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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의 정석 – 어느 지식인의 책장 정리론

책장의 정석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조카이자 현대적 개념의 ‘선전PR (Public Relations)’을 정립한 에드워즈 버네이스Edward L. Bernays는 천재적인 홍보 전문가이다. 그와 관련한 일화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경제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1930년대, 미국의 대형 출판사에는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좀처럼 늘지 않는 서적 판매량이 그것이다. 출판사들은 서적 판매량을 높일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PR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네이스를 찾아간다. 그리고 버네이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출판사들의 고민을 해결해준다.

버네이스는 책 판매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책의 장점을 홍보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엉뚱하게도 건설사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에게 집집마다 붙박이 책장을 설치하는 것을 권유한다. 붙박이 책장이 집의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건설사들을 설득했을 것이다. 이로써 그전까지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붙박이 책장이 점차 평범한 가정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책장이 벽 하나를 차지하자 사람들은 이를 비워둘 수 없었다. 점차 책을 더 많이 사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책 판매량도 증가하게 된다.

오늘날 집집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이 보편화 되는 과정에 이처럼 한 천재적 홍보 전문가의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리고 책장의 유행에 서적 판매 촉진 의도가 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책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따른다. 그것은 비단 책 구매 비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당신은 혹시 거실이나 방 한쪽에 놓인 책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없었다면 같이 한 번 살펴보자. 지금부터 ‘서울의 평균적인 아파트에서 책 한 권을 보관하는 데 따르는 비용’을 계산해보겠다. 내가 알기로 이런 방식의 ‘책 보관 비용 계산’은 처음 시도되는 것이지 싶다.

우선 책의 크기와 책을 보관할 책장의 크기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책의 크기를 먼저 살펴보면, 400여 페이지 정도 되는 단행본 한 권의 두께는 약 2cm이다. 편의상 이것을 책의 기준으로 삼자. 이어서 책장의 크기를 정하기 위해서 기준이 될 책장을 정해야 한다. 이것도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이케아Ikea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빌리Billy 책장을 기준으로 계산을 해보자. 이 책장은 폭이 80cm이므로 한 층에 단행본 40권 정도를 수납할 수 있다. 참고로 남자 성인이 팔을 좌우로 벌렸을 때 대략 160cm 정도가 되므로 이 책장의 폭은 그 반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책장은 6층으로 되어 있어서 책장당 총 240권 정도의 책을 수납할 수 있다. 이케아 빌리 책장의 바닥 면적은 80 x 28cm로 2,240cm2 즉 0.224m2이 된다. 요약하면 0.224m2의 면적에 약 240권의 책을 보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보관 비용을 살펴보자. KB국민은행이 발표한 2015년 7월 기준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시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전용면적 기준 m2당 6,131,000원이다. 이를 근거로 서울시의 평균적인 아파트에 폭 80cm짜리 이케아 빌리 책장 하나를 들여놓기 위해서는 책장 가격을 빼더라도 1,373,344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크기와 비용에 대한 정보를 종합하면, 책 하나당 보관에 따르는 비용은 1,373,344원을 240권으로 나눈 약 5,722원 정도가 된다. 책 가격을 권당 1만 원이라고 했을 때 이에 필요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비용이 그 절반을 넘는다니 생각보다 적지 않은 비용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장 보관 비용 = 1,373,344원
책 1권당 보관 비용 = 5,722원
(2015년 7월, 서울시 아파트 기준)

이처럼 별것 아닐 것 같은 책 보관 비용도 따지고 보면 낭비적 요소가 될 수 있다. 책장의 합리적인 운용에 관심이 가는 이유이다. 후에 살펴보겠지만 책장을 적절하게 운용하는 것은 비용 측면을 떠나서 독서 자체에도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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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의 합리적인 운용에 관심이 가는 요즘, 아주 재미있는 책을 접하였다. 『책장의 정석 원제 : 本棚にもル-ルがある | 나루케 마코토 지음 | 최미혜 옮김 | 비전코리아 | 2015년 12월 15일 출간』은 ‘책장을 운용하는 법’에 대한 책이다. 저자 나루케 마코토成毛眞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독서 전문가로 2009년 저서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 원제 : 本は10冊同時に讀め! | 나루케 마코토 지음 |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09월 15일 출간』로 한 번 접한 적이 있었다.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하면 그 책을 마칠 때까지 꾸준히 한 권에 집중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고 다양한 분야의 여러 책을 동시에 읽으며 지적 환기를 시킬 것을 강조한 책이었는데, 당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나는 그 후로 반드시 한 권만 손에 잡고 있어야 하는 방법을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 6년 만에 『책장의 정석』을 통해 같은 저자의 책을 접하게 되어 기대감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이 책도 기존의 독서 관련 책들과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 그동안 나온 책 중에는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를 다룬 책은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 책장을 활용하는가’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한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책장의 정석』에서 저자는 지식이 성장함에 따라 함께 변화해가는 책장을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신선한 책장’, ‘메인 책장’, ‘타워 책장’이란 이름의 기능별로 구분한 책장 운용 방법을 소개하는데 이 모든 방법의 원칙은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다. 책장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며,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책장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지식의 업데이트’를 위한 책장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 지속적이고 유동적으로 책 구성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다지 건질 것이 없는 책은 과감히 치우고, 집중해서 읽을 책만 잘 보이는 위치에 두라고 한다. 아울러 한 주, 한 달이 흐를 때마다 지속적으로 책의 구성이 변하게 하여 발전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타인과의 소통’으로 이끄는 책장의 보여주기 기능도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다른 이와 책에 관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 책장에 진열된 책을 보고 누군가가 “어, 저 책은 무슨 내용인가요?”와 같은 질문을 꺼내어 대화를 시작하는 상황을 말한다.

유교적인 전통이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지식을 남 앞에서 드러내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지적 허영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수해서라도 자신의 책장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권하는 이유는, ‘타인과의 소통’이 가져오는 장점이 크기 때문이다.

『책장의 정석』을 읽으며 느낀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종이책과 그것을 보관하는 책장만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책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석과 기준이 제시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전 글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나는 전자책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차후에 전자책이 더 널리 보급되면 이에 대한 정리법을 다루는 책들도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저자가 말한 책장 운용의 원칙인 ‘지식의 업데이트’와 ‘타인과의 소통’은 내가 ‘책에 관한 블로그를 쓰고 있는 이유’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 면에서 서평 블로그는 또 다른 형태의 책장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책장에 책을 보관할 때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고려하라고 하는데, 이런 부분은 카테고리, 태그, 검색으로 원하는 정보를 전방위로 찾아볼 수 있는 블로그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부분이다. 또한, 댓글을 통한 소통은 기존의 책장이 따라갈 수 없는 기능이다. 따라서 책을 읽고 서평을 블로그에 정리하여 가상의 책장으로 운용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보다시피 내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전에 책만 읽어나가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남는 게 많음을 느낀다.

저자는 마지막에 부록으로 ‘서평을 쓰는 방법’에 대해 따로 정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서평을 쓰는 방법을 읽고 난 후 저자가 나와는 다소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서평에 독자의 개성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평은 다른 사람이 그 글을 읽었을 때 책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느끼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독자 개인의 경험보다는 저자와 책 내용, 심지어는 표지의 느낌 등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자의 개성을 보여주고 싶다면 어떤 책을 선택했는지를 통해서 드러내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책은 독자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읽을 때 살아있는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평을 쓸 때도 독자 개인의 사상과 철학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서평은 책의 요약이나 홍보문이 아니라, 그 책에 대한 독자 개개인의 평가이고 그 평가의 바탕이 되는 것은 독자 개인만이 갖고 있는 삶의 기억과 경험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수만큼 무수히 다양한 서평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도구로서의 책장의 가치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 이 블로그를 통해 내가 추구하고 있던 가치와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비록 저자가 일러준 서평 쓰기 방식은 따르지 않을 것이지만, 앞으로 책장과 블로그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일러준 ‘지식의 업데이트’와 ‘타인과 소통’을 기억하고자 한다.

“책장의 정석 – 어느 지식인의 책장 정리론”의 3개의 댓글

  1. 책수집이 취미인 남편 덕분에 책 창고를 따로 두고 집에는 필요한 책만 두고 살고 있어서, 오늘 글은 더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에서 유용한 정보도 보았네요, 국민도서관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2. 오늘도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책 보관을 고민합니다. 저자는 이 고민을 장소를 차지하는 보관의 의미를 넘어서 생각 했네요. 연말 쉬면서 책장을 정리했는데 이 책 읽은 뒤 하면 좋았을 것 아쉽네요. 저는 회비를 받고 책을 보관해 주는 ‘국민도서관’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덕분에 한정된 책장은 여유 공간이 생겼습니다. 더불어, 늘어나는 아이들 책 자리를 만들어 아내의 눈총도 조금 피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전자책도 있네요. 바로 위시리스트에 넣었습니다.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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