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 100명 가운데 44명은 지난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잡지 한 권을 읽어도 책을 읽은 것으로 인정해 주는 조사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니 매우 놀라울 따름이다. 더욱이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인구 비율’은 해마다 상승 중이라고 한다.
혹시 이 결과를 보고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안 읽어서 문제야.”라고 생각한다면 꼭 그럴 일도 아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인구 비율’은 30대까지 10명 중 3명, 40대 10명 중 4명, 50대 10명 중 5명, 60세 이상 10명 중 7명으로, 연령대가 증가할수록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왜 이렇게 독서가 외면받게 된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으로는 독서를 대신할 만한 다른 즐길 것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이제 지하철을 타고 주위를 둘러보면 책을 손에 쥔 사람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독서로부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나 또한 독서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으로 책 읽기가 얼마나 지겨울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어릴 적 나는 두께가 있는 책에 대한 일종의 공포심이 있었다. 학교에서 억지로 봐야만 하는 교과서를 제외하고 100페이지가 넘는 책은 펴볼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경험을 통해서 독서에 대한 관점이 바뀌게 되었다.
열 살이 되던 해, 나는 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병원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머리맡에 부모님이 가져다 놓은 책이 눈에 띄었다. 책 내용은 약간의 두뇌 회전이 필요한 수학 문제집이었다. 정규 교과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야말로 취미 성격의 책이었다. 이를테면 “9개의 점을 4개의 연결된 직선으로 모두 지나게 하시오.”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 당시 얼마나 심심했는지 책을 펴고 문제를 풀어나갔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었지만 한 문제 한 문제를 풀어갔다. 그리고 점차 나는 기분 좋은 성취감을 느꼈다. 학교와는 달리 누구도 읽으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숙제처럼 증거를 남길 필요도 없었다. 오로지 나 자신의 호기심과 흥미로 책을 펼쳤다. 그렇게 한 권을 마친 후 이번에는 다른 분야의 책도 그렇게 읽어봤다. 해볼 만하다 싶었다. 그런 식으로 병원 침대 위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하나둘씩 알아갔다. 당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책 내용이 아니다. 남으로부터의 인정보다 자기 스스로의 만족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자기 삶의 철학으로 정립한 이가 있다. 『지적 생활의 즐거움 P. G. 해머튼 지음 | 김욱 옮김 | 리수 | 2015년 12월 01일 출간』의 저자 필립 길버트 해머튼Philip Gilbert Hamerton은 빅토리아 시대의 지성인으로 ‘지적 생활intellectual life‘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저자는 당시 물질문명 앞에 비굴해지고 인기에 영합하는 지성인들을 보며 ‘지적 생활’이란 “타인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세기 사람의 말이지만 지금 적용하기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한편, 저자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누군가 저자에게 인생 상담을 한 상황을 가정하여, 저자가 이에 대해 조언하는 답장 형식으로 쓰여있다. 저자는 각각의 답장을 통해서 지적 생활이란 말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살펴본다. 이어서 다양한 지성인들 즉,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등 당대의 다양한 문인과 학자들의 개인적인 생활방식도 소개한다.
그 가운데서도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지적 생활에는 육체적 건강이 필요하다는 것’, ‘지적 생활에는 계급이 없다는 것’, ‘타인의 인정보다는 스스로의 만족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저자는 지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육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꾸준한 운동과 함께 절제된 생활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커피나 담배와 같은 기호품도 지나치면 해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다음으로, 지적 생활에 계급이 없다고 하는데, 이는 반드시 고상한 활동만이 지적 활동의 자격을 갖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특히, 읽기의 대상을 반드시 책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으며 신문과 같은 매체도 책이 전해줄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만족이 중요하다는 것’은 지적 활동의 목적에 관한 말이자 가장 핵심 주제이다. 저자는 지적 활동이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스스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적 생활의 즐거움』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연장 선상에서, 내가 꾸려가고 있는 이 블로그에 관하여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 이 블로그도 지적 생활의 일부라는 관점에서, 내가 책을 주제로 하고 있는 이유이다.
글을 시작하면서 소개한 어린 시절 병원에 입원했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나는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만족이 독서 습관을 갖는데 중요함을 배웠다. 그리고 이 독서 습관이 훗날 내 삶을 조금이나마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믿음은 내가 지금 외과 의사로 일하며 돌보고 있는 환자들, 더 나아가 현재 희망을 잃고 힘들어하는 모든 환자들을 위해서 책이라는 매개체로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왜냐하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들 가운데 급성기나 중증 치료를 받는 일부 외에는 다양한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병실마다 놓여있는 TV에 시선을 뺏겨서 시간을 보내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 아니면 졸리지도 않는 낮잠을 자거나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이들 가운데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든 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삶을 더 긍정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는 이들이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비록 저분들이 병실에 누워 있지만, 그 시간을 잘 활용하면 훗날 일상으로 돌아가서 분명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그리고 환자들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안내하는 것은 내가 의사로서, 특히 공공병원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한발 더 나아가 ‘이 사회의 약자들이 훗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거듭된 실패에 지친 학생과 취업 준비생, 바닥을 보이는 통장 잔고에 매일이 조마조마한 사람들, 실직 후 재기를 노리는 아버지들. 나는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 책이 훌륭한 안내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블로그 집필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내가 소개하는 책들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는 충족하도록 하고 있다. 우연찮게도 이 세 가지 기준은 앞서 말한 『지적 생활의 즐거움』에서 강조한 세 가지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 과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책들이다. 쉽게 말해 고전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결코 권위에 의해서 책을 선정하지 않고자 한다. 다른 글에서도 거듭 밝혔지만, 권위란 그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생겨나는 유령일 뿐이다. 권위란 ‘실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가리는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라도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고 판단되면 결코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지적 생활에 계급이 없다는 것과 맥이 닿아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나는 베스트셀러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한다.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을 더 많이 읽으려고 한다. 생각해보자. 당신이 만약 세상에 1,000권만 나오고 절판된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전 세계를 통틀어서 그 책에 담긴 내용을 흡수한 1,000명 가운데 하나가 되는 행운을 얻게 되는 셈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을 통해 남다른 생각이 가능해진다.
둘째, 현재를 굳건히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이는 내 본업인 의료와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올바른 의학 지식과 의료 윤리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책을 다루고자 한다. 이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싶다. 건강한 삶은 건전한 지적 생활을 누릴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셋째,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책이다. 계속 블로그를 읽어온 분들은 알겠지만, 이 블로그에는 세상의 흐름과 신기술의 동향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책을 고른 이유에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해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 현재의 통념과 주변 사람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매몰되지 않고 훗날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위한 안목에 도움이 되는 책을 다루고자 한다. 이를 통해 나 자신도 더 배우고 내 글을 읽는 이들과도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싶다.
나는 특히 이 마지막의 기준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거듭 말하지만, 타인의 인정보다는 스스로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핵심이다. 사실 앞의 두 가지를 잊더라도 이 한 가지를 확실히 가지고 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지적 생활의 출발이자 목적지는 스스로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만족을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아무쪼록 지금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이 더 나은 삶과 미래에 대해 준비를 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현실에 주눅이 들지 말고 미래를 위해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준비하자. 오래전 내가 병원 입원을 통해 배웠던 것처럼 말이다.
아울러, 나는 스스로 모자람이 많은 사람이란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배워가며 글을 이어갈 것이다. ‘이 사회의 약자들이 훗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겠다는 초심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얼마전 이 책을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여 검색중에 우연히 들렀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날때면 보물을 찾은 기분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논리적인 글 잘봤습니다.
계속 좋은 글 바랍니다.
독서하는데 있어 방법론만 무성한 요즘인데 마음가짐을 잡아주는 책이군요. 좋은 도서 소개 고맙습니다.^^
한말씀 한 말씀 마음담아 읽고 갑니다.
매편 큰 감동으로 책읽기를 크게 응원해주십니다
귀한 글 보고 많이 느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매번 좋은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밀려 오지만
아직도 책 읽기를 생활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책 읽는 독자가 될 것입니다. 금년 목표는 책 읽기와 절주(금주는 어렵겠고)입니다. 그래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조화를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