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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칸 M200 만년필

펠리칸Pelikan Holding AG은 1838년 독일에서 설립된 필기구 및 사무용품 회사이다.1 초창기에는 잉크 제조를 주업으로 하다가, 1929년부터는 만년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고, 현재는 몽블랑, 파커와 함께 세계 3대 만년필 제조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만년필이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몽블랑을 최고로 치지만, 해외에서는 펠리칸도 그에 못지않은 인기와 지위를 누리고 있다.

회사 이름이자 상표인 펠리칸Pelikan은 큰 부리가 특징인 물새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참고로 영어에서 펠리칸은 ‘Pelican’이라고 쓰지만 상표로서의 펠리칸은 같은 의미의 독일어인 ‘Pelikan’이라고 쓴다. 펠리칸이라는 이름에서 큰 부리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우리나라 대다수 사람들은 정교하고 우아한 고급 필기구의 상징이 펠리칸이라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펠리칸의 이미지와 유럽 사람들에게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펠리칸이라는 새는 어미가 새끼에서 자기 살을 떼어 먹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유럽인들은 이러한 펠리칸의 습성을 예수가 최후에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을 나눠준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한 이유로 서양에서는 펠리칸이 자기희생을 상징하는 새로 자리 잡았다. 서양인들에게 펠리칸은 그저 부리가 큰 새가 아니라 예수가 보여준 자기희생을 나타내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펠리칸 만년필에 새겨진 펠리칸 로고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경되어 오면서도 어미와 새끼를 함께 그리는 점만큼은 변하지 않고 있다.

90년이 넘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펠리칸에서는 다양한 만년필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당연히 알파벳 M2과 100단위로 끊어지는 숫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소버렌Souverän(M300, M400, M600, M800, M1000)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소버렌 시리즈에는 속하지 않지만, M150과 M200도 같은 디자인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M 뒤에 붙은 숫자가 클수록 만년필의 크기도 크지만, 예외적으로 M300의 크기가 가장 작으며 M200의 경우는 M400과 동일한 크기이다. 따라서 M300 < M150 < M200 = M400 < M600 < M800 < M1000 순서로 크기가 크다.3 이 중에서 M200은 입문자를 위한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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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펠리칸 M200은 가장 기본 색상인 검은색 제품이다. 사실 이 만년필은 내가 직접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최근에 아내가 공들여 준비한 모 국책은행 주관의 협약식에서 서명식 후 기념으로 나누어 준 것을 내게 선물해 준 것이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는 만년필이다 보니 더욱 애착이 가고 소중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N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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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칸 M200의 촉은 외관상 금색을 띠고 있지만, 실제 재질은 스틸이고 겉면에 금도금한 것이다. 촉 굵기는 흔히 필기용으로 선택되는 EF보다 한 단계 굵은 F인데, F는 Fine 즉 가늘다는 의미이지만 독일제 만년필들이 대체로 굵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이 굵기는 일반적인 필기용으로 쓰기에는 다소 굵은 감이 있다. 나도 주 용도는 사무실에서 서명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펠리칸 만년필은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촉 분할에 대한 품질 관리가 잘 안 된다는 사용자들의 의견이 있어왔다. 가장 이상적인 촉 분할은 50:50 즉 대칭으로 나뉘어 있어야 하는 걸 말한다. 60:40 정도는 일반적으로 허용되고, 70:30 정도까지 비대칭인 경우에도 괜찮다고는 하지만, 펠리칸 만년필은 그 이상의 불균형이 있는 경우가 적잖아서 만년필 구매자들의 불만을 불러오고는 했다. 그래서 만년필을 구입할 때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촉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거나 부득이 온라인으로 구입하게 된다면 발송 전에 촉 상태를 확인토록 한 번 더 요구하는 게 좋다. 다행히 내 펠리칸 M200의 촉 분할은 거의 50:50으로 대칭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립Grip

그립은 다른 부분과 동일한 수지 재질로, 캡을 고정할 수 있는 나사산이 노출되어 있다. 적당한 무게와 굵기, 그리고 굴곡으로 필기 시 오래 쥐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다.

배럴Barrel

몽블랑을 필두로 여러 만년필 회사들이 유선형 혹은 시가형 배럴을 채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펠리컨 만년필은 특유의 원통형 배럴을 고집하고 있다. 펠리칸 M200도 역시 마찬가지로 원통형 배럴 디자인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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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칸 M200은 크기에 비해 잉크 주입량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피스톤 필러 방식으로 몸통 전체에 잉크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펠리칸 M200의 최대 잉크 주입량은 대략 1.5 ml 정도로 알려져 있다. 만년필 잉크 컨버터가 회사 종류에 상관없이 대부분 1mL를 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펠리칸 M200의 잉크 주입량이 실제로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펠리컨 M200에 잉크를 채우려면 만년필 배럴 뒤쪽에 위치한 노브를 이용해야 한다. 가느다란 금색 링이 배럴과 노브를 나누는 경계이다. 노브를 왼쪽으로 돌리면(시계반대방향) 만년필 배럴 내부의 피스톤이 잉크를 비우는 방향으로 내려가고, 만년필 촉을 잉크에 담근 채 노브를 오른쪽으로 돌리면(시계방향) 잉크가 배럴 내로 주입된다.

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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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에는 어미 펠리칸과 새끼 펠리칸으로 구성된 로고가 그려져 있다. 캡에 부착된 금색 클립은 자세히 보면 펠리칸의 부리 모양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펠리칸 M200뿐 아니라 상위 모델도 공유하는 디자인 요소이다. 캡 입구에는 금색의 링이 둘려 있으며 그 위에 PELIKAN GERMANY라고 쓰여 있다.

필기감

스틸 재질의 펜촉이지만 필기 시 적당한 탄력감이 느껴지고, 종이 위에서는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노트는 미도리 MD 노트를 사용하고 있다. 부드러운 필기감은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F 촉의 두께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만년필의 필기감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고, 같은 회사 같은 제품이라도 서로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므로 가볍게 참고만 하길 권한다.

총평

펠리칸 M200은 만년필을 처음 써보려고 하는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제품이다. 기본기가 튼튼하고 실용성도 겸비한 입문용 만년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다수 만년필 사용자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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