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올해 런던에 와서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며 인상 깊게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곳 사람들의 다채로운 옷차림이다. 다양한 지역적,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여기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는 어떤 통일성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런던에 왔을 때가 이제 막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시점이라서, 사람들의 옷차림도 반소매에서 긴소매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는 벌써 두툼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더운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11월 중순을 지나고 있는 현재의 런던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코트에 장갑 차림으로 다녀야 할 정도로 추운 시기인데, 아침마다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운동 겸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다.

생각해보자. 서울 시내에서 여름에 오리털 파카를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을까? 쌀쌀한 초겨울 아침에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하는 사람은?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혹여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서 “더워 보인다.”거나 “추워 보인다”며 한마디씩 던질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러한 말을 들을 것이 두려워서 그런 옷차림으로 길을 나서지 않겠지만.

반면에, 여기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추워 보인다.’ ‘더워 보인다.’ 같은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인다. 누구도 남의 옷차림을 두고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남들이 자신의 옷차림을 두고 뭐라고 할지 신경 쓰지 않는다. 여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가 무엇을 하건 간섭받지 않겠다’는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여기 사람들의 모습에서 건강한 개인주의를 느낀다.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제목의 책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장명숙 지음 | 김영사 | 2021년 08월 18일 출간>의 저자 장명숙이 추구하는 인생관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해외 유학이 드물던 1970년대에 대한민국 최초의 밀라노 패션 장학생으로 이탈리아에 건너간 인물로, 1980년대부터는 이탈리아의 의류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며 두 나라의 문화 교류에 힘써왔다. 2001년에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는 저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개별적인 이야기들이지만, 하나같이 따뜻한 여유로움과 열린 마음이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다. 남들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남들에게도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글에서 묻어나온다.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60대 후반에 ‘밀라노 할머니’라는 뜻의 ‘밀라논나Milanonna’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고, 2년 만에 90만 명이 넘는 구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나는 엄청난 수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보다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도전정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닫는 글의 제목처럼 ‘고민보다는 일단 시작하기’를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책을 통해 접한 저자의 삶은 한 마디로 참 본받고 싶은 인생이다. 본받고 싶다는 게 어떤 거창한 존경심을 말한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내가 저 나이가 되었을 때 비슷한 모습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간섭하지도 않는 삶.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는 삶. 앞뒤 재면서 망설일 시간에 일단 행동으로 옮기는 삶.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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