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보다 중요하다. 모든 위대한 지식의 출발점에 좋은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이라는 것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모아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이 없는 지식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에서는 그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질문이 쉽지 않다는 것 보다 질문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모두들 알겠지만, 수능 공부라는 것 이건 완전히 암기의 종합선물세트이다. 천상병의 시 ‘귀천’에 담긴 의미를 ‘죽음과 삶에 대한 관조’로 달달 외워야 하는 게 말이 되는가. 하나의 시에서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믿는 그 대담함이 놀랍다. 내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되는 이 시를 읽고 실제로 떠올린 것은 ‘성적표를 받았을 때의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고 아는 것과 다른 것을 답으로 내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나는 솔직히 수능 공부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질 죽은 지식을 외우느라 나의 다시 없는 젊은 날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대학교는 가야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다니까 ‘조금만 참자’라는 생각으로 수능 공부를 했다. 물론 그때도 대학 안 가고도 멋지게 사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했다면 그렇게 열심히 암기를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때는 세상에 훨씬 넓고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세상에 암기식 교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라고 하는 프랑스의 대입 시험이 있다. 우리나라의 수능 시험에 해당하지만 그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면 아주 다르다.
바칼로레아는 1808년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되어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시험이다. 우리나라의 수능이 상대평가인 것과는 달리 절대평가이다. 이 시험에서 50% 이상의 점수를 얻는 모든 이들에게 프랑스의 국공립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 시험의 핵심은 철학 논술 시험인데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출제된다. 우리나라의 수능 또는 논술 시험이 정해진 답을 기대하는 것과 다르게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답을 더 높게 평가한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 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말해 주는가?
정의를 위해 폭력은 정당화 되는가?
매해마다 바칼로레아 문제가 출제되고 나면 프랑스에서는 곧 전국적인 화제로 떠오른다. 프랑스 사람들은 바칼로레아 문제에 대한 자기 나름의 답을 내고 의견을 나눈다.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서로 활발하게 토론을 벌인다. 신문에 기고하기도 하고 뉴스에 나와서 인터뷰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후 우리나라의 대입 시험을 바라보니 그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대입 문제를 풀기 위해서 대학 입학과 관련 없는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함께 토론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사실 기출 문제집만 보면 알 수 있는 해답에 대해 격론을 벌일 이유도 없겠지만 말이다. 바칼로레아가 특별한 이유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입 시험이 특별하지 않은 이유는 생각하지 않아도 외우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 중심의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는 곳이 프랑스 말고도 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영국의 대표적인 대학교인 옥스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와 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이다. 『옥스브리지 생각의 힘 원제 : Do You Still Think You’re Clever? | 존 판던 지음 | 유영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015년 10월 05일 출간』에서는 두 명문 대학교에서 독특한 면접 질문을 소개한다. 원제가 ‘아직도 스스로 영리하다고 생각하나?’인 이유는 이 책의 전작 원제가 ‘스스로 영리하다고 생각하나? Do You Think You’re Clever‘이기 때문인데 그 자체가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실제 시험 문제였다. 저자는 이 질문들이 어떻게 우리를 생각으로 유도하는지 알아본다.
『옥스브리지 생각의 힘』에서 소개하는 두 대학의 실제 면접들은 흥미로운 질문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같이 생각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옥스퍼드의 지리학 시험에서는 ‘공정무역 바나나가 정말 공정한지’를 묻고, 케임브리지의 공학 시험에서는 ‘컴퓨터를 얼마나 더 작게 만들 수 있는지’를 묻는다. 단순 지식을 묻는 질문이라면 공정무역이 무엇인지, 최신 컴퓨터가 얼마나 작은지 묻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옥스퍼드의 불어불문학, 철학 시험으로 출제된 것은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은 항상 옳은가’이다. 아마 우리나라 대입 시험이라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해당하는 것’을 묻는 질문이 출제되지 않았을까.
저자는 다양한 질문들을 소개하면서 저자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저자의 답은 참고자료일 뿐 정답은 아니다. 핵심은 답이 아닌 좋은 질문이다. 오늘 글에서 책에 나온 질문을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관계상 어렵기도 하거니와 내가 저자만큼 잘 정리하기도 어려우므로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을 권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옥스브리지 생각의 힘』을 통해서 좋은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훌륭한 교육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느낀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왜 그런 것일까. 우리나라의 교수들이 질문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질문하는 방법을 모르게 되었을까. 아마도 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교수라는 자리에 오기까지 가장 큰 원동력이 암기식 공부이다 보니 교수들 본인도 질문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교수들은 쉽게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때로는 고통스러운 법이다. 그리고 진실은 외부에서 더 잘 보이는 법이다.
교수 본인들이 질문에 익숙치 않다보니 수업에서는 책의 내용을 읽어주는 역할 밖에 못한다. 명색이 교수라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무안함을 느낀다. 무안함을 해소하고자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조차 좋은 질문을 할 줄 모르는데 학생들이라고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강의실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책을 쓰는 것 보다는 편하게 외국의 유명한 서적을 번역해서 자신의 이름을 싣는다. 획기적인 생각으로 논문을 쓰려는 생각보다는 외국의 논문을 짜집기 한다. 대학교에서 자리를 지키는데 필요한 논문수를 채우면 더 이상 논문을 쓸 동기가 사라진다.
왜 우리나라 대학교에서 유독 논문의 표절과 짜집기가 횡행하는지 궁금한가. 논문을 왜 써야하는지 제대로 모르니까 그런 것이다. 논문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일부 교수들은 논문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면 다르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궁금증 해소가 아니라 자리 지키기 같은 용도로 논문을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표절과 짜집기도 논문을 만들어내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실 그런 교수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획일화된 교육이 불러온 폐해이다. 교수들도 어떻게 보면 그 피해자다. 답만을 외우고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밴 결과이다. 그것을 최고로 잘한 사람들이 대학교의 교수가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성의 중심이 되어야 할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질문을 할 줄 모르게 된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왜’가 없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나는 ‘왜’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살펴본 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수들은 ‘왜’ 해야하는지 보다 그 방법인 ‘어떻게’와 결과물인 ‘무엇’에만 관심이 있다. ‘무엇’은 논문과 자리 보전, ‘어떻게’는 표절과 짜집기 그리고 대학원생 쥐어짜기 등이다.
저자가 『옥스브리지 생각의 힘』 마지막 장에서 소개한 질문은 ‘우리의 눈이 두 개인 이유’이다. 이를 책의 마지막에 놓은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눈이 두 개인 이유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두 개의 눈은 입체적 시각을 가능하게 하여 인류가 생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데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다양한 시각’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중심 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대학교에서부터 다양한 시각을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내리길 기대한다. 그래서 기존 지식과 다른 시각을 갖는 교수들과 연구자들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기존 지식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되면 그 순간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은 새로운 지식을 싹틔운다. 불편함을 참지 못해서 그리고 질문을 증명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글을 쓰게 되면 그게 바로 논문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시각’이라는 주제는 역사 교과서 때문에 혼란스러운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의미를 가지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지식이 그렇듯 역사에도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정한 단일한 종류로 획일화하려는 작금의 시도들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특정 정치적 견해에 의한 생각이 아니다. 지금 교과서 획일화를 반대하는 이들이 어느 날 획일화 찬성으로 돌아선다면 나는 그들을 반대할 것이다. 획일화하려는 그 정치적 이유나 배경조차도 궁금하지 않다. 나는 단지 곧 아빠가 될 사람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할 학교가 한 가지 시선만을 강요하는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보다 중요하다. 모든 위대한 지식의 출발점에 좋은 질문이 있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교육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아이들에 대한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후배님^^저를 혹시 알지도 모르겠지만~~좋은 글 공감있게 잘읽었습니다^^
독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 교육 현실도 공감합니다. 이혜정 교수 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이 책도 같이 권하고 싶습니다. 서울대 우등생이 공부와 성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이런 현상이 학생과 교수 평가 제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과 더불어 같이 읽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