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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폭스에 관한 오해와 진실

엠폭스는 1958년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된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1970년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발병이 보고되었습니다. 이후 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다가, 2022년 5월부터 유럽, 미국, 캐나다 등에서 엠폭스 환자가 나타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1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2022년 6월 22일 해외 유입에 의한 첫 확진 사례가 보고되었고, 올해 2023년 4월 7일에 6번째 확진 사례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여행력이 없는 지역사회 감염이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2023년 4월을 기점으로 엠폭스 확진자 수가 확연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코로나 이후 또 다른 감염병 위기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방역 당국의 깊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2

그런데 세간에 알려진 엠폭스에 관한 많은 이야기 가운데는 잘못 알려진 것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그런 오해가 과도한 불안감을 유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엠폭스에 대한 잘못된 대처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엠폭스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소문들을 살펴보고 바로잡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원숭이두창? 엠폭스?

먼저 용어 정리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엠폭스에 대해 자주 헷갈리는 것이 바로 그 명칭이 아닐까 싶은데요. 예전에는 원숭이두창이라고 하다가 언젠가부터 엠폭스라는 명칭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라는 말도 여전히 쓰입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요. 앞서 언급했듯이 원래 엠폭스의 원인 병원체인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1958년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수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며, 사람에게도 전파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에 의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질병의 명칭도 자연스레 원숭이두창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하지만, 원숭이두창이라는 이름이 원숭이를 비하하고 특정 인종이나 문화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 WHO는 2022년 11월 28일부터 MPOX를 새로운 영어 질병 동의어로 채택하였고, 우리나라도 2022년 12월 14일에 한글 질병명을 ‘엠폭스’로 변경하였습니다. (다만 바이러스의 한글 이름은 여전히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이며, 추후 절차에 따라 변경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현재는 질병명 ‘엠폭스’와 병원체명 ‘원숭이두창 바이러스’가 혼재되어 쓰이고 있습니다.)3

엠폭스는 성병이다?

엠폭스를 성병, 즉 성 매개 감염병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최근 감염된 사례 중에서 성 접촉 후에 성기 주변의 병변을 통해 확인된 것들이 알려지며 그런 인식이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 WHO 자료에 따르면 감염 경로가 확인된 18,000여 건 중 82.1%가 성관계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4

그런데 엠폭스의 주된 전파 경로는 사람 간의 직접적 접촉으로, 성 접촉은 엠폭스가 전파되는 여러 방식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직접 접촉보다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체액이나 비말, 콧물 등으로도 전파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감염병 전문가들은 엠폭스를 성 매개 감염병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습니다.

엠폭스는 남성 동성애자들에게만 퍼진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자료에 따르면 엠폭스 환자들 가운데 성적 지향성이 확인된 3만여 명 중 84.1%가 남성 동성애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5 또 다른 연구에서는 2022년 6월까지의 아프리카 이외 지역의 엠폭스 확진자 99%가 남성이며 이들 중 98%는 동성애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6

이렇게만 보면 남성 동성애자들과 엠폭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특정 성별이나 성적 지향성이 엠폭스의 전파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특정 성별과 성적 지향성에 대한 낙인찍기는 편견과 혐오로 이어져서 결과적으로 숨은 감염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 동성애자가 아닌 이들은 스스로 엠폭스에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감염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엠폭스는 수영장이나 목욕탕에서도 전염될 수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엠폭스가 수영장이나 목욕탕에서 전파될 가능성은 무척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밀접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엠폭스의 특성상 수영장이나 목욕탕의 물에 의한 전파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다만 엠폭스 감염자가 사용했던 수건이나 침구류를 반복적으로 공유한다면 전염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물론 그조차도 직접적인 접촉에 비해 가능성이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위생 수칙을 준수하는 수영장이나 목욕탕이라면 엠폭스가 전파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엠폭스는 치명적이다?

엠폭스의 증상은 발열, 두통, 근육통, 피로감, 림프절 종창, 발진 등이 있습니다. 발진은 몸통에서 시작하여 얼굴, 팔, 다리로 퍼집니다. 발진은 수포로 변하고, 수포가 터지면 딱지가 생깁니다.

다행히 대부분 2~4주 안에 자연적으로 회복되고, 치명률도 0.13%로 아주 낮습니다. 다만, 어린이, 임산부,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중증으로 진행될 수 있어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엠폭스는 백신이 없다?

엠폭스가 아주 치명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백신이 있다면 더욱 안심이 되겠지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엠폭스에 대한 뉴스가 나오지만 백신 접종에 대한 소식은 찾아볼 수 없는데요. 그래서 많은 분이 엠폭스는 아직 백신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엠폭스 백신은 이미 개발되었는데요. 3세대 두창(천연두) 백신이 미국과 유럽에 이어 국내에도 도입되어 필수 의료진 등을 대상으로 접종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이러한 백신의 접종 대상자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의료진이나 실험실 요원 등으로 한정되며, 현재 일반인들에 대한 접종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예방접종의 수급 능력, 비용, 접종에 따르는 위험과 실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정해진 것입니다.

엠폭스는 치료할 수 없다?

대부분의 엠폭스 환자는 대증적인 치료만으로도 회복되지만,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치료제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 엠폭스를 위한 치료제가 이미 개발되어 있는데요.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테코비리마트라는 항바이러스제로, 우리나라에도 이미 도입되어 있습니다.

엠폭스, 충분히 통제가 가능합니다.

코로나를 넘어서 이제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가나 싶더니, 엠폭스라는 또 다른 불청객이 우리의 마음을 심란하게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엠폭스는 우리 사회가 공포에 휩싸일 정도로 무서운 질병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고, 백신과 치료제도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엠폭스 예방을 위해서 기본을 지키는 것입니다. 손을 자주 씻고, 가급적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는 입과 코를 가리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과 밀접한 접촉을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엠폭스, 우리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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