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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너머

질서 너머 책 표지

얼마 전 조던 피터슨Jordan B. Peterson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읽고 서평을 남겼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말로 유명해진 그 책에서, 그는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 필요한 원칙에 대해서 강조했다. 특히 사람들에게 권리보다 책임을 돌아볼 것을 거듭 주문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가치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전했다.

저자는 후속작 <질서 너머 원제: Beyond Order | 조던 피터슨 지음 |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03월 22일 출간>에서 삶의 원칙이란 주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삶의 원칙 바깥에 존재하는 혼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기존의 규칙과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질서 너머에 존재하는 혼돈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12가지 인생의 법칙>과 <질서 너머>, 이 두 연작은 사람들이 평소 막연하게 고민하면서도 정작 그게 무엇인지조차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능숙하게 끄집어내고 시원한 해법까지 제시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조던 피터슨이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화제인가 궁금했는데, 이제는 그럴 만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두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낯설지 않은 단어 하나가 계속 맴돌았다. 저자인 조던 피터슨이 어쩌면 거기에 속한 부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데, 그 단어는 바로 ‘꼰대’다. 책을 읽는 내내 ‘조던 피터슨은 꼰대인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먼저, 저자는 옛날이야기를 끌어와서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그는 성경 구절부터 자기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처의 이야기를 가져온다. 이것들은 모두 과거의 이야기이다. 꼰대의 트레이드 마크가 ‘라떼는~’이라는 걸 생각하면, 옛날이야기를 즐겨하는 조던 피터슨을 꼰대의 범주에 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그가 강조하는 핵심 가치들도 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삶의 원칙’을 말했고 <질서 너머>에서는 ‘혼돈 속의 가능성’을 말한다. 전자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도리란 말이지…”라고 한다면, 후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난 말이다. 옛날이야기와 뻔한 메시지, 이 두 가지는 꼰대의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글에는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왜 그런지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짐작건대 그것은 아마도 그의 글에 느껴지는 진솔함 때문인 듯싶다. 그는 요 몇 년 사이 자신이 겪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고백하는데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아내는 암으로 투병했고 딸은 난치병으로 고생했으며, 정작 자신도 약물 중독을 극복하느라 어둡고 긴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자기 경험에 비추어 독자들에게 그가 깨달은 바를 솔직하게 전한다. 인생의 장애물을 맞닥뜨렸을 때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파묻듯 외면할 게 아니라 사태를 똑똑히 응시하고 용기 있게 맞서라고 말한다. 낡은 틀에 갇혀 있지 말고 새로운 해법을 찾아 나서라고 주문한다. 여기에 독자들을 향한 저자의 선의까지 더해지면 ‘옛날이야기’는 ‘라떼는~’이 아니라 생생한 경험담으로 거듭난다.

이는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의 유행에 편승하는 이들의 행태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들은 지금까지 없던 남다른 생각으로 세상에 파문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사고방식은 경직되고 실제 삶은 위선적이다. 남의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남을 인정하는 것에는 인색하다. 겉으로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인간들이야말로 꼰대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부류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꼰대’는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뻔한 말을 한다고 꼰대는 아니다. 옛날이야기를 즐긴다고 꼰대는 아니다. 바람직한 삶을 살자고 사람들을 설득한다고 꼰대는 당연히 아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 실제로는 자신밖에 모르면서 남을 위하는 척하는 이들, 한마디로 정직하지 못한 이들이야말로 꼰대가 아닐까 싶다. 꼰대는 고리타분함보다는 진솔하지 못함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조던 피터슨은 꼰대일까 아닐까. 그의 글만으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조던 피터슨 자신도 작가로서의 대중을 상대로 명성과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위선의 가능성이 있다. 그의 삶이 실제로 자신이 말한 것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기 전까지 판단은 보류되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의 글은 충분히 진솔하고 가치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도움이 된다. 적어도 정치적 올바름에 사로잡혀 관용을 잃은 이들보다는 ‘원칙을 지키되 틀에 얽매이지 마라.’는 조던 피터슨의 주장이 훨씬 균형 잡혀있다. 조던 피터슨이 설령 꼰대일지언정 유익한 꼰대라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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