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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맛있을까

왜 맛있을까

최근에 중국집에 갔던 적이 있는가. 있다면 잠시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사람들은 보통 식당에 들어서면 안쪽부터 순서대로 자리를 잡는다. 혹시 일행 중에 나이 지긋한 이가 있다면 가장 안쪽에 앉을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기도 한다. 모두 자리에 앉으면, 자연스레 누군가가 컵을 한쪽으로 모아서 물을 따른 후 한 사람씩 나누어준다. 그동안 또 누군가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모아서 각자 앞으로 보내준다.

잠시 후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온다. 식탁 위에 크고 무거운 메뉴판을 펼친 후, 각자의 취향에 따라 하나씩 짚어가며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말한다. 그럼 직원은 가져온 종이 쪼가리에 민첩하게 적어 내려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같이 나눠 먹을 ‘요리’가 하나쯤은 있어야 외식하러 온 기분이 나는 법이다. 보통은 탕수육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탕수육은 아이 포함 세 사람이면 보통 소짜를 시키지만, 어른 서너 사람 정도만 돼도 중짜를 시킨다. 인원이 그 이상이면 대짜를 시키기보다는 식탁 위에 나누기 편하게 소짜나 중짜를 여러 개 시키는 게 낫다.

한국말이 서투른지 말수가 적은 직원은 방금 적은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하고는 주방에 주문을 전하러 돌아간다. 그동안 남겨진 사람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탕수육이 나온다. 단무지와 양파 그릇을 밀치고 탕수육과 소스가 테이블 중간에 자리를 잡는다.

이제 식탁에 앉은 모두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탕수육을 바라본다. 잠시 동안 묘한 긴장감이 공기를 타고 흐른다. 누군가 적막을 깨고 “소스 부을까?”라고 물어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맞은편에서 “그냥 놓고 먹자.”라고 받아친다. 그렇다. 찍어먹는 ‘찍먹파’와 부어먹는 ‘부먹파’가 탕수육을 사이에 두고 격돌하는 순간이다.

탕수육을 먹을 때 소스를 부어먹을 것인지 찍어먹을 것인지는, 탕수육이 중국집의 필수 메뉴가 된 이래로 이어져온 오랜 난제이다. 어떤 이들은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어야 서로 어우러져 맛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또 어떤 이들은 부어먹을 때 탕수육의 바삭함이 죽기 때문에 그때그때 찍어 먹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괴짜 과학자들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는 이그노벨상IgNobel Prizes이라는 게 있다. 이 상은 매년 엉뚱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연구를 한 과학자 10명에게 주어진다. 만약 ‘찍먹’과 ‘부먹’ 가운데 어느 것이 탕수육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인지 연구한 과학자가 있다면, 노벨상은 몰라도 ‘이그노벨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가 될 만하다.

이게 그저 농담만은 아니다. 흡사 탕수육의 ‘찍먹 vs. 부먹’이 연상되는 주제로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실제로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통합 감각 연구소 소장 찰스 스펜스Charles Spence는 오늘날 세계 정상급 레스토랑들과 다국적 식품 기업들이 앞다투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심리학자이다. 그는 눅눅해진 감자칩을 먹을 때 바삭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면 뇌가 감자칩을 15% 정도 더 맛있게 느낀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말하자면, ‘찍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는 이 연구에 대한 공로로 공동 연구자 막스 잠피니Max Zampini와 함께 2008년 ‘이그노벨상’ 영양학 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음식의 맛은 혀의 미각뿐 아니라 후각, 시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의 영향을 받는다’는 독창적인 이론을 가스트로피직스Gastrophysics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기에 이른다. 가스트로피직스라는 단어는 미식학Gastronomy과 물리학Physics의 합성어로, 미각을 중심으로 다양한 감각과 인식의 관계를 연구하겠다는 저자의 뜻이 담겨있다.

『왜 맛있을까 원제 : Gastrophysics | 찰스 스펜스 지음 | 윤신영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04월 23일 출간』는 그동안 저자가 축적한 가스트로피직스의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음식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살펴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들이 매일 하는 식사가 더욱 맛있고 즐거워질 수 있는 방법들을 안내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후각, 시각, 청각 세 가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먼저, 후각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리는 ‘냄새를 맡는다’라고 할 때, 흔히 숨을 들이쉬는 모습을 떠올린다. 고기 굽는 냄새를 맡을 때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대기 중에 떠다니는 공기를 코로 흡입하며 고기를 굽는 현장에 앉아 있음을 실감한다. 물론 외부의 냄새를 감지하는 게 후각의 중요한 역할이기는 하지만, 그게 후각의 전부로 여기는 건 반쪽짜리 답이다. 후각은 숨을 들이쉴 때뿐 아니라 내쉴 때도 중요하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에서 올라온 휘발성 분자들이 코안을 지나면서 콧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갈 때도 우리는 냄새를 느낄 수 있다. 이때 우리가 맡게 되는 냄새는 음식의 풍미를 인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코를 막은 상태에서는 입속에 들어간 양파와 사과를 구분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맛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상당수는 사실 후각이 함께 작용한 결과이다.

그다음으로 시각적인 요소도 맛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핫초코가 흰색 컵에 담겨있을 때보다 오렌지색 컵에 담겨있을 때 사람들은 더욱 맛있게 느낀다고 한다. 카페라테는 투명한 유리잔보다 흰색 찻잔에 담겼을 때 더욱 강렬한 맛을 남긴다고 한다. 그리고 음료의 분홍색은 단맛을 연상시키는데, 녹색 음료에 설탕을 10% 더 넣더라도 분홍색 음료를 더 달게 느낀다고 한다. 한편, 색깔뿐 아니라 모양도 맛과 관련이 있다. 달콤한 맛은 둥글둥글한 모양, 쓴맛은 각진 모양과 잘 어울린다. 맥주 상표에 별 모양이 많이 활용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리도 맛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경쾌한 음악은 단맛을, 고음의 음악은 신맛을, 신나는 음악은 짠맛을, 부드러운 음악은 쓴맛을 더 잘 느끼게 한다. 또한 시끄러운 소리는 단맛을 덜 느끼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왜_맛있을까

이처럼 저자는 음식의 맛이라는 순수하게 미각으로만 결정되는 아니라 미각 외의 여러 감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총체적인 결과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본질이라고 말한다.

나는 책을 읽는 중간중간 이 책이 도움이 될 사람들이 떠올랐다. 당신이 만약 다음 세 가지 중에 하나 혹은 그 이상에 속해 있다면, 이번 주말에 잠시 시간을 내어 『왜 맛있을까』를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이 하는 일에 영감을 더하는 뜻밖의 소득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첫째,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요리사나 식당 주인을 예로 들 수 있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똑같은 음식이라도 무거운 식기에 담아서 제공했을 때 사람들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같은 음식이라도 무거운 식기에 담겨 나온 요리에 더욱 비싼 값을 지불할 의향을 보였다고 한다. 식당 주인이라면 펜과 수첩을 꺼내 메모해 둘 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케아 효과Ikea effect에 대한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이케아 효과는 행동경제학에서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라고도 하는데, 사람들이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을 더욱 높게 평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케아는 세계적인 가구 회사로, 이 회사의 가구는 완제품이 아니라 집에서 직접 조립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가 직접 노력을 들여 만든 가구를 원래 완제품 상태로 구입한 가구보다 더욱 값어치 있게 여긴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음식을 두고도 일어난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남이 만들어준 음식보다 자기가 조리나 준비 과정에 참여한 음식을 더욱 맛있게 먹는다. 앞서 이야기한 ‘부먹’과 ‘찍먹’도 둘 중에 어느 게 더 맛있는지를 떠나서, 탕수육과 소스를 따로 내오는 방식 그 자체가 꽤 괜찮은 판매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음식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다. 예컨대 미식가나 음식 블로거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다. 특히 음식을 먹기 전에 찬 음료를 삼가라는 저자의 조언은 미식가들이 꼭 새겨들을 만하다. 찬 음료는 혀에서 맛을 느끼게 하는 미뢰의 감각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찬 물로 혀를 마비시키는 따위의 행동은 가급적 삼가는 게 좋다. 한편 음식 사진을 멋지게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접시 위에 놓여있는 채소의 끝부분이 시계방향으로 12시에서 오른쪽으로 3도가량 틀어지게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대목도 눈여겨보면 좋을 것이다. 음식을 그릇에 어떻게 담아내는지도 맛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셋째, ‘음식을 조절하고 싶은 사람’이다. 만약 당신이 체중 조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저자의 연구 결과 중에서 기억할 만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음식을 빨간 그릇에 담도록 한다. 그릇의 빨간색이 회피 본능을 자극하여 음식에 손이 덜 가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큰 그릇은 피하라고 하는데 큰 그릇은 그 안에 담긴 음식의 양을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게 하여 결과적으로 먹는 양을 늘린다고 한다. 그리고 식사 중에는 유튜브나 TV를 멀리해야 한다. 영상에 집중하는 동안 음식을 먹게 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15% 더 먹게 된다고 한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먹으라는 권고도 귀담아 들을만하다. 혼자 밥을 먹게 되면 나쁜 식습관을 갖게 되기 쉽고,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결과적으로 체중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일련의 연구들에 따르면 가족과 정기적으로 식사를 같이하는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비만에 걸릴 위험이 12%나 낮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확률은 25% 높아진다고 한다.

지금까지 『왜 맛있을까』를 읽고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나는 『왜 맛있을까』처럼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을 다룬 책을 좋아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에 모르던 지식을 하나씩 주워 담는 소소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는 경우는 따로 있다. 단발적인 재미를 넘어서 조금 더 묵직한 메시지를 발견할 때가 그렇다. 그런 경험이야말로 독서만이 줄 수 있는 진정한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가스트로피직스를 연구하는 이유가 “다양한 방법들을 함께 사용하여 더 맛있는 식사를 위한 확실한 비율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말속에 진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나의 언어로 다시 바꾸어 말하면 이렇다. “우리가 지금 선택한 방법이 가장 최선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모든 일은 항상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만의 해석이다.

“왜 맛있을까”의 2개의 댓글

  1. 멋집니다
    그냥 맛있어서 맛있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만남의 어울림을 생각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 참 좋은글 입니다.
    하지만 저번에 진화론에대한 글을 보고 아쉬웠습니다.
    연구를 많이 하시니 창조론을 깊이 연구하시길 바랍니다.
    창조론을 잘못 인식해서 차후에 후회 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연구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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