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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미래를 만나다

당신은 ‘장사’와 ‘사업’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사람마다 두 단어에 갖는 느낌도 다양할 것이다. 대체로 장사라고 하면 소규모로 이루어지고 체계가 덜 갖추어진 인상을 받게 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수퍼나 치킨집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업이라고 하면 유명한 대기업들이 그러하듯 세련된 브랜드를 내세우고 거대한 회사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장사와 사업의 핵심적인 차이는 그 규모나 제공하는 상품의 종류가 아니다. 주인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장사와 사업의 차이는, 공식적 용어는 아니지만, ‘주인의 신체적 현장성身體的 現場性이 필요한가’로 판단할 수 있다. 쉽게 말하여 주인이 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지 여부이다. 주인이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면 장사이고, 없어도 된다면 사업이다.

그렇다면 병의원에서 우리가 의사들을 만나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 즉 진료는 어느 범주에 속할까. 의사가 그 자리에 없으면 안되기 때문에 진료는 명백히 장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러 개의 분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franchise 방식의 병의원의 경우, 경영을 하는 오너owner 입장에서는 사업으로 볼 수도 있다. 오너가 진료실을 지키고 있지 않아도 진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여전히 의사 가운데 누군가는 특정 장소에 진료실을 마련하고 시간을 서비스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진료의 실제 모든 과정은 장사의 속성을 갖는다.

물론 일부 고매하신 의사 선배님들께서는 숭고한 의업을 장사에 비유하는 이 글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그 장사가 의사들이 밥 먹고 살 수 있게 한 소득의 원천임을 기억하면, 스스로가 하는 일을 달리 포장하고자 하는 그 태도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요컨대, 의사라는 직업에는 그간 두 가지의 인과관계를 갖는 특성이 있었다. 반드시 그 의사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신체적 현장성’과, 이로 인해 한 지역의 환자들에 대해서 멀리 떨어진 의사보다 비교우위를 갖는 ‘지리적 배타성地理的 排他性‘이 있었다. 이는 한 지역 환자들이 그 지역 의사에 대한 안정적 수요를 창출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다수의 의사들이 그들의 업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보호벽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앞으로 의사들이 이전만큼 ‘장사’해서 살기에도 힘들게 되었다. 대다수의 의사들이 장사로 살 수 있었던 두 가지 요소 ‘신체적 현장성’과 ‘지리적 배타성’이 모두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원격의료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장사꾼으로서의 이점을 상당 부분 잃게 생겼다.

이거 어디서 보았던 기억이 나지 않는가. 동네 수퍼들이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파리가 날리고, 또 그 대형마트는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으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동네 서점들이 대형서점의 등장으로 하나 둘 문을 닫고, 또 그 대형서점은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역시 경쟁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과거에 누렸던 편안함에만 안주하다가는 누구든 그 입지가 대단히 좁아질 것이다.

사실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이들의 심리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보면 그것은 ‘경쟁 회피’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는 ‘지리적 배타성’, 즉 지역에 따른 상권 독점에 따라 실력이 조금 모자란 의사라도 어느 정도 환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지역에 따른 상권 독점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외부의 의사들로부터 지켜줬던 울타리가 사라졌다. 결국 울타리 너머의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의사와 무한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타 의사들에 대한 공포감과 경쟁심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의사들의 속성을 2010년에 모바일 의학 상담 서비스를 하면서 실감나게 경험했다. 애초에 스마트폰으로 다수의 의사가 다수의 환자에게 상담을 하게 하는 서비스는 그 취지는 좋았지만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았다. 의사들의 참여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하긴 자기 눈앞에 환자를 진료하기에도 지치는데 어디서 보낸 건지도 모를 상담에 일일이 대응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하나의 전환점으로 인해서 비로소 수익을 내는 구조로 바뀌었다. 그 전환점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그것은 의사들 개개인에게 특정 지역에 대한 상담 독점 권한을 준 것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지역에 대해서 독점권을 주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세부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상담 실적 및 신뢰도 등을 고려하여 구, 읍, 면 단위마다 과별로 의사들을 선정해서 상담 독점권을 부여하였다. 희소성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 경우 독점권이 곧 희소성이었다.

우리 의사들의 심리의 근저에는 업의 특성상 ‘지역에 대한 독점’의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대면 진료라는 행위의 속성인 ‘지리적 배타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원격의료에 대한 공포는 의사들의 ‘지역에 대한 독점’에 대한 위협에 기인한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자동차가 처음 세상에 나오던 19세기 말, 말발굽을 만들던 대장장이가 타이어를 만들던 이들보다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발굽을 만들던 이들은 흔적도 찾기 어렵게 되었으나, 타이어를 만들던 이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이처럼 새로운 원격의료라는 도도한 흐름에 직면한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스펀지처럼 새로운 지식을 빨아들고 익숙해져야 한다. 원격의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속속들이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격의료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묻는다면 솔직히 나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를 철저하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흔히 구분없이 사용하긴 하지만 원격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는 엄밀히 말하여 같은 개념은 아니다. 원격의료는 말 그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의료’를 말하고, 디지털 헬스케어는 쉽게 말해서 ‘컴퓨터를 이용한 건강 관리’이다. 이해를 돕고자 사례를 들자면, 유선 전화로 먼 거리에 있는 의사와 통화를 하여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치료 방침을 정하는 것은 원격의료일 수는 있지만 디지털 헬스케어는 아니다. 반면, 당신이 의사의 도움 없이 스마트폰과 연동된 체중계로 매일 같이 체중을 기록하며 비만을 예방하고 있다면, 그것은 디지털 헬스케어일지언정 원격의료는 아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원격의료를 구현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앞으로 다가올 원격의료에 대한 준비도 불가능하다. 『의료, 미래를 만나다김치원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15년 06월 30일 출간』는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해서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책보다도 자세하면서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이다. 때문에 원격의료를 앞둔 현시점에서 이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한 단계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할 것이며, 그것은 결국 원격의료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장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민을 담았다.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로이 만든다는 것은 항상 큰 도전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것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비로소 지속성을 갖고 발전될 수 있다.

2장에서는 현재 실용화 되었거나 실용화를 앞두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본다. 스마트폰 앱smartphone apps과 같은 소프트웨어software부터 웨어러블 기기wearable device와 같은 하드웨어hardware까지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3장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서 살펴본다. 특히 눈여겨볼 내용은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병원, 제약업계, 보험업계, 정부로 대표되는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살펴보는 과정이다. 이것은 디지털 헬스케어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4장에서는 업계의 흔한 오해를 다루는데 이는 1장과 함께 비교해가며 읽으면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1장의 도전과제가 잘못 해석되었을 때 4장에서 다루는 오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장에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논란의 주제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이는 곧 효용성 여부로 압축된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과연 생각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다.

6장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 먼저 해결되어야 할 이론적, 제도적 과제들에 대해서 다룬다.

7장에서는 IBM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수퍼컴퓨터 왓슨Watson과 안경 모양의 웨어러블 컴퓨터인 구글 글래스Google glass의 사례를 들어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원격의료의 본질은 의료 장벽의 붕괴다. 그리고 그 장벽의 붕괴는 상당 부분 디지털 헬스케어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 장벽의 붕괴를 원하는 이들은 이미 장벽 외에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이들일 것이다. 반대로 장벽의 붕괴를 원치 않는 이들은 장벽에 갇힌 환자들 외에는 만날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에, 장벽의 유지가 절실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빨리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마무리하며 조금 더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환자는 의사가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이므로, 환자에게 유리한 것이야말로 의사가 가야 할 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환자 입장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의료 장벽의 붕괴가 가장 이롭다. 그러므로 장벽의 붕괴에 부질없이 저항하기 보다는 그것이 붕괴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을 읽고 한 발 앞서 행동하자.

“의료, 미래를 만나다”의 1개의 댓글

  1. 선생님 말씀이 너무 한쪽에 치우친 의견이라 생각되어 댓글 남깁니다. 선생님의 시대를 보는 눈과 발빠르게 원격의료 사업에 투신하신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며 사업적 수완도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반대에 서있는 의사 전부를 경쟁 회피 혹은 실력이 부족한 의사로 몰고 마치 환자에게 이로운 것을 반대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사업이 어떤 수익 구조를 가지는지 잘 모르겠으나, 의사 회원의 광고비 목적 지출 금액이 상당부분의 수익이 되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미래의 수익 구조는 지금과는 달라서 관계 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써는 자기한테도 겨누는 화살이 아닌지요?

    그리고 작금의 일차의료 붕괴 상황이 더욱 가속화되는 것이 과연 환자한테 유리한 결과만 가지고 오는지요? 이 작은 한국 땅에서 당일 30분 이내에 의사 못만나는 지역이 혹시 있습니까? 그 외에 디테일한 부분은 어차피 다 아시는 내용일테니 더 적지는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면 원격의료는 의료계 전체의 파이가 커지기 보다는 누군가의 빵조각을 빼앗아 배를 불리는 수단이 될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과연 환자의 편익이 증가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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