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아마도 지금 몸담고 있는 영역에서 당신은 최고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낙담하지는 말자. 최고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실은 당신이 정신을 번쩍 뜨게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극소수가 우리 사회 부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처럼 극소수가 그 사회의 부를 독점하는 현상은 매우 흔한 일로, 오늘날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유명 연예인들이 우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수입을 올린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가장 몸값이 높은 연예인으로 꼽히는 유재석의 경우 TV 프로그램 회당 출연료가 1000만원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올해 여름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 식물인간 역할을 맡아서 거의 누워있는 연기를 했던 배우 김태희는 회당 약 40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 편에서는 유명해지지 못한 대다수의 연예인들의 궁핍한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연예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도 우리나라 상위 10% 가구의 평균소득은 하위 10% 가구의 평균소득의 26.8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 기준을 1%로 좁히면 그 차이는 더 심해지는데, 상위 1% 가구의 평균소득이 하위 1% 가구의 평균소득의 229배에 이른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하위 1%의 사람들이 30년씩 돈을 벌면서 8번의 삶을 반복해야만 상위 1%의 1년 치 소득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다.
소득뿐만 아니라 각자가 지니고 있는 부의 수준도 그 격차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국세청의 상속세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6%,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반해 하위 50%는 사회 전체 자산의 2%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 우유 1L를 잘사는 사람 1명이 마시는 동안 우유 반 컵을 못사는 사람 50명이 나눠 마시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당신은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나는 저기에서 어디쯤 위치할 것인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 아니겠는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도록 훈련 받다가 결국은 그것이 몸에 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러한 부의 편중 문제는 곧 ‘나는 어떠한가’라는 자신의 문제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달리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사회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갖지 못한 이들은 가진 이들을 증오하고, 가진 이들은 갖지 못한 이들을 경계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책 『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 , 필립 쿡 지음 | 권영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03월 03일 출간 | 원제 : The winner-take-all society』에서 저자들은 이처럼 쉽게 넘길 수 만은 없는 부의 편중 현상에 대해서 살펴본다. 특히 극소수에 집중적으로 쏠려있는 부의 편중 현상의 원리를 파헤친다. 어떠한 이유로 일부의 유명인들이 보통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고소득을 올리는지, 그리고 조금 더 보편적인 시각에서 사회의 최상층이 어떻게 거의 모든 부를 독차지하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결과들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저자들은 오늘날 부의 편중 현상을 초래한 원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정보혁명에 따른 뛰어난 소수의 영향력 확대를 들고 있다. 과거에는 누구에게나 시간적 공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군가 특출난 아이디어나 상품성 있는 무언가를 갖출 수만 있다면 순식간에 전세계를 석권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그 결과 특별한 소수에 더 많은 부가 편중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러한 경쟁의 격화와 부의 편중이 결코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생각은 경쟁이 사회 전체의 부를 증가시켜주고 공공의 이익의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견해에 반하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들은 과도한 경쟁이 비효율을 초래하고 부의 편중은 경제 성장을 자극하기 보다는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이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들의 해결책이란 것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경쟁의 완화’이다. 최상위층이 거두는 경제적 보상의 크기를 제한함으로써 경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이다. 쉽게 말하면 ‘제일 돈을 잘 버는 사람도 너무 많이 벌지는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부의 편중을 억제할 때 사회가 함께 번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 저자들만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부의 편중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꾸준히 제기되어온 것이다. 최근에는 책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지음 | 장경덕 외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03월 | 원제 : Capital in the tweenty first century』으로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대한 논의의 불씨를 지핀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도 같은 주장을 설파한 바 있다. 토마 피케티는 자신의 저서에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국가정책의 개입으로 완화시켜 보자고 주장하고 있다. 경쟁을 완화시켜 부의 편중을 막고 사회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점에서 『승자독식사회』가 말하는 것과 큰 틀에서 같다.
이처럼 부의 편중을 막기 위해 경쟁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 논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서 승자와 패자의 격차가 심화되고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되고 있으므로, 그 경쟁 자체를 줄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야기는 나름 타당한 것 같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그 주장들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생각에 이 책이 말하는 경쟁의 완화는 부의 편중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자유경쟁을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사회라는 사실을 간과한 생각이다. 생각해보자. 국가와 같은 외부의 힘이 개입하여 경쟁을 완화시키고자 할 때 그것으로 상황이 종결될까. 그렇지 않다. 곧바로 누군가는 그런 개입을 자신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회로 삼을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동네에서 아주 잘나가고 있는 A 병원이 있다고 해보자. 주변에 같은 진료를 하는 다른 병원들이 수두룩 하지만 A 병원은 의료진들이 실력도 뛰어나고 친절하기까지 하다고 입소문이 나서 다른 병원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은 환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다른 병원들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들여서 광고도 하고 진료 시간도 늘이고 하지만 환자들의 발길을 돌리기가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관계 기관에서 ‘A 병원 때문에 다른 병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하며 진료를 못하게 한다고 해보자. 물론 현실에서는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아마도 또 다른 B 병원이 등장하여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경쟁의 완화 시도는 순위의 재배열을 일으킬 뿐이지 경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누군가의 경쟁 완화 시도를 다른 누군가는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회로 활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회적인 합의를 이룰 수 없는 시도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들이 제시하는 경쟁의 완화는 부의 편중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승자독식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는 더 나은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경쟁의 완화가 아닌 경쟁의 제거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필요한 상황 자체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경쟁이 가져오는 폐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물론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경쟁을 완화시키는 것도 어렵다면서 어떻게 경쟁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는지 말이다.
핵심은 각자가 다른 영역을 개척한다는 것이다. 서로 간의 경쟁이 아닌 각자의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영역 안에서 홀로 승자가 되어 또 다른 의미의 승자독식을 하면 된다. 달리 말하면 이미 남이 들어가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영역에 뒤늦게 들어갈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영역을 개척하면 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의사 사회에 비추어 이야기 해보자. 오늘날 대부분의 젊은 의사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영역은 피부 관리 및 미용 수술이다. 고소득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전공의 지원시에는 가장 우수한 지원자들이 피부과와 성형외과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뿐만 아니라, 피부과와 성형외과 수련을 받지 않은 의사들도 개원가에 나오면 먼저 자리잡은 의사를 찾아가서 피부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기웃거린다. 때로는 그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훨씬 낮은 급여를 감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90년 대 초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지금과 같은 피부 미용의 개념은 전무했다. 그러다보니 90년 대 초의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의사들에게 지금만큼 인기있는 전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피부과와 성형외과 의사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가치인 외모의 개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피부 미용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된 것이다.
한편,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경쟁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을 기회의 불균형 대 능력의 불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후보들이 많은 상황에서 인지도와 같이 그것이 곧 능력이 아닌 요인으로 경쟁의 우위에 서는 상황을 기회의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연기를 비슷하게 잘하는 배우 여러 명 가운데 운 좋은 한 명이 유명해져서 나머지 배우들의 소득을 다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 능력의 불균형은 능력의 격차에 의해서 생기는 경쟁력의 차이이다. 똑같이 배우의 예를 들자면 월등하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 A에게 나머지 배우 B, C, D 보다 훨씬 많은 작품이 의뢰되고 소득도 더 많은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액션 영화에서 배우 A가 능력의 불균형의 우위에 설 때, 코메디 영화에서는 배우 B, 멜로 영화에서는 배우 C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각자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능력의 불균형은 정해진다.
그렇다면 승자독식을 일으키는 원인은 기회의 불균형일까 능력의 불균형일까. 극단적인 승자독식을 일으키는 원동력은 능력의 불균형 보다는 기회의 불균형이다. 한 사람에게 극단적으로 많은 노출을 가능케하는 정보혁명이 기회의 불균형을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에게만 극단적으로 많은 노출을 가능케 하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한정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한정된 기회를 얻고자 경쟁을 하면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로 나뉘게 된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승자 외에는 별 볼 일 없게 된다. 즉 기회의 불균형은 모든 이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겨주지 않으며 극소수의 승자에게 대부분의 보상이 돌아가게 한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패자가 될 수 밖에 없을지라도, 다른 곳에서 발휘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보았을 때 새로운 영역에서는 개척자가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훌륭한 능력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기회의 불균형과 능력의 불균형을 구분하는 것은 승자독식사회의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회의 불균형에 맞서서 고전하는 것 보다 적절한 능력의 불균형을 스스로에게 이롭게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며 했던 말로 돌아가보자.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 몸담고 있는 영역’에서 최고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그 이유로 최고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제 여기서 전제를 바꾸어보자. ‘지금 몸담고 있는 영역’ 즉 최고가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곳이 아니라, ‘당신이 아주 관심이 깊고 잘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말이다. 만약 아직 없다면 새로 만들면 된다. 이 두 번째 영역에서 당신은 승자독식 게임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떠오를 수 있다. 요컨대 ‘지금 몸담고 있는 영역’에서는 기회의 불균형을 겪고 있을지 몰라도 ‘당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능력의 불균형을 활용할 수 있다.
세상에 평등하게 주어지는 기회란 없다. 비현실적인 평등한 기회에 대한 환상보다 현실적인 다양한 능력의 추구가 정직한 목표이다. 잠시 고개를 들어 당신이 서있는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자. 모든 사람들이 단 하나의 기회를 향해서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 가운데 당신도 끼어 있는 모습이 아닌가. 이제 닭장 같은 기회의 불균형의 싸움터를 벗어나서 당신만이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의 불균형을 찾아보자.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책 내용에 담기지 않은 인상적인 고찰 잘 읽었습니다. 특히 기회의 불균형과 능력의 불균형을 구분해야 한다는 인사이트가 좋았습니다. 구글+ 댓글로 알려주신 같은 저자의 ‘경쟁의 종말’도 추천 고맙습니다. 남들이 아직 눈을 두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찾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발달한 정보 기술과 전세계를 연결한 네트워크가 이 탐색의 가능성을 높여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