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0살짜리 여자아이가 TV에 나와서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인기 개그맨 둘이 사람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였는데, 아이는 요즘 여러 학원을 다니느라 힘들다며, 피아노학원부터 발명학원까지 손가락을 하나씩 구부려가며 다니고 있는 학원들을 죽 읊었다. 그러면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학원에 가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옆의 진행자들은 아이의 뾰로통한 표정을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지만,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고충이 커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종류의 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 스스로 원한 거라기보다는 부모들의 결정에 따른 것일 테다. 허나 아이들도 그 안에서 친구를 만들고 어울리다 보니, 나중에는 학원에 다니는 걸 더욱더 편하게 느낀다고 한다. 각자 나름의 사정은 있겠지만, 이제 겨우 등에 가방을 멜 수 있을 정도의 아이들이 학원 승합차에 실려서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치만은 않다.

부모는 아이에게 말한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이거 다 네 미래를 위한 거라고. 나중에 즐겁게 살고 싶다면, 지금 놀고 싶은 거 있어도 꾹 참고 성실히 학업에 매진하라고. 물론 다 좋은 말이고 대체로 옳은 말이다. 또한, 그 말에는 자기 자식을 향한 부모의 진심도 담겨있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아이는 부모의 말에 담긴 진심을 받아들일까. 기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이라고 해서 부모 말을 무조건 믿지는 않는다. 믿을 만하면 믿는다. 그렇다면, 부모의 말을 믿을 만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과거에 부모 자신이 보여준 모습, 그중에서도 특히 약속을 지킨 모습이다.

앞서 부모가 작은 약속이라도 칼같이 지켰다면, 아이는 부모의 말을 믿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자기가 한 약속을 대충 눈치 보고 은근슬쩍 어긴 적이 있다면, 아이는 그 모든 순간을 차곡차곡 기억 속에 담아둘 것이다.

그러니 주말에 동물원에 가자고 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 마트에서 장난감 사달라고 떼쓸 때 다음 생일에 사주겠다고 말했다면, 정말 그렇게 해야 한다. 조금 다른 예지만, 아이가 유튜브를 10분만 보기로 했다면 10분 후 아무리 격렬히 저항해도 유튜브를 꺼야 한다. 아이에게 내뱉은 말은 반드시 그대로 지켜야 한다.

혹시 약속을 못 지켜도 이 조그만 녀석이 뭘 알겠나 싶을지 모르겠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어른들이 지나가는 말로 한 약속일지라도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기다린다. 물론 가끔은 아이도 잊어버리는 약속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잊어버리지 않는 대부분의 약속을 생각한다면, 아이와 한 약속은 모조리 지키는 게 확률적으로 안전하다.

다시 공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부모가 약속을 지키는 데 소홀히 해놓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들 그 말에 믿음이 갈까. 이제껏 번복되어온 수많은 약속과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는 말로 여길 것이다. 반면에 부모가 사소한 약속도 철저하게 지켰다면, 아이는 ‘공부’와 ‘미래’를 연결 짓는 부모의 말을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신뢰가 훗날 아이의 참을성과 끈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학교 숙제를 하다가 놀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도, 할 일을 먼저 하고 놀아야 한다는 부모의 말을 신뢰한다면 아이 스스로 유혹을 다스릴 방법을 찾을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모가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작은 습관은 훗날 아이의 부모에 대한 신뢰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기서 더 나아가 아이 스스로 유혹을 다스리고 목표를 향해 정진할 수 있는 집념과 의지로 이어진다. 아이와의 약속 한 마디 한 마디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이다.

이 글은 월간에세이 2021년 9월호에 실린 기고글입니다. 필자에게 기고 의뢰를 원하시는 매체의 관계자는 여기에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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