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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파크의 일요일 오후

어제부터 내린 비가 오늘 일요일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졌고 일기예보를 보니 그마저도 오후에는 갠다고 했다. 그래서 딸 아이의 학교 같은 반 두 친구 가족들과 함께 하이드 파크Hyde Park로 향했다. 일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싱가포르에서 온 가족과 타이완에서 온 가족이다. 이제는 어디를 가든 세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게 거의 기본이 되어 버렸다.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면 부모들의 사회관계는 아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다.

하이드 파크는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공원이다. 런던의 공원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누구나 올라가서 자유 발언을 할 수 있는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누구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고 또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스피커스 코너는 영국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영어 교과서에 하이드 파크에 대한 글이 있었다. 그 당시는 내가 아직 외국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때라, 언젠가 영국에 가게 되면 하이드 파크에도 가보겠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막연히 그렇게 생각만 했다. 교과서에 나온 곳이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그 당시 많은 대학교 1학년생들처럼 여름방학을 맞아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생애 처음으로 도착한 외국 도시가 바로 런던이었다. 비행기가 런던에 내린 후 곧장 짐을 찾아 지하철을 타고 런던 도심으로 향했고,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은 차에 지하철 노선도에서 하이드 파크 코너라는 이름의 역을 발견했다. 거기가 하이드 파크 옆이겠거니 생각하며 무작정 그곳에서 내렸다. 그때 내가 지상으로 올라와서 처음 마주한 하이드 파크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파크는 우리말로 공원이고 공원이라면 동네 공원만 알고 있던 내게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공원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다.

그렇게 어리바리하던 대학생이 20년 후 아내와 딸을 데리고 그 공원을 다시 찾았다. 그것도 20년 전의 빠듯한 일정에 쫓기는 배낭여행이 아니라 여유로운 일요일 소풍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나에게 주어진 삶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 글은 이만 여기에서 줄이고, 지금부터는 하이드 파크의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 풍경을 전하는 사진들로 대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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