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사축社畜’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집에서 키우는 ‘가축家畜’에 빗댄 말로, 회사에 의해 자유와 양심이 통제되는 직장인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단어이다. 원래 일본에서 유행하던 단어였는데,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 암울한 느낌을 주는 ‘사축’이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 좋은 일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소위 ‘열정 페이’라고 하는 저임금을 참아가며 인턴으로 경험을 쌓아도, 이미 사람이 많이 밀려있어서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0대 청년 실업자는 41만명에 달하고 취업 포기자 및 취업 재수생이 무려 12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일자리의 질도 하락하고 있다. 20대 초반의 시간제 근로자 비율은 2007년 10.1%에서 올해 22.9%로 8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닌 임시직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의미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회사에 취직한 후에는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위로 갈수록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매년 새로운 후임들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피라미드 구조에서는 끝없는 생존 경쟁이 이어지게 된다. 올해 평균 취업 연령은 27.5세이고 주요 대기업의 근속년수는 10년 안팎이라고 한다. 자의건 타의건 40세가 되기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뒤로 물러서서 큰 그림을 살펴보자. 매일 불안해 하며 회사의 부품으로 살기에는 당신의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많은 직장인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직장이 자신을 밀어내기 전에 자기 발로 먼저 나온다. 그 후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한다.
자본과 경험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은 대다수가 어려움으로 끝을 맺는다. 2013년도 중소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생계 유지’가 창업 이유의 82.6%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계형 자영업자가 5년 후까지 사업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은 29.6%에 지나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한 이유로 10명이 창업하면 5년 안에 7명이 사업 실패로 더 나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는 뜻이다.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서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 프랜차이즈franchise 가맹점이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구축한 브랜드brand와 노하우knowhow를 빌려다가 조금 더 안정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폐업률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아닌 창업에 비해서 낮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브랜드와 노하우를 제공하는 것은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본사 스스로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이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들을 얼마나 불합리하고 혹독하게 대하는지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사회 뉴스면의 단골 주제이기도 하므로 여기서 따로 사례를 들지는 않겠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서 책 『사업의 철학 원제 : The E myth revisited | 마이클 거버 지음 | 이제용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5년 09월 01일 출간』은 한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은 25년 전 처음 출간된 책인데 그 이후 ‘경영의 고전’으로 불리고 있다. 저자는 독자에게 사업의 원형prototype을 만들어 가라고 역설한다. 쉽게 말해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길이 아니라 본사의 길을 따르라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판매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일을 하는 체계이며 노하우이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반복해서 가동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원형이며 지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식이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다. 저자가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왕 사업을 하려면 그 핵심이 지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지식을 담은 원형을 만들라고 강조한다.
나는 최근에 이 ‘원형’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하였다. 나와 아내는 조용하게 양초를 켜놓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는 양초 제조사에서 생산한 기성품을 구입해 사용했었다.
우연히 직접 양초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내와 언제 한번 양초를 직접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토요일 아침에 병원 당직을 마치던 날, 나와 아내는 이번 기회에 꼭 양초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였다. 병원에서 만나서 근처에 위치한 방산시장에 갔다. 그곳에서 양초 자재 파는 곳들을 돌아다니며 양초 재료를 사고 사용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날 오후 집에서 양초를 직접 만들었다.
양초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드니 그 전에는 몰랐던 여러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선 기성품에 비해서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양초를 만들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성품으로 판매되는 양초는 석유 성분인 파라핀paraffin을 사용하여 몸에 해로울 수 있다는 점도 배웠다. 심지어 웰빙well being을 앞세운 유명 제품도 실제로는 석유 성분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직접 만드는 양초는 식물성 소이 왁스soy wax를 활용하므로 훨씬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서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무비판적으로 이용하기 보다는 직접 노하우를 배워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블로그를 사업적인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다루고 있는 가치이자 주제인 ‘책’이 바로 지식의 집합이기 때문에 사업의 원형과 본질적으로 같다. 책의 내용이 곧 노하우이다. 나는 이 점에서 블로그가 남들에게 원형을 제공하는 형태의 사업과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로봇이 많은 일자리를 대체한다고 한다.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당신만의 사업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 로봇은 해낼 수 없는 당신만의 노하우를 찾아내어 지식의 원형을 개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식이 곧 상품이 되는 사업을 만들어 보자.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한국에 있을때 사들고 온 책인데 승건님의 블로그 글을 일고 다시 한 번 읽게 되었습니다. 기존 프래차이즈 사업들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알고 지식의 원형을 남기는 것의 중요성을 꺠닫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사업의 “원형(prototype)”이란 말이 와닿네요.
직장생활 하는 40대 중년으로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데..
지식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나만의 사업을 틈틈이 고민해봐야 할 듯.
대기업에 다닌다고 답이 있는것도 아니고, 사업한다고해도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으니 정말 답이 없는 사회로 가는 것 같아요. 이런 얘기하면 또 우울해지니 짧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