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무지 소설에는 흥미가 일지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책 리뷰를 읽을 때도 소설이라면 무심한 표정으로 마우스 휠을 굴렸고, 서점에서도 소설 코너 쪽으로는 좀처럼 발길이 닿지 않았다. 읽기뿐 아니라 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6년 전 이 블로그를 만들며 글쓰기를 새로운 도전 목표로 삼은 후로도 그 글이 소설을 의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소설에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고도 볼 수 있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소설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 ‘허구’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상상하고 꾸며서 쓴 이야기라는 뜻의 ‘허구’라는 말이 나에게는 무척 ‘허무’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오로지 내가 실제로 보고 느낀 것에 대해서만 글을 썼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누구도 나에게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글을 써야 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것이 내 글을 읽어줄 사람들을 향한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썼고,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에세이를 썼다. 그리고 그렇게 써 내려간 글들이 출판사 눈에 띄어 책을 낼 기회를 얻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바로 그 첫 책을 준비하는 동안 내가 그때까지 지켜온 글쓰기 원칙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한계를 느꼈다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있었던 일만을 쓴다는 건 달리 말하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아이와 함께 레고로 집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블록이 없을 때와 비슷했다. 눈앞에 실제로 있는 블록 중에 적당히 비슷한 것을 갖다가 써도 되지만 그러면 완성도는 포기해야 했다. 말 그대로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아, 그래서 소설이라는 걸 쓰는구나.’ 첫 에세이집을 마무리할 즈음 나는 비로소 ‘실제’라는 제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많은 신인 작가들이 그러하듯, 나는 첫 에세이집이 출간된 후 신간 목록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 책을 확인하는데 재미를 붙였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보름쯤 지나자 내 책의 표지를 보는 일도 식상해졌다. 그즈음 새로 나온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라이팅 픽션 원제: Writing Fiction | 재닛 버로웨이 지음 | 문지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30일 출간>, 직역하면 ‘소설 쓰기’가 되는 더 없이 직설적인 제목의 책이었다. 이 책이 다음 목표를 향한 여정으로 나를 이끌어 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출판사는 이 책을 ‘미국에서 지난 40년 동안 25만 명이 넘는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작법서의 고전이자 바이블’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미국의 문예 창작학과에서 글쓰기 교과서로 가장 많이 쓰여왔으며, 많은 작가들이 이 책으로 소설 쓰기를 배웠다고도 쓰여있었다. 책 소개에 어느 정도는 과장이 배어있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자부심이 느껴지는 경우는 또 드물다. <라이팅 픽션>이라는 제목 아래 ‘당신이 사랑하는 작가들은 모두 이 책으로 소설 쓰기를 배웠다’라는 부제는 “내가 소설 작법서의 표준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문구가 내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정확히 짚어주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이상 이 책을 읽는 것은 필연이었다.

이 책의 저자 재닛 버로웨이Janet Burroway는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여덟 편의 소설을 비롯하여 시, 희곡, 에세이, 동화 등의 여러 책을 낸 작가이다. 글쓰기에 관해서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는 이 책의 도입부부터 글쓰기가 정신적으로 무척 어려운 작업이라는 걸 인정한다. 또한, 그 어려움은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작가들도 공통적으로 느꼈던 감정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도 귀띔해 주는데, 그것은 바로 글쓰기를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초보 작가들이 글쓰기를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데 도움이 될만한 다양한 요령도 소개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일과를 적어보는 일기 쓰기부터,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자유 글쓰기, 짧은 시나 구절 등의 프롬프트를 글쓰기의 길잡이로 활용하기, 그리고 사실상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펜과 종이보다 익숙한 글쓰기 도구인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글 쓰는 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고민과 그 해결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저자는 또한 소설 쓰기의 실제 과정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가르쳐준다. 2장에서는 보여주기와 말해주기의 차이를 설명하고, 인물 만들기부터 배경 설정, 플롯과 구조 짜기를 거쳐 마지막 9장의 퇴고에 이르기까지, 소설 쓰기의 구체적인 과정에 대한 상세한 조언이 풍부한 예문과 함께 이어진다. 이를 통해 다양한 소설 작법과 사례를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이 모든 방법론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결국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소설 쓰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 자체를 즐기는 작가의 자발적인 습관이라는 것이다. 소설 쓰기의 기술적인 면 못지않게 글쓰기 자체의 즐거움을 설파하고자 한 것이 저자의 본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세상에 처음 나온 뒤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개선을 거듭하였고, 그렇게 해서 이번에 열 번째 판으로 나왔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는 다양한 소설에서 발췌한 예문과 유명 작가들의 격언 등을 추가하여 딱딱한 작문 교과서의 틀을 탈피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글쓰기 교재라는 본래 목적을 지키면서도,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읽는 즐거움까지 놓치지 않았다.

끝으로, 나는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곧 내가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는 건 주제넘은 일이란 걸 알았다. 진즉에 이 책에 관심 있을 이라면 아마도 소설 쓰기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 테니 말이다. 다만, 그 말은 하고 싶다. 소설 쓰기는커녕 읽기도 익숙지 않은 나조차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소설 한 번 써볼까’라는 욕심이 생겼다는 것을. 그 정도면 이 책을 읽어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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