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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스 –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사람들

메이커스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사람들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에 커다란 상자들이 놓여있었다. 당시 컴퓨터가 가정에도 보편화되던 시점이었고 학생이 있는 집에서는 하나 둘 씩 컴퓨터를 들여놓던 때였다. 그런데 컴퓨터보다도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지금도 모델명이 기억나는 HP Deskjet 505K 잉크젯 컬러 프린터inkjet color printer가 그것이었다. 잉크젯 프린터의 초창기 제품으로 요즘 우리가 흔히 보는 레이저 프린터laser printer와 비교했을 때 크기도 훨씬 크고 무게도 많이 나가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요즘 같은 프린터가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 거대한 프린터에 대한 느낌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때까지는 인쇄물이라는 것은 어디선가 만들어져서 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집에서 찍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컴퓨터에 글을 적으면 프린터가 잉크 카트리지ink cartridge를 좌우로 오가게 하면서 손에 쥘 수 있는 인쇄물을 만들어 내었다. 이 모습을 보니 새로운 기술의 진보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편, 그즈음 나는 학교 공부는 제쳐두고 틈만 나면 집에 있던 타임 라이프Time Life 전집을 제본이 닳을 때까지 펼쳐보았다. 그 중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로 유명한 아서 C. 클라크 경Sir Arthur Charles Clarke의 ‘우주에의 도전宇宙에의 挑戰, 원제 : MAN AND SPACE’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가운데 하나였다. 아폴로 11호Apollo 11를 싣고 발사되는 새턴 5호Saturn V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으로 꽉 찬 표지가 인상적인 그 책에는 우주여행에 대한 다양한 사진과 기록들이 실려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만든 로켓rocket을 수직상승시키기 위해서 오랜 시도 끝에 성공시킨 미국인 고다드Robert Hutchings Goddard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나도 수직상승 로켓을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계획은 간단했다. 프링글스Pringles 감자칩을 다 먹고 남은 원통을 마련했다. 그 다음 바닥의 막힌 면 쪽에 단단한 재료로 로켓의 고깔모양의 머리를 만들었다. 모양은 그렇게 대충 구성하였다. 무엇보다도 핵심은 수직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아이디어였다.

일반적으로 로켓을 비롯한 항공기의 비행을 안정화시킬 때 사용되는 것은 자이로스코프gyroscope라고 불리는 장치이다. 자이로스코프란 수직으로 교차하는 팽이들로 구성된 장치로 비행중인 물체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당시 10대 초반이었던 나는 자이로스코프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만의 독자적인 장치를 고안했다.

로켓의 머리 바로 아래쪽 빈 공간에 서로 수직으로 교차하는 2개의 저울 구조를 로켓의 장축과 수직이 되게 장치하고, 그 다음 두 저울이 가진 총 4개의 가장자리를 아래의 반대쪽 분사구 측면과 철사로 연결하여 저울의 움직임에 따라 반대편 분사구가 당겨지거나 풀어지게 설계하였다. 예를 들어서 로켓이 우측으로 기울게 되면 저울이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서 엇갈려간 철사를 통해서 분사구의 좌측을 당겨서 들어올릴 것이고, 좌측으로 분사가 일어나면 그 힘에 의해서 우측으로 기울어진 로켓이 바로잡아질 것이라는 구상이었다.

연료는 고체연료와 액체연료 모두를 고려하였다. 폭죽을 분해한 후 화약을 따로 모아서 고체연료로 사용하려고 하였고, 소독용 알코올alcohol을 액체연료로 사용하려고 하였다. 또한, 화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산소 공급이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물을 전기분해해서 산소를 모으려고도 했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부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나의 수직상승 로켓 계획은 시제품을 만들다가 끝나버렸는데, 저울과 분화구를 계획처럼 전후좌우로 움직이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는 그런 것을 만들 수 없었다. 나는 당시 집에 들여놓았던 잉크젯 프린터 처럼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찍어낼 수 있는 상상 속의 기계가 실제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런 상상 속의 기계가 우리 앞에 현실이 되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얼마 전 마트에서 장을 보는 중이었다. 나는 어디를 가든 항상 광고를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날 쇼핑카트 안쪽 면에는 독특한 광고가 붙어있었다. 인근의 치과 병원 광고였는데, 새로 들여놓은 커다란 3차원 프린터3D printer 옆에 원장이 자랑스럽게 기대어 서있는 사진이 실려있었다. 자신들이 도입한 3차원 프린터로 정확한 보철 치료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당신도 최근에 그 비슷한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아내와 병원 근처에 있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그곳에서도 3차원 프린터가 이미 실생활에 아주 가깝게 다가왔음을 목격하였다. 그곳에는 여러개의 카메라로 둘러쌓인 원통형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 방 안에 들어가서 촬영을 하면 한 뼘 정도 크기의 미니어쳐miniature를 얻을 수 있었다. 예전에도 전신 사진을 보내면 점토 미니어쳐를 만들어 보내주는 곳을 보긴 했지만, 이번에 DDP에서 본 것은 그 결과물의 품질에 있어서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 전의 점토 미니어처가 그림이라면 이번 목격한 3차원 프린터로 만든 미니어처는 사진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확연한 수준의 차이가 났다.

다만 지금은 한 뼘 크기에도 수십만 원 정도 하는 것으로 보아 선뜻 구입하기에는 다소 비싼 감이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3차원 프린터로 만든 미니어처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담는 기념 사진을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전시된 것 가운데 가족들이 함께 잘 차려 입고 만든 미니어처가 있었는데, 그런 것은 기념 사진을 충분히 대체할 만했다.

지금까지는 우리들 대다수의 소비자가 무엇인가를 원할 때 어쩔 수 없이 기존에 만들어진 물건들 가운데 선택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원하는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물건을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원하는 것을 끝내 만들어내는 본성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책상 위에서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데스크탑 제조 도구desktop manufacturing tool들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3차원 프린터가 있다. 이는 마치 20여 년 전 집집마다 잉크젯 프린터를 놓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과거에 큰 인쇄소에서나 가능하던 인쇄를 가정에서 가능하게 한 것처럼 이제는 집에서 원하는 부피감 있는 물체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중요한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개인이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회사가 만들던 제품군에서 선택해야 했던 제약에서 벗어나 개인 스스로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권력의 중심이 회사에서 개인으로 옮겨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생각하는 권력이란 흔히 생각하듯 ‘남에게서 원하는 것을 취하는 힘’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남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힘’을 권력의 원천으로 생각한다. 개인이 회사에서 원하는 것이 적어지면 적어질 수록 개인의 힘은 강해질 것이다. 아울러 집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 수록 더 많은 시간을 직장이 아닌 가정에서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웹을 기반으로 서로가 협력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면 누구나 아이디어만으로 생산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즉 개인이 곧 소비자임과 동시에 생산자가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메이커스 –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사람들 원제 : Makers | 크리스 앤더슨 지음 | 윤태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013년 05월 27일 출간』는 우리가 그러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웹의 발달로 인해 제조업의 성격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그 제조업의 성격을 바꾼 원동력으로 웹의 특성인 공유를 제시한다. 남과 함께 자신이 가진 지식과 정보 그리고 인프라를 나누는 공유는 웹의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공유가 제조업 영역으로 도입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허물고, 결과적으로 생산 비용을 낮추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이어서 데스크탑 제조 도구의 발전을 살펴본다. 이미 데스크탑 제조 도구의 대표격인 3차원 프린터의 대중화가 실현되어 누구나 제조업에 진입 가능하게 되었다. 실제로 2015년 현재 100만 원 내외의 가격으로 입문용 3차원 프린터기를 구입할 수 있다.

물건을 만든 다음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당연히 판매이다. 따라서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에 나타난 혁신을 살펴본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롱테일The long tail 현상이다. 롱테일이란 이 책의 저자가 2004년 와이어드Wired지 20호에서 제안했던 말로 긴 꼬리를 의미한다. 흔히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으로 알려진 80:20의 집중 현상에 따라 그래프를 그리게 되면 발생확률이 낮은 긴 꼬리가 형성되는데 롱테일은 이 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수요 또한 발생확률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기존의 생산자는 수요의 발생확률이 집중되어 있는 몇몇 제품들에 생산력을 집중해서 생산비를 낮추고 동시에 수익을 최대화 하였다. 하지만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웹web이 보편화되면서 적은 수요가 있는 제품도 판매할 길이 열리고 생산도 가능하게 되었다. 즉 롱테일도 의미있는 수요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존Amazon.com, Inc.의 온라인 서점으로, 기존의 오프라인 서점들이 제한된 영업시간과 판매공간으로 베스트셀러에 집중을 하였던 것에 비해 아마존은 몇몇 사람들만 찾는 비인기도서도 함께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미미한 수요가 합해지면 결코 무시하지 못하는 수준이 된다는 것이 롱테일 현상이다. 아마존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전에는 소비자에게 보여질 기회조차 없던 상품들도 앞으로는 세상에 선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책의 1부에서는 현재까지 데스크탑 제조 도구가 가져온 변화를 살펴보았다면, 이어지는 2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 3차원 프린터, 컴퓨터 수치 제어CNC, computer numerical control 기계, 레이저 커터laser cutter, 3차원 스캐너3D scanner 등의 실용화에 따른 제조의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앞서 말한 제조의 중심축이 회사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통에 있어서도 공유 경제의 발달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웹의 특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시장을 쉽게 글로벌화globalization 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개인이 쉽게 넘지 못하던 자본 조달이란 벽도 앞으로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례로, 킥스타터Kickstarter와 같은 크라우딩 펀딩crowding funding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크라우딩 펀딩이란 아이디어가 있는 개인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는 곳이다. 그 결과 프로젝트가 실제로 결실을 맺으면 투자자는 돈이 아닌 시제품 등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누구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개발에 필요한 자본 조달이 가능해질 것이다.

요컨대 이제 집에서 프린트를 하듯이 책상 위에서 원하는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온다. 그렇게 만들어 낸 물건을 웹을 통해 전 세계로 팔 수 있게 된다. 자본 조달의 걸림돌조차 해결되어 지금까지 극소수의 회사만 가능했던 제조업의 진입 기회가 이제 수많은 개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차고에서 시작한 실리콘 밸리의 IT 기업들의 이야기가 전설이 된 것처럼, 앞으로 수없이 다양하고 혁신적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공장이나 회사가 아닌 바로 자신들의 책상 위에서 세상을 변화시켜 나아갈 것이다.

그런 세상의 변화를 읽고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준비가 당신에게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답답한 출퇴근길에서 의미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남이 세운 회사에서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에 단 하나뿐인 당신의 인생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창의적인 개인의 힘이 인정받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세상을 생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세상에 대한 인식이 선명해질 것이다.

앞으로 누구나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가족과 보내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의미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미리 변화의 흐름을 읽고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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