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길거리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지나가면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고, 한국산 브랜드의 가전제품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뭔지 모를 자부심이 들기도 한다. 해외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광고판을 보게 되면 단순한 익숙함 이상의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큰 관심을 갖는다. 유튜브에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 같은 주제로 올라온 동영상은 셀 수 없이 많다. 외국인 출연자들이 모여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TV 프로그램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그들 안에서 비춰지는 한국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한편으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스스로에게 갖기 어려운 객관적인 시각에 대한 갈증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갈증의 뿌리로 내려가 보면, 남들이 보기에도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싶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긍정적인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외국인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작 같은 나라 사람인 서로에게는 적개심과 무관심으로 상처를 입히고 있지는 않나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학교에서는 우등생인 아이가 집에서 부모와 형제 자매에게는 함부로 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안타깝지만 부정하기 어렵다. 사례를 들자면 셀 수 없이 많다. 젊은이들의 취업난을 기성 세대들이 교묘하게 활용하는 열정페이,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갑질 논란, 소위 ‘일베’로 대표되는 약자 혐오 문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대략 감이 잡히리라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원래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적어도 한 외국인의 시선에 비친 한국은 그러하다. 이번에 접한 책 『미래 시민의 조건 로버트 파우저 지음 | 세종서적 | 2016년 03월 28일 출간』의 저자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가 바로 그 외국인이다. 내가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엉망은 아니었는데’라고 푸념을 늘어놓는 것 보다, 외국인 저자가 우리나라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앞서 말한 ‘객관적 시각’을 원하는 이들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갈 것이다.
사실 저자는 평범한 외국인은 아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부교수 재직하면서 다른 과목도 아닌 국어를 가르쳤던 외국인이며,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 저자가 트위터에서도 유명인사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서울에 사는 동안 한옥과 도시 환경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서촌의 한옥을 대대적으로 수선하여 살기도 하였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었는데, 나도 이전에 몇몇 기사를 통해 접했던 기억이 있다.
저자의 유명세에 대해 소개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자가 한국과 인연을 맺고 이어온 과정에 있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저자가 한국에 대해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 미시간 주의 앤아버Ann Arbor 출신으로 미시간 대학교The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일본어를 전공하였다. 1982년 당시 일본에 유학중이었던 저자는 여행차 잠시 한국을 방문한다. 그 후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3년을 지내며 교토 대학Kyoto University과 서울대학교 등에서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번갈아 가르쳤다.
저자는 책에서 1982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외국인으로서 저자가 경험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한국에 오기 직전 일본에 있었던 저자가 한국에서 받은 첫인상을 일본의 모습과 비교하는 내용이 있는데, 한국의 ‘정’에 대해서 저자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 때 이후로 한국인들의 인간적인 면에 이끌러 한국 생활을 시작할 결심을 한다.
저자가 보기에 오늘날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 되었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서 평가한 민주주의 지수로도 상위권에 속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GDP 2만 달러를 넘으면서 인구가 5천만 명이 넘는 이른바 ‘2050 클럽’에 속하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참고로 2050 클럽은 전세계에 7개국 뿐이다. 저자가 한국에 첫 발을 들인 1980년 대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정치적 및 경제적으로 몰라보게 발전했다.
하지만 서로 간에 반목과 갈등이 심화된 오늘날의 한국의 모습에서 저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외국인들에게 비춰지는 한국의 모습은 눈부시게 발전했을지 몰라도, 정작 그 안에 사는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왜 우리는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도 지적했지만 나는 그 이유의 핵심을 ‘불안한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개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안전망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앞서 사례로 언급한 열정페이, 갑질 논란, 약자 혐오 등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개인을 ‘불안한 사회 시스템’으로 내몬 결과이다. 젊은이들이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결국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불안한 사회 시스템’에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불안한 사회 시스템’을 고치고 위기에 내몰린 개인을 보호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겉에서만 보기에 선진국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우리가 좋은 나라라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크게 3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집단의 목표에 앞서 개인의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저자도 지적했지만, 지금까지는 우리나라가 고도로 압축된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의 행복보다는 집단의 힘과 발전에 치중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집단으로서의 발전 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사라져야 하고, 정해진 근무 시간 외에는 집에 가서 가족과의 시간을 갖도록 보장해야 한다.
두 번째로, 배타적인 집단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소속감을 중요시 여기는 동양적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라는 단어에 이미 소속감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정보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집단의 효율성을 높여주고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순기능이 있었다.
그런데 이 소속감이 ‘같은 소속이 아니면 배척’하는 식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지금 당장은 그 집단에 소속한 이들에게 안정감과 만족감을 줄지 모르지만 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건전성을 해친다.
세 번째로, 사회적 자본의 공정한 분배에 관심을 갖자. 저자는 사회적 자본을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인간관계’로 설명하는데, 이것이 곧 자본과 같은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은 인맥이 그 예다. 누구나 노력하면 이런 사회적 자본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앞서 말한 배타적 집단주의를 지양하자는 것과 차이가 있다. 배타적 집단주의는 ‘배타성’ 자체에 문제점이 있는 것이데 반해, 사회적 자본의 공정한 분배는 인맥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누구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요약하면, 집단의 발전을 넘어서 개인의 행복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배타적 집단주의를 지양하며, 사회 구성원에게 공정한 기회가 돌아가도록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개인을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확산되고, 실제로도 그것이 믿음대로 지켜져야 한다. 그리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안에 팽배한 불신과 갈등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외국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고 국산 제품이 해외에서 잘 팔리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하나같이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잘사는 나라’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이제 그럴 만한 때가 되었다. 남에게 잘 보이고자 노력하기 이전에 매일 같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먼저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미래 시민의 조건』이 아닐까 한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차세대들에게 가정과 학교와 사회로부터 좋은 것 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사회 시스템이 발전될 수 있는데 … 공부, 성적, 명문대, 대기업 취업등의 공식에 맞추느라 그 이외의 것들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니 시민의식은 물론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요원하게 느껴져 안타깝습니다. 사회현상에 대한 독서와 토론활동 등으로 의식의 변화를 갖는 기회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분이 굉장히 유명하시더라고요. 이름은 언급되지 않아도, 한국에 오래산 서울대에서 국어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님으로. 첫번째 두번째의 경우 사실 유교문화권에 굉장히 한정되는 이야기이자 유교적 사고관의 한계로 가장 현대사회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건전한 사회안전망 기대해봅니다^.^늘 희망과 열정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