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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바로 일 년 전 오늘이었다. 2020년 설 연휴를 며칠 앞둔 1월 20일, 중국 우한시에서 입국한 중국 국적의 35세 여성이 코로나19로 확진되면서 우리나라도 코로나19 범유행이라는 일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후 1년 동안 코로나19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할퀴고 간 상처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상황이 지속될 듯하다. 어떤 이들은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곧 우리가 아직 터널 속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쓴 책에서도 거듭 다루었던 주제지만, 암울한 상황에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과거를 돌아보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우리가 가까운 과거에도 현재의 어려움을 짐작하지 못했듯,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야말로 우리가 현재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그것이 내가 역사 인문서 『사피엔스 원제: Sapiens | 유발 하라리 지음 | 조현욱 옮김 |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24일 출간』를 다시금 펴본 이유이다. 이 책은 ‘인류의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Humankind’라는 영문판 부제에도 드러나 있듯이 선사 시대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까지 이어져 온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도 다룬다.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의 역사를 크게 세 개의 혁명적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인지 혁명, 농업 혁명 그리고 과학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세 가지 혁명이 인류 자신과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그 세 가지 혁명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인지 혁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7만 년 전, 인간은 추상적인 사고를 터득한다. 추상적 사고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여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는 상상의 산물을 언어라는 도구에 담아 남과 공유하는 법도 익힌다. 인류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농업 혁명이라는 두 번째 사건이 이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0년 전쯤일 거라고 추정되는데, 인류는 곡식의 씨를 뿌리면 얼마 후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한다. 이로써 인류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대신 한곳에 정착해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게 된다.

그런데 흔히 농업의 발명을 역사의 진보라는 긍정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지만, 저자는 농업 혁명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말한다. 농사 덕분에 인류가 한곳에 정착해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 결과로 생겨난 잉여 생산물은 빈부 격차와 계급의 탄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은 농업 혁명을 거치면서 일정한 지역과 그곳을 지배하는 권력에 종속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말하자면, 농업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일생토록 한정된 지역에서 농사짓고 추수하는 노동의 굴레를 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농업의 발명이 ‘인류에게 축복보다는 재앙’이라는 견해를 나타내는데, 이것은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가 일찍이 그의 저서 『총 균 쇠 원제: Guns, Germs, And Steel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19일 출간』에 보여주었던 관점과 비슷하다.

한편, 인류는 농업 혁명을 거치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다른 생물들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농업 혁명 이전까지 인류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하면 신성한 나무와 돌과 같은 자연물에 소원을 빌고 자비를 청했다. 하지만 농업 혁명을 거치며 인간들은 자연을 자신의 힘으로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더 이상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질병이나 재해처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여전히 넘쳐났다. 초월적인 존재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습성도 그대로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무와 돌이 해주던 것을 대신할 또 다른 숭배의 대상이 있어야 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주요 종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농업 혁명의 시대로부터 시간을 건너뛰어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 이르면, 인류는 ‘과학 혁명’이라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다. 저자는 과학 혁명의 시발점이 ‘나는 모르는 것이 있다’를 인식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제껏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면 그것은 나무의 정령이나 구름 위의 신이 결정한 일이라고 말하며 어떻게든 모른다는 것을 부정하던 인간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 나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자면, ‘과학 혁명’은 7만 년 전 서로의 상상을 공유한 ‘인지 혁명’이나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농업 혁명’과 비교했을 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인지 혁명’이 ‘남’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이고, ‘농업 혁명’이 ‘자연’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이라면, ‘과학 혁명’은 ‘내’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긴 것들에 관해 의심을 하고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제껏 ‘남’과 ‘세상’을 향해왔던 호기심이 처음으로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다. 실로 인류 역사의 큰 진전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게 시작된 과학 혁명은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과학은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오늘날 과학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과거의 종교에 대한 그것과 무척 유사하다는 것이다. 과거 인류가 돌과 나무에게 그리고 나중에는 신에게 기대했던 것처럼, 현대인들은 유전공학과 인공지능이 인류가 마주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리라 굳게 믿고 있다. 숭배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이다.

한편, 저자는 인류가 지금까지 점차 발전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사회 시스템을 손에 넣어왔으나, 그 결과 인류의 삶의 방식은 항상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농업 혁명으로 안정을 얻게 된 대신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노동의 굴레에 속하게 되었고, 결국 권위적인 권력의 출현하여 숱한 전쟁을 일으켰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갈망하고 결국 그것을 획득하고 만족감에 취했지만,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한 이유로 정작 더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문제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생겼고, 때로는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행동들이 결국 더 큰 위기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1년간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지나왔다. 물론 아직 코로나19가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백신 접종에 대한 기사가 부쩍 잦아진 것으로 보아 머지않은 미래에 코로나19가 끝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해봄 직하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코로나가 남겨둔 또 다른 숙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급증한 일회용 쓰레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더욱 대담해진 각국의 정부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서로 편을 갈라 싸우게 만들어 자기의 지분을 넓히려는 정치인들. 어쩌면 우리 앞에는 코로나19로 힘겨웠던 2020년보다 더 험난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의 터널의 끝이 보이는 지금, 바로 그 출구의 눈 부신 빛에 가려진 또 다른 위험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미리부터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적어도 과거의 인류보다 더 두꺼운 역사책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그것만이 우리가 과거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우리는 이를 참고해서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다. 피할 수 있는 미래는 피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역사는 이미 쓰여진 미래’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며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 남겨야 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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