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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소유냐 존재냐

결혼 전 아내와 처음 만나던 시절, 직장 때문에 나는 서울에 아내는 부산에 살았다. 우리는 첫 만남부터 1년 넘게 장거리 연애를 했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KTX를 타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만났지만 주중에는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이 무척 컸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함께 머리를 짜내어 시작한 일이 있다. 서로 읽고 싶은 책을 고른 후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여 한 권은 자신이 갖고 같은 책 한 권을 상대방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다음 같은 시간 같은 책을 함께 읽어나갔다. 책 선정은 서로 번갈아가며 하기로 했다.

우리는 자신이 책을 선정할 차례가 되었을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중했다. 한편, 상대방이 책을 선정할 차례가 되었을 때는 그 책이 도착하기 전까지 기대감을 갖고 기다렸다. 책을 읽으며 함께 인상 깊은 구절을 적어서 그 소감과 배움을 나누었다.

이런 아이디어로 우리는 서로가 몸은 서울과 부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로 ‘경청傾聽’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 ‘경청’ 세 번째 책으로 내가 고른 책이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소유냐 존재냐 원제 : Haben Oder Sein | 에리히 프롬 지음 | 차경아 옮김 | 까치 | 2007년 04월 20일 출간』이다. 당시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의 관계가 서로를 소유의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발전하기를 바랬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부부가 되었고 얼마 전 부모도 되었다. 우리가 만남을 시작하던 때 가졌던 초심을 떠올리며 나는 책장에 꼽힌 『소유냐 존재냐』를 다시 집어들었다.

소유냐_존재냐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읽은 독자도 많겠지만, 책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자.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사람의 삶의 방식의 기준을 ‘소유’에 둘 것인가 ‘존재’에 둘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의 첫째 장에서 저자는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의 차이에 대해서 살펴본다. 둘째 장에서는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의 실제 사례들을 통해서 소유적 방식과 존재적 방식에 의한 삶의 차이를 알아본다. 이어지는 셋째 장에서는 성서 등의 역사상 문헌에서 나타나는 소유와 존재에 대한 각종 견해들을 해석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나머지 장에서는 소유와 존재에 대한 차이를 분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저자는 경험적인 사실들을 통해서 이론적인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독자들에게 소유적 삶의 방식을 버리고 존재적 삶을 추구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소비 지향적 삶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이 책에서 깨달음을 얻었기에 이를 나누고 싶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이루어가고 싶은 가족의 모습을 생각한다. 특히 가족의 세가지 측면에서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이다. 특히 부모와 자식은 서로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여기기 쉽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이 낳았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편, 자식은 부모가 자신을 낳았다는 그 이유로 언제까지나 자신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무엇이든지 내놓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자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부모들이 그렇다. 심지어 자기 아이가 바깥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칠 때도 그 일로 자기 아이가 마음을 다치지 않을까 먼저 걱정한다. 그런가 하면, 자기 자식이 남들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야지 마음이 편하다. 그 관리자인 자신의 능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마음이 원인이다.

한편, 자식들은 나이가 들어도 부모들에게 의존하며 독립은 점차 늦어진다. 스스로 땀 흘려 일해서 돈을 벌기보다는 부모가 물려줄 재산만 바라보기도 한다. 자식도 마찬가지로 부모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자식이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식으로서도 올바른 마음 가짐이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권리 행사나 의존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유적 사고방식이다. 그보다는 서로가 자기 나름의 인생이 있는 인생의 선후배로 보는 것이 적절하며 이는 곧 존재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형제 자매 사이의 관계이다. 이 경우에 소유적 사고방식을 따르면 서로를 경쟁자로 여길 수 있다. 아마도 한 부모 아래서 자라면서 한정된 관심과 자원을 사이에 두고 숱하게 경쟁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장한 후에는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는지에 따라서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도 서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쉽게 말해 성공한 형제 자매는 자랑스럽고 그렇지 못하면 창피하다는 식이다. 그러다가 부모 집에서 서로 모이면 각자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 상태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그정도는 아니지만,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나도 창피한 경험이 있다. 나에겐 동생이 있는데 나보다 먼저 장가를 갔다는 이유로 한 동안 동생에게 시기심을 가졌던 과거가 있다. 물론 지금은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 동생이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을 넓게 가져준 덕분이다. 한편, 나도 기존의 형과 동생이란 상하개념을 버리고 마음을 바꾸었다.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하며 동생과 나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내가 너보다 몇 년 더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형으로 대접 받으면서 많은 혜택을 누렸구나. 그런데 너가 열심히 살아서 장가도 먼저 가는데 내가 한동안 섭섭하게 생각해서 미안하다. 너 또한 너 나름의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소중한 존재다. 내가 너보다 우월하거나 앞서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나는 형으로서만 너는 동생으로서만 살았다. 인생을 한 가지 역할로만 사는 것도 너무 단조로울 수 있으니, 이제 너가 결혼도 먼저 하기도 했고 형처럼 살아봐라.’

이런 생각을 동생에게 명시적으로 전달하지는 않았지만, 동생이 집안에서 형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나 나름대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랬더니 마음도 편해졌다. 형제 자매란 그 자체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의 의미는 사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의 경우에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였고, 이로 인해 한때 내가 자존심에 상처받았다고 착각했지만 생각을 바꾸니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

형제 자매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난 동등하게 소중한 존재들이다. 각자 독립된 존재로써 나름의 삶을 꾸려나가되,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만큼 남들보다 더 많이 돕고 관심을 쏟는다면 그것이 형제 자매 간의 올바른 관계가 아닐까 한다.

셋째로, 부부 사이의 관계이다. 해마다 상승하는 이혼율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부 사이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결혼 전에는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결혼 후에는 자신이 상대방에 대해서 배타적 독점권을 지닌 것으로 간주해서 함부로 여기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 가운데 소유의 저변에 깔린 의도가 바로 망각이라는 내용이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상대방을 소유한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더 이상 상대방에 대해서 신경 쓰는 부담을 덜고자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내 소유물이고 어디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음을 확인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최선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한다는 말이다.

돌이켜보건데, 나와 아내가 연애 시작부터 ‘경청’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눈 것은 서로에 대한 소유적 시각을 경계하고 존재적 시각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말이다. 달리 말하면 서로가 나름의 삶의 철학과 주관을 갖고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임을 끊임없이 떠올림으로써 상대가 가진 생각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가족을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려고 하는 시도는,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심각한 문제만 일으킨다. 지금 당신의 부모, 형제, 자매, 배우자를 머리 속에 떠올려 보자. 모두가 우리 곁에 있다는 그 이유 만으로 감사한 존재들 아닌가. 그들이 부자이건 아니건, 학벌이 좋건 아니건, 건강이 좋건 아니건, 그들이 소중한 가족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설 연휴이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번 설에는 ‘나의 부모, 형제, 자매, 배우자를 혹여나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그들이 당신 앞에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느껴보자.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당신과 가족이라는 관계로 얽힌 누군가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하나의 귀한 존재임을 기억하자.

“소유냐 존재냐”의 1개의 댓글

  1. 소유적 사고가 망각과 통제에서 기반되었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인구밀도 많아서 엄청시리 서로 비교하고 부대끼고 소유하려는 이땅에서..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어렵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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