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봄날의 따스한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어디나 처음에 발을 들이면 그렇듯이, 주변을 둘러싼 모두가 새로운 사람들이다. 한편으로 누군가 아는 척하고 다가오면 쉽게 지나치기 어렵기도 하다. 누가 나를 안다고 하는데, 내가 그를 모른다면 그것만한 실례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겪은 일이 그랬다.
대학교 본관 앞을 지나다가 10m쯤 앞에서 걸어오는 어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나를 보면서 표정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혹시 고등학교 동문인가 했다. 아니었다. ‘그럼 누구지?’ 하면서 신입생 환영회 기억까지 뒤적거리고 있는 동안 그 여자는 어느새 내 앞에 와있었다.
그 여자는 내게 다가와서 우선 손으로 내가 가던 길부터 막았다. 불길한 느낌은 불편한 현실이 되었다. 그 여자는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라며 말을 붙였다.
다행히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가 ‘도를 아십니까’의 새로운 버전이란 사실을. 그리고 둘 다 ‘지금부터 제가 당신 지갑을 좀 털어가겠습니다’라는 의욕 충만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단 사실을.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받아쳤다.
“네. 조금 전에 어떤 여자분도 그러더라고요.”
그 여자, 순간 허를 찔린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어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게 그대로 보였다. 아마 그들이 세뇌받은 시나리오에는 그런 상황이 없었나보다.
나는 얼어있는 그 여자에게 “그럼 저는 이만.”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동시에 내 앞을 막고 있던 그 여자의 손을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밀어냈다. 그리고 나는 가던 길을 갔다.
누구나 한두 번씩은 길거리에서 사이비 종교 포교원들을 마주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보며 왜 인생을 저런데 낭비하고 있는지 안타까워 한다. 포교하는 이들이나 포교에 넘어가는 이들 모두 사이비 종교의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이들이라고 여긴다.
동시에 당신은 걱정한다. 당신과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설령 당신 자신은 현명하게 그런 상황을 꿰뚫어보고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더라도, 당신의 부모가 그리고 당신의 자녀가 그들 중 하나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불안하다.
잊을 만하면 TV를 통해 나오는 사이비 종교 관련 뉴스들이 이런 불안을 강화한다. 사이비 종교 뿐만이 아니다. 자기가 추천해 준 종목에 투자하면 큰 이익을 볼 것 처럼 유혹했다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적금과 퇴직금을 날리게 한다든가, 국제적인 테러단체에서 순진한 젊은이들을 유혹해서 그들의 하나뿐인 목숨을 불사르게 한다든가. 여기에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망한 일들이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걸까. 이런 유혹을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로 ‘심리 조작’이라고 부른다. 『심리 조작의 비밀 원제 : マインド.コントロ-ル | 오카다 다카시 지음 | 황선종 옮김 | 어크로스 | 2016년 11월 03일 출간』의 저자 오카다 다카시岡田尊司는 ‘감각 차단’과 ‘정보 과부하’가 사람들을 심리 조작에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특징을 ‘터널’에 비유한다.

터널의 특징이 무엇인가. 일단 입구로 들어가면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있다. 그리고 주변은 벽부터 천장까지 단단한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저 멀리 출구로부터 보이는 희미한 빛, 그곳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다. 다른 대안은 없다.
혹시 당신의 삶은 그렇지 않은가. 당신의 삶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정해진 대로 달려간다. 입시에서 취직으로, 취직에서 승진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터널을 달린다. 저 멀리 빛이 들어오는 터널의 출구가 눈앞에 보일 때 쯤 당신은 퇴직한다.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다.
퇴직 후에도 당신은 먹고 살아야 한다. 갚아야 할 빚도 있다. 아마도 또 다른 일자리라는 족쇄가 당신이 차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당신은 자발적이고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족쇄를 찬다. 그렇게 계속 터널의 출구를 향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달린다. 뒤돌아 볼 기회조차 없이 흘러가는 삶은 당신의 숨이 끊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끝이 난다.
남이 세워놓은 기준에 맞춰 일생 동안 숨을 헐떡이며 따라가는 동안(정보 과부하), 우리는 정해진 길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감각 차단). 새로운 생각을 해볼 여유? 그런 건 허락되지 않는다. 그나마 티끌만큼 있는 여유 시간조차 극히 제한된 경험으로만 채워진다.
이런 제한된 경험은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더욱 심해졌다.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서 더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지 않았느냐고? 스마트폰 덕분에 더 넓은 시야를 얻게 되지 않았느냐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에 바로 옆의 사람과 직접 이야기할 기회가 사라졌다. 식당에 둘러앉아서 서로의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스마트폰에 담긴 지도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지도, 처음 보는 식당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밤바다에서 불을 켜고 각자의 길을 가는 어선들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 무심하게 스쳐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학부모들은 그들 자녀의 모습을 직접 보지 않는다. 마치 망원경을 통해 먼 우주의 별을 관찰하듯, 각자의 눈 앞에 스마트폰을 들어올리고 촬영중인 화면을 통해서 아이들을 지켜본다. 그 아이들이 바로 우리들 앞에 있는데도.
그런가 하면,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SNS의 실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SNS를 통해서 마음에 드는 내용은 ‘좋아요Like’하거나 ‘팔로우Follow‘하는 반면,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것은 가차없이 끊어버린다. 생각이 비슷한 친구와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근황을 전하고 담소도 나누지만, 생각이 다른 동료하고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도 그럴 기회 자체를 갖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당신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은 결국 복제품처럼 똑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들 뿐이다.
평소에 조금 지저분한 환경에도 노출되는 것은 면역력을 키우는 것에 도움이 된다. 그러지 않으면, 건조한 겨울철에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에 걸리기 쉽다. 마찬가지로, 익숙하고 입맛에 맞는 정보 외에는 모두 차단해버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생각없이 바쁘게 일하는 일상은 심리 조작에 대한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당신은 지금 심리 조작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지기 매우 쉬운 세상을 살고 있다. ‘정보 과부하’와 ‘감각 차단’이라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감각 차단’과 ‘정보 과부하’로 심리 조작에 취약해진 현대 사회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유대감’과 ‘자아의식’의 회복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심리 조작은 결국 자립과 의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심리 조작이 먹잇감으로 삼는 이들은 ‘누군가 자기를 이끌어주고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길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즉 자기 스스로 주관적 판단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그렇다고 주변에서 올바른 길을 인도해 줄 수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심리 조작에 취약하다.
‘유대감의 회복’을 위해서는, 건전한 가족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에 따르면 가족의 적극적인 지원 여부가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를 구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한편, ‘자아의식의 회복’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사회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사이비 종교나 반사회적 집단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은 외부 세계에서는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면 유대감과 자아의식의 회복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구원 수가 한 명인 소위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수의 27.2%를 차지하는 520만 3천 가구로 이미 가장 흔한 형태의 가구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뉴스에 따르면 바깥 세상과 연결을 끊고 살아가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가 최소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이 살아가는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 심리 조작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로 당신의 이웃, 당신의 가족, 그리고 바로 당신의 이야기다. 지금 주변에 소외되고 있는 이들을 외면한다면, 그 댓가는 당신 자신이 치르게 될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당신이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으며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할 일이 점차 많아질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아는 누군가가 길에서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라고 말하며 다니게 될지도.
요컨대, 우리 사회가 사이비 종교나 테러리스트, 또는 사기꾼들의 심리 조작에 병들지 않게 하려면, 유대감과 자아의식의 회복을 이루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더 늦기 전에 이 순간 어디에선가 남 몰래 눈물 흘리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깨워야 한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심리 조작으로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넘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유대감과 자아의식의 회복으로 심리조작적 삶과 고정관념으로 고착화 된사회에서 여유로운 삶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여행을 가도 사진기 없이 가는 사람들을 이젠 찾아보기가 더 힘들죠
전 어느 순간부터 사진을 찍지 않게 되더라구요
사진밖에 남는게 없다고는 하지만
그냥 잊혀지면 잊혀지는데로 나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거 같아요
어차피 모든걸 다 기억하면 살 순 없으니까요
정말 좋았던 기억들은 살면서 문득 떠오를때도 있으니까요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에 바로 옆의 사람과 직접 이야기할 기회가 사라졌다. 식당에 둘러앉아서 서로의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스마트폰에 담긴 지도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지도, 처음 보는 식당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밤바다에서 불을 켜고 각자의 길을 가는 어선들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 무심하게 스쳐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이 문구를 보면서 정신과의사 올리버색스가 생각났어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정말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제가 이제까지 살면서 만나왔던 의사들의 모습과도 다른..
환자를 인간으로 바라보고 기록한 그의 책을 보면서
이런 의사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란 생각을 했었는데
신승건 님도 그런 의사 분인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로 남기는 힘, 이거은 19세기의 위대한 신경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의 보편적인 자질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이 힘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루리야
“터널시야”를 갖게 되면 상당히 고립된 사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합니다.
항상 귀한 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경험이 녹아있는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유대감과 자아의식이 중요하겠네요.
다음에도 좋은 글 써주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