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이해인 수녀님을 뵙고 왔다. 좀 더 일찍 수녀님이 추천사를 써주신 나의 첫 책을 들고 가서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했지만, 그동안은 코로나로 수녀원에 외부 손님 방문이 중단되었기도 했고, 그걸 떠나서 코로나 대응 업무를 보는 내가 혹여라도 수녀님과 수녀원에 폐를 끼칠까 걱정되었기에 수녀원 방문을 삼갔다. 하지만 이제는 수녀님과 나 둘 다 백신을 2차 접종까지 마치고 시간도 충분히 경과해 면역력이 생겼다고 판단하여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했다.

수녀님을 뵈러 가던 당시는 내가 유퀴즈를 통해 방송을 탄 직후라서 이곳저곳으로부터 많은 관심과 응원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메일함을 열고 1분 후에 새로 고침을 하면 메일이 전부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란 한여름의 소나기와 같기에 시간이 흐르면 곧 잠잠해지리라는 걸 알았지만, 막상 그 상황의 한복판에서는 겁부터 났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시기를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평생을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살아오신 수녀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수녀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금요일 오후, 직장에는 반차를 쓰고 부산 금련산역 옆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를 찾았다. 수녀원 경비실에 “이해인 수녀님 뵈러 왔어요.”라고 말씀드리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미 저 멀리서 수녀님이 내려오고 계셨다. 수녀님이 방금 수녀원 화단에서 가져온 꽃이라며 백일홍 한 다발을 건네주셨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초여름의 따뜻한 햇볕 아래서 나란히 걸으며 해인글방으로 향했다. 해인글방은 원래 수녀원 부속 유치원 건물인데, 유치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 지금은 이해인 수녀님 앞으로 오는 여러 편지와 선물들로 채워진 응접실 겸 서재로 쓰이고 있다.

자리에 앉자 수녀님이 요즘 즐겨 듣고 있다며 앙드레 가뇽André Gagnon의 연주곡을 틀어주셨다. 수녀님은 마치 외갓집을 찾아온 손주를 대하듯 주섬주섬 뭔가를 계속 챙겨주셨다. 여러 엽서와 사진 그리고 책들을 종이 가방에 가득 담아주셨고, 수녀님이 직접 광안리 해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에 꽃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성경 말씀을 적은 종이를 붙인 것을 나눠주셨다. 수녀님은 암 투병을 겪은 뒤로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명랑 수녀’가 되려고 노력 중이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그 별명처럼 뵙는 내내 해맑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즐거운 담소를 나눈 뒤 수녀원의 저녁 기도 시간이 되어 해인글방을 나섰다. 나는 한 손에는 백일홍이 담긴 작은 꽃병을, 다른 한 손에는 선물이 한가득 담긴 종이 가방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때 다른 선물들과 함께 수녀님으로부터 받은 책이 <이해인의 말 이해인 , 안희경 (인터뷰)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12월 15일 출간>이다. 수녀님이 최근에 내신 책인데 평소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잘 담긴 것 같다며 선물해 주셨다. 그때 주신 책을 한 달이 지난 이제서야 다 읽었다. 코로나 일로 바빴다는 것은 솔직히 핑계이고 게으름이 진짜 이유이다. 아무튼 그렇게 일독을 마치고 그 여운을 글로 남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인의 말>은 이제껏 이해인 수녀님이 세상에 내놓은 여러 다른 책들과 조금은 결을 달리한다. 무엇보다 책 제목에 ‘이해인’이라는 수녀님의 필명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 그렇다.1 그도 그럴만한 것이 이 책에는 이해인 수녀님이 지난 50여 년간 수도자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살아온 삶의 여정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이해인 수녀님은 세상에 알려진 ‘시인 이해인 수녀’의 모습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 이해인 수녀’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인터뷰 형식으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 씨가 이해인 수녀님과 진행한 열하루 동안의 인터뷰를 책으로 엮었다. 인터뷰어 안희경 씨는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대학원에서 불교 미술을 공부한 후, 불교방송국 PD로 일하면서 시사, 교양, 음악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한다. 안희경 씨는 이해인 수녀님과 이 책을 쓰기에 앞서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장 지글러Jean Ziegler,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등 세계적인 지성들과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이를 정리하여 책을 낸 바 있다. 다만, 이번에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추어 부산에 있는 이해인 수녀님과 미국에 있는 안희경 씨가 매일 오후 세 시에 화상 통화로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해인 수녀님과 안혜경 씨의 첫 인터뷰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수녀님은 코로나 때문에 뜻하지 않게 외부활동이 줄어들게 된 지금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코로나 수련기’로 여기자고 말씀하신다. 코로나 시대에 혼자 보내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그동안 당연하다고만 여겨온 타인의 소중함에 대해 돌아보자는 뜻이다.

이어서 인터뷰는, 이해인 수녀님의 어린 시절부터 수도자와 문인으로 살아온 50여 년의 세월에 이르기까지, 수녀님이 살아온 삶의 기억을 다룬다. 수녀님이 숱하게 겪었던 인간적 고뇌의 시간을 조용히 따라가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수도자들의 삶도 속세에 속한 우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되고, 오히려 그 때문에 친근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살피는 구도자로서의 고민과 그 답을 구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 앞에서는 경외심이 들었다. 더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모습도 이해인 수녀님이 걸어온 구도자적 삶의 일부임을 알게 되었다.

한편, 인터뷰 중간중간 수도자들의 소박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도 있었다. 몇 벌 안 되는 수녀복이 수녀님들이 가지고 있는 옷의 전부라던가, 무늬가 있는 앞치마가 멋을 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이야기에서는 물질적인 만족보다는 작고 소박한 것에 만족하며 기쁨을 느끼는 검소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녀원의 모든 재산은 공동 관리이기 때문에 이해인 수녀님의 집필 활동을 통해 생기는 인세 등의 수입도 모두 수녀원으로 돌아가고, 병원비나 교통비 등 일상에 필요한 모든 돈은 수녀원에서 필요한 만큼만 받아서 쓰신다고 한다. 독자들에 따라서는 자기 재산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돈에 마음을 두지 않고 수도 생활에 정진할 수 있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사실 그것은 내가 공직을 택한 이유와도 비슷했다. 비록 달마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다른 의사들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오히려 바로 그 점에서 비롯된 자유가 있다.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관심을 거두는 대신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에 전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직자와 수도자의 삶이 묘하게 닮아있었다.

어느덧 예정된 인터뷰 일정이 중간을 넘어서고 펼친 책의 좌우의 두께도 비슷해질 즈음, 대화의 주제는 이해인 수녀님의 삶 속에서 만나온 소중한 인연들로 이어진다. 법정 스님부터 신창원 씨에 이르기까지 수녀님이 살아오시는 동안 쌓여온 인연담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수녀님의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녀님의 어머니는 6.25 피난길에서 남편, 그러니까 수녀님의 아버지와 헤어진 후 홀로 바느질하며 1남 3녀를 홀로 키우셨다고 한다. 중간중간 수녀님의 어머니가 수녀님에게 보낸 편지글이 소개되는데, 수녀님의 문학적 재능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열하루 동안 이어져 온 인터뷰의 마지막에 이르러, 안혜경 씨는 수녀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더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묻는다. 이에 수녀님은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걸 기억해 달라고 당부한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들과 지금 함께 있는 동안 잘 지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외된 곳도 돌아봐 달라는 당부이다.

이렇게 이해인 수녀님의 책 <이해인의 말>을 읽고 내 나름대로 느낀 감상을 글로 남겨 보았다. 현시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 중 한 분인 이해인 수녀님이 직접 자신의 지나온 삶을 정리한 책이다. 이런 책을 내가 평한다는 건 주제넘은 일이다. 그저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수녀님이 몸소 보여주신 고독, 검소, 그리고 세상을 향한 관심은 곧 내가 선택한 공직자의 길에도 똑같이 추구해야 할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뒤 나눌 수 있는 소감의 전부가 아닐까 한다.

수녀님은 지난 50여 년의 수도 생활을 돌아보는 심정을 물어보는 질문에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낀다.”라고 답하셨다. 나 또한 <이해인의 말>을 읽는 내내 수녀님이 말씀하신 그 평화로운 마음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해인 수녀님과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음에, 그리고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이해인의 말”의 2개의 댓글

  1. 잘 읽었습니다
    온갓 잡초로 뒤엉킨 밭, 머머니 호미 잡고 뒤적이고 지나가시면 파릇하게 줄서진 농작물 생각났습니다
    뇌리속 “담백한 물빛의 평화”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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