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51분에 이른다. 한편, 같은 해 통계청이 조사한 하루 평균 간식, 식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56분이었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에는 밥보다도 인터넷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인터넷을 이처럼 생활 속에서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바일 인터넷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바일 인터넷은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 안에 들어옴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과 같이 모바일 인터넷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한 스마트폰의 대표격인 아이폰은 전세계적으로 2007년, 국내에서는 2009년 출시가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겨우 10년도 안되어 일어났다는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현재의 모바일 인터넷에 대한 우리의 종속은 참으로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른바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원하는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연결을 이어갈 수 있는 혜택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깊이 사고할 수 있는 능력, 중요한 지식과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둘 수 있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는 퇴행도 겪게 되었다.
가장 극명한 예가 전화번호 암기다. 우선 나부터도 더이상 다른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한다. 내가 외우는 전화번호는 아내, 부모님 그리고 내 것 이렇게 네 가지가 전부다. 그 외에는 아무리 가까운 친구의 전화번호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마트폰에는 인터넷에 연동된 주소록이 있는데 굳이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면 휴대폰 주소록에서 이름을 검색하면 되기 때문에 번호를 몰라도 불편함이 전혀 없다. 하지만 기억을 돌이켜보자. 90년대 후반 처음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을 때만 해도 왠만한 친구들의 휴대폰 번호는 모두 외웠었다. 나는 내 머리속에서 무엇인가 점차 퇴화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편, 나는 종종 스마트폰의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는 중에 점차 목적없이 인터넷의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약간의 시간이라도 남으면 스마트폰을 열어서 포털 뉴스 사이트를 열어본다. 그리고 그곳에 올라온 뉴스들을 이리저리 훑어본다. 하지만 그 어떤 뉴스에도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이리저리 관심이 옮겨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특정한 목적도 맥락도 없다. 순간순간의 지루함과 명멸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인터넷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카톡!” 소리는 또 어떤가. 간만에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으려거나 업무에 집중하려다가도 이 두음절의 파열음으로 이루어진 알람에 또다시 스마트폰을 집어드는 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상 카톡창을 열어보면 중요하지 않은 잡담인 경우가 다반사다. 재미있는 것은, 카톡을 받은 당신도 반사적으로 응답을 남기고 그것은 그 즉시 전파를 타고 또 누군가의 스마트폰에 알람을 울려서 집중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옭아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발표된 ‘2015년 인터넷 트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카톡은 하루 평균 55회 실행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앱에 선정되기도 했다. 모두 우리가 우리의 다시 없을 귀한 시간을 자발적으로 카톡에 바친 덕이다.
마지막으로 내 책장에 꼽힌 채 먼지만 쌓여가는 백과사전 이야기를 해보자. 이 백과사전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나머지 대다수는 그저 책장의 자리만 지킬 운명을 맞이했다. 20년 쯤 된 이 백과사전들 가운데 일부는 아직도 책을 펼 때 종이들이 쩍 소리를 내며 처음 떨어지는 듯한 새 책 특유의 느낌이 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위키피디아Wikipedia에 검색을 하면 훨씬 정확한 최신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굳이 두껍고 무거운 백과사전을 찾아볼 일이 없었다.
스마트폰, 인터넷 뉴스, 카톡, 위키피디아는 우리가 인터넷 시대에서 얻게 된 편리함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제 이런 것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상상이 어려운 것은 이런 것이 없었던 과거의 삶이다.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인터넷에 많은 것을 의존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하루 평균 3시간에 이르는 인터넷 중독은 결국 우리가 만든 자화상이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도구에 적응하고 결국은 그 도구에 길들여져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한번 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지성인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원제 : The Shallows | 니콜라스 카 지음 |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5년 01월 09일 출간』은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편리함을 얻은 대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첫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의 사고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가장 먼저 기억의 원리가 되는 뇌의 가소성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이는 이후 나올 ‘기억을 외부 장치에 의존하는 것’의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한 사전 정보이기도 하다.
이어서 ‘도구주의’와 ‘결정주의’를 비교한다. 쉽게 말해 ‘도구주의’는 ‘도구를 우리 뜻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인데 반해 ‘결정주의’는 ‘인간도 도구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한다’는 생각이다. 이 가운데 저자가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각은 ‘결정주의’이다. 저자의 주장은 인터넷에 의해서 우리의 사고력과 창의력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사람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인류 역사상 등장한 중요한 발명품의 사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지도와 시계가 그것이다. 저자는 지도가 사람들이 지형을 바라보는 시각을 재정의했고, 시계는 사람들이 시간이란 대상을 더 분석적이고 계획적으로 바라보게 했음을 알려준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서 내 나름의 비유를 더하자면 지도는 지형의 축소판이고, 시계는 시간의 거울이라는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도와 시계가 우리 인간의 인식에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인터넷도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고 있다고 한다.
두번째 부분에서는 인터넷 시대에서 우리가 활용하는 다양한 도구와 그것의 영향을 살펴본다. 인터넷, 전자책, 구글 또는 검색이 그것들이다. 저자는 우리가 이들을 활용함으로써 정보를 피상적으로 다루게 되었다고 경고한다.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서로 치밀하게 연결된 인터넷, 그리고 그것을 닮은 전자책은 종이로 된 문서와는 다르게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한다. 언제든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본래 흐름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인 동시에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한편, 인터넷에 퍼져있는 정보를 연결하는 통로를 자임하는 구글, 곧 검색 서비스는 이러한 산만함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이곳 저곳을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것을 돕는 것이 검색 서비스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강력한 검색 서비스인 구글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한 가지에 집중하기 더욱 어렵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산만함을 조장하는 인터넷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활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터넷의 편리함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깊이 있는 독서와 더불어 우리의 두뇌를 움직일 수 있는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다. 지난 10년 남짓의 시간을 지나오며 부지불식간에 인터넷에 얽매이게 된 나 자신의 모습을 새삼 발견하였다. 앞으로 주도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몇가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그간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 연장선에서 일관되게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인터넷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내가 실천해온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당신도 각자의 상황에 맞게 활용해 보기를 권한다.
첫째, 일정량의 독서량을 유지한다. 특히 계획을 갖고 최소한의 독서량이 유지되도록 노력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궁금한 것이 있더라도 매번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정보의 제공처가 되기도 하지만 산만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예전 인터넷이 없던 때에는 책을 읽다가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중단할 일이 더 적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더 깊이 있는 독서의 경지로 안내한다. 편리함을 포기하는 대신 깊이를 추구하는 독서를 해보길 권한다.
둘째, 각종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활용하는 시간을 제한한다. 하루 중 이메일에 답장하는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만 답장을 한다. 이를테면 밤 8시를 이메일 답장의 시간으로 지정하는 식이다. 비슷한 방식을 전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스마트폰의 수신 차단 예약 기능을 활용해서 오후 6시가 지나면 가족과 병원의 동료 외의 전화가 차단되도록 해두었다. 이로써 저녁 시간은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독서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확보하고 있다.
셋째, 운전할 때 네비게이션 사용을 지양한다. 앞서 저자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재구성하는 도구의 예로 지도와 시계를 들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도구의 특성이 융합된 것이 바로 네비게이션이 아닐까 한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도록 안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네비게이션 만큼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꿔놓은 도구도 흔치 않다. 일단 네비게이션에 익숙해지면 다시 공간지각력을 활용해서 직접 길을 찾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네비게이션에만 익숙해지면 내가 두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의 모습을 해석하는 것조차 기계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손으로 카드와 편지 쓰기를 한다.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서 종이에 글을 옮기는 것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점차 손으로 글씨를 쓸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펜보다는 키보드가 글을 쓰는 주된 도구가 되었다. 그럴 때일수록 차분히 글을 적은 카드와 편지를 통해서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나와 아내는 실제로 서로에게 수시로 카드에 손글씨를 적어서 감사하는 마음을 주고받는다. 이는 그 어떤 효율성을 앞세운 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큰 기쁨이다.
다섯째,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는 것도 가끔은 일부러라도 외워본다. 이것은 나도 아직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많은 정보를 스마트폰을 통해서 인터넷에 저장한다. 스마트폰 달력을 활용하고, 심지어 메모할 시간이 없을 때는 통째로 사진으로 남겨서 메모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마트폰에 모든 기억을 맡겨버리면 큰 짐을 덜어버린 기분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기억과 관련된 일종의 근력이 약화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렇게 기억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절약한 시간으로 내가 달리 무슨 큰 의미있는 일을 했나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 시간에 두뇌를 사용하는게 더 나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나 나름의 생각을 몇 가지 들었지만, 역시 이 가운데 핵심은 가장 처음에 들었던 독서라고 할 수 있다. 고요한 마음 가운데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기술적 편의에 우리의 사고가 종속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저자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전체에 걸쳐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당신이 지금처럼 이 블로그를 읽고 있는 것도 고맙지만,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지금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기를 권해본다. 그리고 내가 소개한 책들, 아니 다른 책이라도 좋으니 어떤 책이든 신중하게 선택해서 조용히 읽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