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어린 시절을 잠시 떠올려보자. 스스로 글을 읽기 시작할 즈음 어떤 책을 가장 먼저 접했는가. 동화책이나 그림책도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 분명히 위인전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게 하는 것일까. 그 위인전의 주인공처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 때문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되어서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을 위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들의 비범한 능력에 더욱 무게를 두어서 ‘천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를 써내려 간 소수의 천재들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한 분야에서 남들이 오르지 못한 경지에 오르거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세상을 바꿔 나간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말대로 우리가 그들을 환호하거나 조롱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한 가지는 할 수 없다. 바로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이 천재이며 그들이 천재가 된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천재들의 삶을 깊이 있게 연구한다면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런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아이들의 잠재력을 일깨우는데 누가 썼는지도 불분명한 위인전보다 더 나은 참고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가 쓴 『창조적 인간의 탄생 원제 : Extraordinary Minds | 하워드 가드너 지음 | 문용린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03월 14일 출간』은 의미 있는 연구를 담은 책이다. 존 듀이John Dewey 이후 최고의 교육학자로 손꼽히는 가드너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여기는 네 명의 인물,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프로이트Sigmund Freud,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Stephen Woolf, 간디Mahatma Gandhi의 삶에 대해 살펴본다.
이들의 삶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적용한 핵심 관점이 바로 가드너 자신이 창안한 ‘다중 지능 이론Multiple Intelligence Theory’이다. 흔히 지능을 말할 때 언급하는 지능 지수 IQ는 ‘단일 지능’을 나타낸다. 지능을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반면에 가드너가 제시한 ‘다중 지능’은 인간의 지능에 다양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어떤 사람은 남과 잘 어울리는 대인 지능이 뛰어난 반면, 어떤 사람은 작곡과 연주에 뛰어난 음악 지능에 뛰어나다는 식이다. 가드너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네 명의 천재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본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 『창조적 인간의 탄생』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가드너는 ‘비범한’ 인물들의 특징을 네 가지 범주, 즉 모차르트로 대표되는 ‘대가’,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창조자’, 버지니아 울프로 대표되는 ‘내관자’, 간디로 대표되는 ‘지도자’로 나눈다.
그런데 제목에 ‘창조적’이라는 단어를 내세움으로써 이 책에서 다루는 천재의 범주 가운데 하나인 ‘창조자’와 혼동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원제는 ‘Extraordinary Minds’ 즉 ‘비범한 마음들’이다.
나는 ‘창조적 인간의 탄생’은 책 메세지의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으로서는 부족함이 있다고 본다. 만약 한국어판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직역이 너무 단조롭다고 느꼈다면 차라리 ‘비범한 인간의 탄생’, 아니면 더 줄여서 ‘천재의 탄생’ 정도가 더 나은 제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자. 앞서 말했듯 가드너는 천재들을 ‘대가’, ‘창조자’, ‘내관자’ 그리고 ‘지도자’로 분류한다. 그 각각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가’는 특정한 분야를 최고 수준으로 숙달하는 형태로, 음악가 모차르트가 대표적이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선택한 음악 분야에서 어린 시절부터 소질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거듭된 연주와 작곡으로 결국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대가로 자리 잡는다.
둘째, ‘창조자’는 한 분야를 의미있는 방식으로 개척해 나가는 인물을 말한다. 프로이트가 대표적으로 그는 정신분석이라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전에 존재하던 영역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대가’와는 다르게, ‘창조자’는 이전의 규칙으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완전히 새로운 해법으로 돌파구를 마련한다.
셋째, ‘내관자’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비범성을 발휘하는 부류를 말한다.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그러한 예이다. 울프는 자신의 문학적 천재성을 남에게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방향으로 활용한다.
넷째, ‘지도자’는 타인을 감화시키고 움직이는 능력에서 탁월한 소질을 보인다. 관심의 방향이 안으로 향하는 ‘내관자’와는 다르게 ‘지도자’는 타인과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간디가 대표적으로, 그는 영국의 억압에 시달리던 인도인들에게 비폭력이란 새로운 형태의 저항운동을 제시하고 앞에서 이끌었다.
저자는 큰 틀에서 위와 같이 네 가지의 범주로 비범한 천재들의 특징을 분류했지만, 이 밖에도 다양한 특징을 지닌 인물이 있을 수 있으며 여러가지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는 천재도 있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한편, 가드너는 비범성의 탐구가 비범한 사람의 개인적 소질person, 적성에 맞는 분야domain, 그리고 그의 업적을 인정해주는 사회field의 세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천재는 선천적 특성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교육 경험과 사회적 조건이 마련될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그 잠재성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나는 관점을 확장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땅에서 태어난 현생 인류가 총 1070억 명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비범한 인물들은 많게 잡아야 수백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비범한 인물이 되는가’ 보다 ‘비범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보람 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비범한 인물의 탄생에 환경적 요소가 중요하듯이 비범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역시 환경적인 요소가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가 비범한 인물들의 특징을 살펴본 후에 시선을 옮겨야 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천재가 아닌 대다수의 평범한 우리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다.
비범한 인물의 비결을 다룬 『창의적 인간의 탄생』의 책장을 덮으며, 역설적이게도 나는 ‘비범하지 않더라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마련한 답은 크게 세 가지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회이다.
우리는 모두 이 삶을 처음 산다. 그렇기 때문에 살다 보면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완벽함 보다는 개선을 통한 발전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 달리 말해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둘째, 다방면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사회이다.
저자의 다중 지능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지능은 한 가지 기준으로 높고 낮음을 평가할 수 없다. 예컨대 수학자가 그림에는 전혀 소질이 없을 수 있고, 마찬가지로 천재적인 화가도 축구에는 소질이 없을 수 있다. 이것을 달리 해석하면,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어떤 분야를 선택하는지에 따라서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다양한 수단으로 소질을 발굴하여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셋째, 실력에 앞서 인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이다.
세상에는 비범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 힘을 함부로 활용해서 결국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이들이 있다. 능력이 큰 만큼 피해도 크다. 뛰어난 정치력으로 권력에 중심에 서서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을 파탄으로 이끈 이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힘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실력에 앞서 갖추어야 할 인성의 핵심이다. 사회와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우리는 그 사람의 실력에 앞서 인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도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요컨대, 비범한 인물들의 삶을 연구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그들처럼 천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삶은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것도, 따라해야 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을 연구하는 이유는 ‘평범하게 살면서도 만족스러울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역사가 주목하는 비범한 인물이 되지 않으면 어떤가. 평범하더라도 때때로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으며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훌륭한 삶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평범함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 …..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