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내가 병원에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턴으로 응급실 근무를 하고 있을 때 일이었다. 50대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보호자를 앞세우고 급히 들것에 실려서 들어왔다. 이 여성에게 자리가 배정되었고, 나는 치료 방침을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특별히 호흡곤란을 일으킬만한 심폐기능과 관련한 기저질환은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피부 곳곳에 무엇에 물린 듯한 붉은 반점들이 눈에 띄었다. 붉은 반점을 발견하고는 나는 호흡곤란이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아나필락시스란 온 몸에 나타나는 극심한 알레르기alergy 반응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환자에게 최근 벌레에게 물린 적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환자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고 내 시선을 피하는 눈치였다.
잠시 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보호자가 말을 좀 하자며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환자 상태가 어떠한지를 내게 물었다. 우선 나는 그 보호자가 환자와 무슨 관계인지를 확인했다. 왜냐하면 가족이 아닌 이상 법적으로 보호자 자격이 없기 때문에, 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는 함부로 환자 상태를 말해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보호자를 자청한 그 50대 남성은 자기가 전통요법사라고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환자가 내게 그 전통요법사와 본인의 상태에 대해서 논의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 환자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온 이유는 급작스런 알레르기 반응일 가능성이 있고, 피부의 반점으로 미루어 보건데 벌레에 물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 전통요법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놀라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실은 응급실에 오기 전 자신이 그 환자에게 봉침시술을 했다는 것이다. 봉침시술은 벌침에 있는 독을 치료목적을 기대하며 사람에게 투여하는 것이다. 그 전통요법사는 멋쩍게 웃었다. 환자나 보호자 모두 자신들이 봉침시술을 하여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서 당혹스럽고 한편으로는 창피해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멋쩍게 웃고 있는 그 전통요법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하마터면 한 전통요법사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귀한 생명이 희생될뻔 했다. 곧바로 환자에게 적절한 약물이 투여되였고 다행히 증세는 호전되었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환자가 호흡곤란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아주 드물고 특별한 상황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린 대체의학의 위험이 수면 위로 드러난 하나의 사례로, 당신을 포함하여 누구나 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의학이란 말이 익숙지 않다면 민간요법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번에 접한 『왜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사이먼 싱, 에트차르트 에른스트 지음 | 한상연 옮김 | 윤출판 | 2015년 08월 25일 출간』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본 침술, 동종의학,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약초요법 등이 대표적인 대체의학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이러한 치료법들은 어쩐지 사람을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거대하고 삭막한 느낌의 현대화된 병원과 항상 일에 쫓기는 의사들보다는 인간적으로 이러한 대체요법이 훨씬 부드럽게 다가오는 것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의사들은 청진기부터 MRI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진단 도구에 의존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역설적이게도 그 이유로 인해서 의사들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쉬운 말로 카리스마가 없어보인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저 잘 훈련된 전문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다. 반면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뭔가 보통의 사람을 넘어선 수준의 비법을 알고 있는 듯한 대체의학 종사자들은 당신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지식 너머에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대체의학들은 거의 모두가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다. 애초에 그들만 아는 비법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만약 대체의학으로 당신의 질병이 호전되었다면, 그것은 실제로 치료가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껴지는 것 뿐이다. 이미 이러한 현상은 위약 효과 또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이론으로 완벽하게 설명되고 있다.
침술의 경우에는 가벼운 두통 등의 일부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미있는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다. 자세 교정 목적으로 널리 알려진 카이로프랙틱의 경우, 정통주의자들과 절충주의자들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통주의자들이 말하는 카이로프랙틱은 이른바 동양의 기의 개념과 비슷한 거의 종교에 가까운 개념이라서 의학의 범주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편, 절충주의자들에 의한 카이로프랙틱의 경우 침술과 마찬가지로 제한적인 영역에서 일부 근골격계 증상을 완화시킨다고 한다. 약초요법의 경우 자연적인 것이 몸에 가장 좋다는 근거없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선조들은 우리들보다 기대수명이 훨씬 적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약초요법에서 활용된 천연 재료에 유효성분이 있다면, 이를 추출, 정제하여 예측가능한 약효를 갖는 현대적 의약품으로 계승하여야 한다.
동종요법의 경우는, 앞의 3가지 대체요법보다 더욱 부정적이다. 동종요법의 기본 개념은 ‘질병과 비슷한 증세를 일으키는 물질이 그 질병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어떤 물질을 섭취하여 열이 났다면, 그것은 발열이 특징적인 증상인 말라리아의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원칙으로 선정된 동종요법 성분은 치료제로 쓰이기 위해 엄청나게 희석되는 절차를 거친다. 이는 희석을 하면 할수록 약효가 강해진다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동종요법의 중요 원칙 때문이다. 그 결과, 동종요법 추종자들이 이른바 치료제라고 하는 것에는 그들이 치료제로 사용하고자 한 그 성분의 분자 한 개가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 된다.
이제 대체의학의 실체에 대해서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대체의학에 의존하다가는 결국에 가서는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그저 효험이 있는 것 같이 느끼는 것으로 그치게 될 것이다. 좋게 말해서 효험이 있는 것 같이 느끼는 것이지, 실상은 속았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게다가 대체의학에 의존하느라 실제로 효과 검증된 현대의학으로 치료를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는 경우가 가장 큰 문제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공공의료를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있는 공공병원이다. 공공의료의 특성상 민간의료기관에서 외면하는 환자들도 많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기꺼이 이들을 받아들여 최선의 치료를 제공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정보 접근성이 낮은 분들이 오히려 대체의학에 의존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환자나 보호자가 주위에서 전해들은 여러 대체의학이나 민간요법 가운데 끌리는 것을 따라하다가 결과적으로 회복이 지체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나는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될 때마다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런 분들이야 말로 그들의 한정된 자원을 효과가 검증된 치료법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대체의학 치료법이 가장 침투하기 쉬운 이들이 바로 이러한 정보력이 약한 분들이라는데 그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있다. 이는 참으로 비도덕적이고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체의학과 관련된 수많은 임상시험들이 단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것은 대체의학이 환자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임수들로 인해서 환자들은 그들의 한정된 자원을 낭비할 뿐 아니라 결정적인 치료 시기를 놓쳐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현실에 상당부분 우리 의사들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의학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의사들은 알고 있다. 다만 대체의학을 옹호하는 이들과 굳이 갈등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 이러한 진실을 알리기를 게을리 한다. 환자나 보호자가 대체의학 옹호자인 경우 하나하나 설명하며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더욱 자신의 자세를 낮추어 환자의 눈높이에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의사가 아닌 이들도 변화해야 한다. 대체의학이 가진 신비로운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이미지나 환상이 아니다. 오랜시간 수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이 신중하게 쌓아올린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 현재로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책 서평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서,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대체의학(한의학, 침술) 부분에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전에 다리를 다치게 되어서 정형외과에 다녔는데, 염좌라는 말만듣고 한달이 지나도 낫질않아서, 4군데의 병원을 돌게 되었습니다. 발목이 아파서 구부러지지도 않고, 걷기가 힘들어 지팡이에 의존하게되었습니다.
엑스레이도 이상이 보이지 않기에 의사들의 경험에 의해 염좌인지 인대가 파열된거인지 진단이 틀렸는데 낫질 않았습니다.
각종 우여곡절 끝에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는데, 붓기도 빠지고 빨리 나아지더군요. 저에 그런 경험에 의해 정말 침술이나 대체의학이 소용이 없는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대부분의 대체의학이 연구결과 무효한 부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한의학에 관해서 연구를 멈추지 않은걸로 알고있습니다.
한의학 옹호론자는 아니지만, 정말 무의미한가에 관해서는 의문입니다. 정말 무의미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을 찾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에 글을 남김니다.
바쁘신 와중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병원의 경우에는 어느 병과의 병원을 가셨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발목의 염좌라면, ‘정형외과’에 가야지, 종합병원에 간다고 무작정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한의원의 경우는 냉찜질과 침술에 의해서 3~4회만에 증상이 확 좋아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제일 먼저는 정형외과에서 X-ray를 찍으시고, X-ray를 찍으실 때는 발목을 접었을 대와 이완을 시켰을 때 모두 찍어서 인대의 방향에 따라 손상의 정도를 비교해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한 두장 찍어서 통증의 원인을 판별해 낼만한 증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인대가 파열되었다고 하는 것은 염좌에 의해 인대가 파열된 것이기에 ‘염좌’와 ‘인대 파열’이 증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를 말한 것입니다. 병원을 찾으실 때도 동네 의원보다는 전문성이 있는 병원으로 가야 빠른 시일 내에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