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챗GPT, 빙, 바드에 관하여

인공지능 이미지

요즘 생성형 인공지능이 화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란 쉽게 말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특히 작문이나 그림처럼 인간의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던 영역에서 전에 없던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논리적인 글은 물론 소설도 쓰고 시도 쓴다.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도 이미 여러 종류가 나와 있다. 이제까지 인공지능을 표방한 기술들은 많이 나왔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것이라고 한다.

혹시 실제로 써봤는지 모르겠다. 주위에 물어보면 그 유명세가 무색할 정도로 아직 잘 모르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직접 접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꼭 한 번 써보기를 권한다. 확실히 놀랍다. 아니, 단순히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놀랍다는 건 반응의 영역이지만, 이건 그저 반응의 영역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챗GPT(ChatGPT)

올해 초 무렵이었나. 챗GPT(ChatGPT)가 인터넷에서 화제로 떠오를 즈음 나도 그 흐름에 합류했다. 구글로 챗GPT를 검색해서 가장 먼저 나온 검색 결과를 따라가 보았는데, 간단한 회원 가입 절차를 마치자 군더더기 없는 대화창이 나타났다. 오로지 기능성에만 초점을 맞춘 화면 구성은 이곳이 바로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스타트업 오픈AI(OpenAI)의 본진이라는 것을 넌지시 과시하는 듯했다. 챗GPT와 그것이 불러온 파장을 다루는 여러 뉴스와 기사들,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대화창 너머 어떤 존재의 대답하는 태도는 꼭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던 인공지능의 전형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접해왔던 ‘OK 구글’, 삼성의 ‘빅스비’, 애플의 ‘시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것들은 명령어부터 그 대답의 수준까지 알게 모르게 사용자의 배려를 요구했다. 하지만 챗GPT와 나누는 대화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물론 시간이 가면서 프롬프트를 구성하는 것에도 나름의 요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튼 첫인상은 그 이전의 인공지능에 비해서 훨씬 인간적이었다.) 예전에 『Her』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던 인공지능, 언젠가 실제로 나오겠거니 짐작만 했던 바로 그런 인공지능이 정말로 현실이 되어 눈앞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느낌도 없지는 않았다. 챗GPT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분명히 친절하게 답변을 하는 건 맞는데 어딘지 모르게 인공적인 느낌이 들어서 확실히 사람과 나누는 대화와 같지 않았다. 마치 공장에서 만들어져 깨끗하게 포장된 가공식품을 맛보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람이 직접 만든 음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결여된, 그렇다고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닌. 그런 가공식품 말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먹지 못할 경우도 있었다. 특히 코로나 방역이나 정치 상황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보가 그랬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알려지기로 챗GPT는 대답을 위해 참고하는 자료가 2021년 9월 이전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그 이후의 사건이나 지식은 대답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몰라도 아는 것처럼 둘러대듯이 대답하는 태도(인공지능에 태도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면)를 보이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이 녀석이 벌써 자존심을 터득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유심히 지켜보니 이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헷갈려서 우왕좌왕하는 듯했다. 그런 걸 두고 인공지능의 환각이라고 하던데. 차라리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적어도 신뢰도에 상처를 입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빙(Bing)

그러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 엔진 빙(Bing)의 채팅 모드가 데이터도 더 최신이고 답변의 근거도 제시한다는 말을 듣고 흥미가 생겨서 사용해 보았다. 내가 처음 빙의 인공지능 채팅을 사용하고자 했던 당시는, 가입만 하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챗GPT와는 다르게, 신청 후 사용승인까지 약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아는 분은 댓글을 부탁한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라우저인 엣지(Edge)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새로운 빙의 성능은 실로 뛰어났다. 챗GPT의 둘러대기 전략이 적잖이 의구심을 남겼다면, 빙의 인공지능 채팅은 나름의 출처를 제시하면서 더욱 나은 품질의 답변을 제시하였다. 다만 그 출처에는 누구나 쓸 수 있는 네이버 블로그 같은 것들도 무차별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빙은 답변의 스타일을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창의적인’, ‘균형 잡힌, ‘정확한’ 스타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마치 음식점에서 취향에 따라 메뉴를 고르는 느낌이 들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준 글에도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다니. 그 말은 곧 인공지능이 글의 문체나 느낌, 더 나아가 그 의도도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감성’도 인공지능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모사인지 아니면 진정한 이해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 결과물은 이미 인간의 감성을 구현해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의 감성이라는 것도 타인의 입장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의 감성은 구현이 곧 존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바드(Bard)

그리고 지난 5월 10일, 마침내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 바드(Bard) 한글판이 공개되었다. 재밌는 것은 기존에 영어로만 제공되던 구글의 바드가 첫 번째 외국어로 선택한 것이 한국어와 일본어라는 사실이다. 구글이 언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영어와 이질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바드의 첫 외국어로 선택했다고 한다. 어려운 목표에 도전함으로써 더 큰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의도이다.

나는 구글 바드의 한국어판이 공개된 당일에 사용을 해보았다. 무척 완성도가 높다는 인상을 받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챗GPT나 빙과는 달리, 답변이 모두 완성되면 한 번에 출력을 해주었다. 이것은 사람이 답변하듯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하는 방식으로 답을 내는 기존의 두 서비스와는 다른 것이었다. 바드도 답변이 나올 때까지 약간의 시간 지연은 있지만 챗GPT나 빙 보다는 빠르게 답변이 나오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바드가 내놓은 답변의 우측 상단을 보면 ‘다른 답변 보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누르면 또 다른 답변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구글이 검색 결과를 단 하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리스트로 죽 나열하는 방식과 같다. 검색 엔진으로 시작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의 생성형 인공지능 중 신속성과 선택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구글 바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다만 바드도 심각한 오류를 보여준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결국 인공지능의 대답도 인간이 만든 지식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그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생성형 인공지능을 번갈아 활용해 가며 글을 기획하고 다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업무에서도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심지어 인사말이 필요하면 인공지능의 힘을 빌리고 있다. 이 짧은 시간에도 인공지능이 글쓰기 습관에 영향을 주었는데 앞으로는 어떤 변화가 이어질지 내심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다음 글에서 다룰 이야기

이어지는 글에서는 챗GPT, 빙, 바드를 실생활에서 활용하면서 느낀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려고 한다. 앞으로 글쓰기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리고 글쓰기를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내가 생각한 바를 독자들과 나눠보려고 한다.

그다음에는 교육 도구로서의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이 주제는 초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인 나로서는 아주 큰 관심사인 동시에 늦지 않게 해법을 찾아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이 인공지능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서도 안 되겠지만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먼저 인공지능에 대해 충분히 숙고한 뒤 아이들이 인공지능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더욱 풍요로운 미래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적게 될 내 생각들은 아마도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이 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결국 모든 경험과 생각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서로의 주관적인 생각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도 싹트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러므로 독자들도 오늘 글을 읽고 인공지능을 쓰면서 느꼈던 주관적 생각들을 댓글로 남겨주면 고맙겠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