삶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우리의 미래를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당신은 1년 전 지금 당신이 놓인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예측할 수 있었는가. 당신이 새로 만난 사람, 새롭게 놓인 환경, 그 대다수는 겨우 1년 전에 짐작조차 할 수 없던 것들이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1년 후의 모습조차 예측할 수 없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항상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호세 무히카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맞닥뜨린 주요 사건들을 살펴본다. 그 가운데서 가장 핵심은 역시 마약인 마리화나의 합법화와 동성 결혼의 합법화다. 이 과정에서 호세 무히카는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며 여러 난관을 헤쳐나간다.

내가 호세 무히카의 삶을 통해 찾은 올바른 정치 지도자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를 하나씩 살펴보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으로 국민들을 대표한다는 이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선 소박함은 정치인 호세 무히카의 전매특허와 같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정치인에게 있어서 소박함은 특히 중요하다. 스스로 소박한 삶을 살아야지만 ‘소박하게 살 수 밖에 없는’ 대다수의 국민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하는 몇 가지 직종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호세 무히카와 같은 정치인과 내가 속한 의사가 대표적이다. 왜냐하면 이 두 직종은 남의 어려움이 그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호세_무히카_조용한_혁명

정치인의 업의 본질은 어려움에 빠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의사의 업의 본질은 아픈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소비적인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한데, 타인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을 소임으로 하는 이들이 돈을 추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에 빠진 이들이 경제적 고충까지 겹치게 되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다. 따라서 호세 무히카의 소박한 삶은 정치인 뿐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두번째는 반대파에게도 손을 내미는 포용력이다. 한때 적대적 관계에 있었더라도 더 큰 목표를 위해서는 과감히 먼저 손을 내미는 호세 무히카의 모습이 그의 삶의 중요한 시기마다 자주 등장한다. 자신과 견해가 다르면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포용은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반면에 편가르기는 자신의 불안감과 미숙함의 다른 표현법이다. 남을 배척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다면, 혹시 자기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감 때문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세번째는 호세 무히카가 보여준 책임감 있는 모습이다. 언젠가 호세 무히카 정권의 한 장관이 대통령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일이 있었다. 이때, 호세 무히카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다. “책임은 내게 있다. 그의 자리는 더 확고해 질 것이다”라고 말하며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한 장관을 두둔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이 자신을 향하게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어떠한가. 어느 조직에서 무언가 문제가 터지면 최고 결정권자라는 사람은 “책임자를 문책하겠다.”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자기 자신을 문책하겠다는 말인가. 그런 말을 하는 이들 스스로가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요컨대 소박함, 포용력, 책임감 이렇게 세 가지가 호세 무히카를 특별하게 만든 핵심 원동력이다. 한편, 정치인이라면 스스로가 이것들을 갖추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자질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세 무히카도 결코 완벽한 정치인은 아니다. 저자는 호세 무히카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시기에 오히려 우루과이 국내에서는 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특히 노벨 평화상 수상의 가능성이 점쳐면서 우루과이 국내 정치보다는 국제적인 명성에 더욱 공을 기울이는 모습도 보인다.

나는 이를 통해서 가정을 중심으로 두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는 사회적인 성공에 몰두한 나머지 가족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주종관계가 뒤바뀐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직장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것이 내 역할의 본질이다. 그 점을 잊지 않기 위해 매번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 책을 통해서 소위 지도자라고 불리는 이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대통령답지 않은 소박한 삶, 진솔하고 인간적인 소통, 선구적인 정책으로 우루과이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호세 무히카는 교외 농촌 주택에 살며 직접 요리를 하고, 30년 된 폭스바겐 비틀을 운전해 출퇴근하는 모습을 통해 대통령도 한 사람의 국민임을 일깨워주었다.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호세 무히카의 모습은 한 나라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지, 또 사람들은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호세 무히카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국가 원수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명령을 받는 사람이다.”

국민을 위하겠다며 자리에 오른 이들이 오히려 국민을 통제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크게 울림이 있는 한마디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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