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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보건소의 미래

요즘 챗GPT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챗GPT는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이다. 이전에도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등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끈 적이 있었지만, 챗GPT는 그것들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능력을 보여준다. 수천억 개의 매개변수를 기반으로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 질문을 하고 답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건소는 무엇을 하는 곳이지?”라고 물으면 “보건소는 건강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이어서 보건소에서 수행하는 업무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한다.

나는 보건소에서 일한 뒤로 일종의 직업병이 하나 생겼는데, 뭔가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그걸 어떻게 보건소 업무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곤 한다. 손에 망치를 들면 주변의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더니,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오늘은 그동안 챗GPT를 보건소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궁리한 끝에 얻게 된 세 가지 아이디어를 나눠보려고 한다.

먼저, 건강 상담에 활용할 수 있겠다. 요즘 보건소라고 하면 코로나19를 먼저 떠올리지만, 보건소에서는 의사 진료부터 금연 금주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건강 상담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면 크게 두 가지의 개선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건강 상담 서비스 제공자도 사람이다 보니 때로는 착오에 의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할 때가 있다. 그리고 건강 상담은 즉각적인 응답이 필요한 경우도 많은데 보건소에서 이를 모두 만족시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정보와 시간의 한계에 구애받지 않는 인공지능 챗GPT라면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챗GPT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정서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가까운 미래에 초고령사회로 진입을 앞두면서 독거 어르신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보건소의 여러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독거 어르신들이 일상에서 겪는 외로움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치매를 비롯한 여러 건강상의 문제를 악화시킨다. 국내외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위기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돌봄 로봇’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도입된 돌봄 로봇들은 아직 행동이 단순하고 대화의 폭도 한정적이다. 돌봄 로봇의 대화 기능을 챗GPT로 보강한다면 훨씬 현실감 있는 상호작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어르신들의 정서적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민원 서비스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적 대립을 방지할 수 있다.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겪게 되는 가장 힘든 상황 중 하나는 직원들이 민원인의 반말과 폭언에 노출되었을 때다. 물론 이것은 비단 보건소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병원 응급실, 편의점 계산대, 전화상담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 것이다. 만약 이런 위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챗GPT를 음성인식과 연결하여 활용한다면 어떨까. 일단 업무 현장의 직원들을 언어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서비스 이용자도 상대방이 사람이 아니란 점을 인식함으로써 상황을 재평가하고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차분한 인공지능이 최선의 답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 모두 더욱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외면하기 어려운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건강 상담도, 정서적 지원도, 불만 해결도 인공지능이 모두 도맡아 해결한다면 인간이 굳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이 만든 데이터 위에서 돌아가는 것이고, 이는 챗GPT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가치 있는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무수한 데이터들 가운데 적절한 것을 선택하고 더 나아가 기계 학습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질문’이라는 방아쇠가 필요하다. ‘질문’은 인간 고유의 역할이며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다.

바야흐로 ‘답’이 아닌 ‘질문’의 시대다. 건강 정보를 구축하는 과정, 독거 어르신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언어폭력으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민에는 모두 인간만이 가능한 ‘질문’이 선행한다. 그리고 이것은 보건소 직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인공지능과 대립하기보다 오히려 그 능력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예컨대, 이제껏 인간만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신문 칼럼을 쓸 때도, 인공지능과 적절한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챗GPT와 대화하며 써 내려간 이 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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