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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즈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준비

런던에 온 뒤로 확실히 체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우중충한 날씨다. 아침에 맑다가도 금방 비가 쏟아지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날씨가 갠다. 아무래도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이다 보니 대기에 수분이 많은 해양성 기후라서 그런 듯하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올 것 같으면 장화를 신고 길을 나서는 사람이 많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장화가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런던에 처음 온 우리 가족의 입장에서 그런 부분까지 미처 챙기기는 어려웠다. 특히 아내는 어쩌다 보니 단화 위주로 가져온 터라 비가 오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고는 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대학원 수업 전 잠시 시간 여유가 생겨서 런던의 유명한 백화점인 해로즈로 함께 가보기로 했다.

해로즈 백화점 소개

해로즈Harrods 백화점은 런던의 중심부 나이츠브리지Knightsbridge에 위치한 고급 백화점이다. 1849년, 홍차 도매상 헨리 찰스 해로즈Charles Henry Harrod가 지금의 자리에 식료품 가게를 인수하면서 문을 열었다. 1883년에 대형 화재로 건물이 불탔으나, 위기를 기회 삼아 재건하여 현재의 위용을 갖추었다. 1898년에 백화점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등 전 세계 모든 백화점에 그 기준을 제시해왔다.

해로즈 백화점이 성장하면서 영국 왕실은 1910년부터 이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에 왕실 인증Royal Warrant을 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1985년 이집트 사업가 모하메드 알파예드Mohamed Al-Fayed가 해로즈 백화점을 인수하게 되는데, 그는 이러한 왕실 인증이 모독스럽다며 모두 폐지한다. 해로즈 내부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떠올리게 하는 인테리어로 유명한데, 확실치는 않지만, 이 또한 모하메드 알파예드가 이 백화점을 인수한 영향을 받은 것인 듯싶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대영박물관에는 18세기부터 이집트에서 훔쳐 온 유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로부터 200년 후에는 이집트 부자가 영국을 대표하는 백화점을 인수하여 이집트 백화점처럼 바꾸었다니. 심지어 영국 왕실의 인증도 거부하며 말이다. 이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승리는 감정을 앞세운 반대가 아닌 힘의 축적을 통한 극복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 참고로 2010년 카타르 국부 펀드Qatar Investment Authority가 파예드 가문으로부터 백화점을 인수했다. 역시 영원한 것은 없다.

해로즈 백화점 전경

백화점은 바로 앞에서 보면 카메라에 다 잡히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이런 백화점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었다. 사실 해운대 집 근처에는 세계 최대의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간 센텀 신세계 백화점이 있다. 그래서 해로즈 백화점에 처음 가보았음에도 그 크기가 엄청 놀랍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백화점이 170년 전, 화재 후 재건을 기준으로 해도 140년 전에 시작한 곳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로즈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준비

원래 우리 부부가 해로즈에 간 목적은 장화를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하필이면 우리가 들어간 곳이 명품관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 장화를 사는 것은 유학생 신분에 가당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신, 백화점에 들어올 때부터 크리스마스 포스터로 눈길을 끌었던 지하의 서점으로 향했다.

아직 올해 크리스마스까지는 3개월이나 남았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크리스마스 카드부터 트리 장식까지, 크리스마스가 내일모레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풍경이다. 역시 자본주의의 총아인 백화점, 그리고 그 백화점 중의 백화점인 해로즈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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