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소의 수두 즉 우두를 사람에게 접종하면 그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제너가 이 방법을 세상에 소개했을 때 당시 많은 사람은 그 원료를 소에서 얻었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소의 고름을 맞으면 사람이 소로 변한다.’라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 오늘날 수십억 인류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예방접종은 이처럼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방접종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이용해 예방접종을 거부하도록 선동하는 이들도 여전히 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상식 있는 사람들은 예방접종을 하고 더 큰 질병을 막는 합리적인 길을 택한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지금 우리는 18세기 말에 소가 될까 두려워했던 사람들을 두고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알고 보면 다른 문제를 앞에 두고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바로 유전공학 말이다. 우리는 유전공학이 결국 인류를 망가뜨릴 거라며 걱정한다. 유전공학이라고 하면 생명에 손을 대는 뭔가 대단히 비윤리적인 행동부터 머릿속에 떠올린다. 남들이 그렇다니까 그냥 막연히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유전공학 자체는 윤리적이지도 비윤리적이지도 않다. 유전공학이 비윤리적일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은, 사실 깊게 들여다보면 그 기술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이다. 따라서 부작용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한다면 그 어떤 기술도 비윤리적일 이유는 없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 사람이 다친다면 그래서 비윤리적으로 되는 것일 뿐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윤리와 이익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개념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윤리적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지 여부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는 것이 의학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인류의 이익이다. 그러므로 의학이 인류를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게 한다면 결과적으로 윤리적인 것이 된다.
의학의 하위개념인 유전공학도 마찬가지다. 유전공학이 인류를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게 할 수 있다면 윤리적인 것이고 그것에 걸림돌이 된다면 비윤리적인 것이다. 유전공학이 인류의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는가. 그게 본질이다. 그 밖의 관습과 미신이 뒤섞인 논란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의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아지고, 무엇보다도 유전공학 기술로 인해 우리 일상이 더 건강하고 풍요롭게 변화한다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유전공학의 윤리성에 대한 논란은 유전공학 여명기의 해프닝 정도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서양등 빠르게 네거티브시스템을 도입하여 유전공학을 빠르게 선점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생명윤리법 등을 내세워 막으려고만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