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인가 뉴스나 신문 지면에 ‘팩트 체크Fact Check’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팩트 체크, 곧 사실을 확인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확인하겠다는 사실이란 다른 이의 주장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즉, 현실에서 팩트 체크라 함은 ‘지금 저쪽에서 주장하고 있는 게 과연 사실인지’ 파헤쳐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 머릿속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가짜뉴스들을 팩트 체크하겠다며 등장한 책이 있다. 심지어 그 제목은 『팩트풀니스 원제: Factfulness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03월 10일 출간』다. 이 책을 공저한 세 명의 스웨덴 출신 저자들은 그냥 팩트 한 두 개를 체크하는 거로는 성에 안 찼는지 책 제목부터 팩트 종합선물세트인 듯한 느낌으로 지어놓았다.
저자들 중 리더라고 할 수 있는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은 통계학자이자 의사로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통계라는 도구로 바로잡으려 노력해왔다고 한다. 나머지 저자들 중 올라 로슬링Ola Rosling은 한스 로슬링의 아들이고, 또 다른 저자 안나 로슬링 뢴룬드Anna Rosling Roennlund는 올라 로슬링의 아내이자 한스 로슬링의 며느리이다. 이 둘은 통계를 활용하여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갭마인더재단Gapminder Foundation’을 설립했다. 요컨대 이 세 명은 가족을 넘어 학문적 동반자로서 ‘세상 사람들이 느낌이나 선입견이 아니라 오로지 사실에 근거해 세상을 인식하게 한다’는 주제를 연구하는데 매진한 학자들이다. 그중 가장 연장자인 한스 로스링은 이 책을 마무리하던 2017년 초 세상을 떠났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래서 저자들이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통해 무슨 팩트를 체크하겠다는 것일까. 무슨 가짜뉴스를 검증하겠다는 것일까. 이들이 목표물로 삼은 가짜뉴스는 ‘세상이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통념이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전 세계의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진다거나, 이상기후로 해가 갈수록 자연재해의 빈도가 늘어난다거나 하는, 당신도 최근 언젠가 뉴스에서 접했을 법한 그런 어두운 세계상 말이다.
그런데 저자들은 사람들의 통념과는 반대로 이 세상이 점점 살기 좋은 곳이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작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책의 도입부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한 13가지 질문을 던진다. 각각 3개의 선택지가 주어지는 질문들인데, 이를테면 전 세계 극빈층의 비율, 여성의 교육 기간, 기대 수명, 자연재해 사망자 수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어서 저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정답률이 10% 내외임을 밝히는데, 심지어 소위 지식인들의 정답률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침팬지’가 등장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침팬지는 3개의 선택지를 무작위로 선택하여 결과적으로 33% 정답률을 얻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저자들은 인간들의 세상에 대한 이해가 침팬지만도 못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물론, 저자들은 인간이 침팬지보다 지적 수준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자들이 사람들은 세상의 ‘사실’들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맞다. 그러면서 다양한 통계수치들을 가져와서 사람들이 이 세상의 긍정적 사실들을 직시하도록 권하며, 동시에 이처럼 사실에 근거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을 사실충실성 즉,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팩트풀니스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한가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면 우리가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알고 보면 사실이라기보다는 ‘주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실은 우리 앞으로 전해지는 동안 누군가의 주관에 의해 영향을 받을 여지가 많다. 그 과정을 뜯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사실의 일부는 통계의 형태로 가공된다. 이때 사실의 어떤 부분이 통계의 재료로 다듬어질 것인지 선택된다. 벌써 여기부터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 그다음으로 통계도 해석을 거친다. 통계의 모든 부분이 해석되지는 않으므로, 어느 것이 해석될지 결정되는 것 또한 누군가의 주관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계의 해석으로부터 주장을 도출한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해석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해석이 주장에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주관이 개입된다. 요컨대, 우리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그 도출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주관의 개입된 결과인 것이다.
저자들은 이 세상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사실’은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최신 ‘통계’ 데이터를 제시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통계라는 것도 세상의 모든 사실의 극히 일부분을 비추는 작은 돋보기일 뿐이며, 그 통계 자체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저자들에 의해 선택되고 해석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저자들이 사실이라고 말한 것들이 알고 보면 사실의 일부만을 반영한 통계, 그리고 그들의 주관이 개입된 해석과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이 말하는 것들, 이를테면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핵심 주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사실에 충실한 태도가 아니다. 차라리 저자들의 주장을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견해들 중에 하나로 다루는 것이 그나마 이 책의 제목처럼 사실에 가장 충실한 방법일 것이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날 팩트 체크가 흔한 건 그만큼 팩트가 아닌 것, 즉 가짜뉴스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 팩트고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쪽에서는 저쪽에서 하는 이야기를 두고 가짜뉴스라고 하고, 저쪽에서는 이쪽에 똑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저마다 나름의 그럴듯한 근거를 내민다. 그냥 근거도 아니고 깔끔한 숫자로 이루어진 통계수치들을 활용한다.
그럴 때에는 섣불리 상대방의 주장을 가짜뉴스로 낙인찍을 게 아니라, ‘누군가는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자기 자신이 믿고 있는 팩트부터 체크해 보는 것이 어떨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실충실성을 지킬 수 있는 진짜 방법일지 모른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같은 통계적 사실을 기반으로 전혀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는데, 언급하신 책은 통계적 사실을 진리인 것 처럼 다루죠. 사회가 “팩트”를 다루는 방식이 일종의 종교처럼 느껴져서 걱정입니다.
네. 공감합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적하신 바처럼 ‘팩트’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의 논쟁을 거부하는 세태 또한 우려스럽습니다. 항상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담입니다만, 독자님의 이름을 클릭해서 들어가서 알게 된 <불안을 담은 캐리어>라는 책의 소개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추후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블로그 방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