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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렇지…’

지난 9일에 일어난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건의 범인은 소송에 패소한 뒤 상대편 변호사를 해칠 목적으로 범행을 일으켰다고 한다. 전형적인 분노 범죄다.

분노 범죄가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발적인 감정으로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사건이 잊힐 만하면 다시 일어난다.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서 분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도 드물지 않다.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는 분노 범죄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먼저, 왜 우리가 분노를 느끼는지 살펴보자. 그 상황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상대방이 부당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분노한다’라는 점은 같다. 남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해를 끼쳤고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이와 관련하여,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대학원 졸업 논문 심사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간 기울여온 노력의 성패가 이번 발표로 판가름 날 참이었다. 나는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준비를 하고 늦게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결국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일어나고 말았다. 다급해진 나는 세수만 하고 전날 입었던 옷을 대충 걸친 뒤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발표 자료를 넘겨보며 빠뜨린 건 없는지 계속 살펴봤다.

어느새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읽고 있던 발표 자료를 옆구리에 끼우고 버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뛰어내린 후,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다. 잠시 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고, 나도 사람들에 섞여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때 왼쪽에서 흰색 택배차 한 대가 달려오다가 정지선을 넘으면서 급정거했다. 신호를 잠깐 못 보고 그랬나 보다 싶었다. 멈칫했던 나는 다시 횡단보도 맞은편을 향해 갈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갑자기 택배차 기사가 나를 향해 상향등을 번쩍이면서 빵빵 경적을 울렸다. 그뿐만 아니라 뭔지 모를 말을 하면서 나를 향해 손가락질해댔다. 아직 횡단보도 신호등은 파란불이었고 심지어 깜빡이지도 않았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논문 심사 발표로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처음 보는 기사의 시비조 행동에 갑자기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춘 뒤 두 눈에 힘을 주고 운전석 쪽을 노려봤다.

그러자 택배차 기사는 오히려 나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뭔가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가만 보니 그가 가리키는 방향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방금 지나온 횡단보도 뒤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조금 전까지 읽다가 옆구리에 끼워둔 논문 뭉치가 길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 기사는 내가 중요한 문서를 떨어뜨리고 갔을까 봐 걱정해서 알려준 것이었다. 운전석에서 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상향등과 경적이었다. 택배차 기사를 겨누었던 날카로운 감정은 일순간에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그날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택배차 기사를 향한 감정이 분노 직전에서 고마움으로 180도 바뀌는 동안, 정작 분노 유발자가 될 뻔했던 그의 행동은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바뀐 것은 상황에 대한 나의 해석, 그리고 그 해석에 따른 나의 반응뿐이었다.

이처럼 분노란 남의 언행에 대해 우리 각자가 선택한 반응일 뿐이다. 똑같은 것을 보고 분노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단초로 삼을 수도 있다. 분노의 감정으로 서둘러 직행할지 아니면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상황 정리를 할지는 오로지 우리 자신의 의지와 결심에 달렸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생겨난 분노를 억지로 참는 건 아무래도 힘든 일이니 말이다. 그보다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살펴보는 편이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애초에 분노를 참고 말고 할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나저나 요즘 장바구니 물가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올해 역대급 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바야흐로 ‘분노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해 노력해보자. 부디 우리 사회에서 순간의 우발적인 감정으로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더는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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