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

‘적자생존’은 ‘가장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으로,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창한 이론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적자생존은 원래 다윈이 창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처음 펴냈을 때 적자생존을 다루지 않았다. 적자생존이 진화론에 포함된 것은 다윈의 추종자를 자처한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다윈을 설득하여 ‘종의 기원’ 5판에 새롭게 추가한 이후이다.

그러나 적자생존은 언젠가부터 진화론의 동의어, 더 나아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적자생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승자가 생존하고 패자는 제거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의식 속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자연의 섭리라는 데 누가 쉽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제 학교부터 기업까지, 경쟁하여 이긴 자가 살아남는 적자생존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원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자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라고 할 수 있다. 표를 얻는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가리고 승자만이 생존하는 선거는 적자생존의 핵심 가치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적자생존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남을 꺾어야 살아남는 게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면? 경쟁보다 생존에 더 유리한 방법이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 인류가 문명을 이룩한 힘의 원천이라면?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 리처드 랭엄은 우리 인류를 번성하게 한 비결로 적자생존 대신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 가설’을 제시한다. 자기가축화 가설이란 하나의 종이 진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강자가 약자를 짓밟기보다 서로 보살피는 방식을 택했을 때, 즉 자신을 스스로 가축화했을 때, 생존에 유리했다는 이론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이다. 아주 오래전 지구에는 호모 사피엔스 말고도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 같은 다양한 종의 인류가 살았는데,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신체적 지능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음에도 멸종에 이르렀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서로서로 보살펴주는 자기가축화의 길을 걸은 덕분에 번성한 반면 나머지 인류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각개 전투의 길을 걸었고 결국에는 멸종된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축화에는 양면성이 있다. 자기가축화된 종은 자기 집단 내부에 한없이 너그럽고 다정한 데 반해 이질적인 외부 집단에는 공격성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를 향한 다정함은 외부의 위협을 맞닥뜨렸을 때 잔인하리만치 적대적인 태도로 돌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자기가축화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렇게 안으로 굽은 팔의 팔꿈치로 내 편 아닌 누군가의 턱을 가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기가축화에 내포된 배타성은 상대에 대한 ‘비인간화dehumanization’로 나타나는데, 쉽게 말해서 내 편이 아니면 인간도 아니라는 뜻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내 편을 감싸기 위해 한 번 시작된 상대의 비인간화가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상대방을 비인간화하면 그 상대는 또다시 나를 비인간화할 수 있는 강한 동기가 생긴다. ‘비인간화’가 또 다른 ‘비인간화’의 명분이 되어 연쇄적인 ‘보복성 비인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요즘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선을 앞둔 인터넷 포털 뉴스 속 정치인들의 발언과 그 아래에 줄줄이 달린 댓글에서다. 같은 편의 흠결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지만, 다른 편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바로 그 모습 말이다. 상대방을 같은 인간으로 여긴다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우리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쟁에 불리한 이들조차 보듬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아직 자신이 속한 집단에만 머무르고 있고, 이질적인 외부 집단에 속한 이들에게까지는 전해지지 못했다.

이제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다. 혹시라도 원치 않는 후보가 승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선거 결과가 아니다. 상대 진영에 속한 이들은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여기는 비인간화, 그리고 그 비인간화가 다시 나를 겨누는 보복성 비인간화야말로 진정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인류가 진화의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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