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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과 런던 아이

20년 만에 다시 찾은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딸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아내와 간만의 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휴대폰으로 구글 지도를 열어보니 마침 초등학교 바로 앞 코너에 방문자 평이 아주 좋은 카페가 있었다. 우리는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아이 등교를 준비하느라 부실했던 아침 식사를 보충하기 위해 카페로 들어섰다.

시간은 아직 오전 9시, 카페의 창밖 너머로 내다보이는 길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학교와 일터로 발걸음을 바삐 옮기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 길지 않은 고민 끝에, 대영박물관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듯이, 대영박물관 관람은 이번 런던 생활을 준비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다.

사실 대영박물관은 20년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은 게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그때는 종이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채 주변 기물을 살펴보며 더듬더듬 찾아갔었는데, 이제는 휴대폰의 구글 지도를 보면서 한 번에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편리해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조금 아쉬울 때도 있다.

카페를 나와서 10여 분 정도 걸으니 여타 건물과는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분위기의 거대한 건물, 대영박물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 건물로 들어갈 수는 없었고, 길게 이어진 담장을 따라 입구로 걸어가야 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건물의 앞쪽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입장 시간에 앞서 미리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오전 9시 30분, 대영박물관 개장 시각까지는 아직도 30분이나 남았다. 간간이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으나, 알고 보니 박물관 직원이었다.

정확히 오전 10시가 되자 방문객 입장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20년 만에 찾은 대영박물관의 모습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대영박물관의 모습과 아주 달랐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인지, 세계적인 박물관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적었다. 한때 밀려오는 관람객들의 줄을 세우기 위해 필요했을 이동식 바리케이드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대영박물관에 입장하니 밖에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대영박물관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바로 나오는 그레이트 코트Great Court는 유럽에서 가장 큰 실내 광장이다. 이곳은 서기 2000년도를 기념하기 위한 런던시 밀레니엄 프로젝트Millennium Project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런던시청사London City Hall, 밀레니엄 브리지Millennium Bridge와 함께 영국의 하이테크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작품 중 하나다. 특히 중앙에 보이는 둥근 모양의 시설은 도서관 열람실인데,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을 집필한 역사적 장소이다.

우리 부부처럼 준비 없이 방문한 이들을 위해서 대영박물관은 홈페이지에 3시간 추천 관람 코스를 정리해 두었다. 우리는 “그래, 오늘은 이것 대로만 하면 되겠다.”며 홈페이지에 안내된 대로 무작정 따라가 보기로 했다.

추천 코스가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이집트Egypt관이었다. 명색이 영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데 그들이 가장 먼저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유물이 이집트 유물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물론 서구 문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이집트 문명에 닿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미 많이들 알고 있듯이 수많은 이집트 유물들이 대영박물관에 오게 된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이집트 유물들 옆에는 또 다른 고대 문명인 아시리아Assyria의 유물도 있었다. 사르곤 2세Sargon II의 코르사바드Khorsabad 궁전에서 대문을 지키던 수호상 ‘라마수Lamassu’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기니 이스터섬Easter Island에서 가져온 모아이Moai 석상 ‘호아 하카나나이아Hoa Hakananai’a’도 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이곳이 아니면 만나볼 수 없는 귀중한 인류의 보물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국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모여있는 곳의 맞은편에, 대영박물관이 설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Enlightment Room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굳이 번역하자면, ‘계몽주의의 방’ 정도가 되겠다. 이곳에 정리된 대영박물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대영박물관은 처음에 아일랜드 의사인 한스 슬론 경Sir Hans Sloane의 개인 수집품으로 1753년에 설립되었다. 이후 1759년 1월 15일 몬태규 저택Montagu House에 자리를 잡고 공공에 개방되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대영박물관이다. 대영박물관의 역사를 보여주는 Enlightment Room이 바로 최초의 몬태규 저택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30분가량 ‘계몽주의의 방’을 돌아보며 영국인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대영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800만 점에 이르는 문화재는 도굴과 약탈로 얻어진 것들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대영박물관에 영국 것은 건물과 경비 밖에 없다.”는 조롱 섞인 농담도 존재한다. 영국인들도 그러한 비판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조상이 전 세계의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보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듯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영국인들이 이 대단한 박물관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노력은 그것대로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결과의 혜택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 과정을 인정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런던 아이London Eye 방문기

대영박물관에서 3시간 속성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딸 아이의 학교가 마칠 시간이 되었다. 곧장 딸 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딸 아이가 나를 보자 “런던 아이! 런던 아이!”라고 하고 외친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아내가 딸 아이에게 런던 아이에 가기로 약속한 한 모양이다. 나는 솔직히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었지만 딸 아이와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런던 아이는 템스Thames 강가에 세워진 거대한 관람차이다. 2000년을 기념해서 세워졌기에 밀레니엄 휠Millennium Wheel이라고도 불린다. 오늘날에는 매년 300만 명이 찾는 런던의 대표적인 관광 시설이 되었다. 강변에 세워진 곳인 만큼 주변도 공원처럼 잘 정비되어 있다. 날씨도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왔다.

런던 아이는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조금 더 저렴하지만, 온라인도 어른이 31 파운드, 어린이가 27.5 파운드나 된다. 일주일 전 예약하면 어른이 24.5 파운드, 어린이가 22 파운드이지만, 어쨌든 딸 아이와 약속은 오늘 가기로 한 것이니 입술을 꾹 깨물고 결제를 마쳤다. 그렇게 순식간에 거의 15만 원 가까운 돈이 나갔다.

그런데 런던 아이에 가는 내내 저는 돈보다 내심 걱정했던 것이 있다. 사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래도 높은 곳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기에, 여기까지 와서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최대 높이 135m에 이르는 초대형 관람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관람차 문이 닫히고 나서는 차라리 안 타고 후회하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런던 아이가 한 바퀴를 도는 30분이 빨리 지나가기를 계속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도 한 가지 만큼은 스스로 대견하게 느꼈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아빠와 남편으로서 관광지에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사진과 영상 촬영은 충실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런던 아이에서 찍은 동영상으로 오늘 글을 마친다.

순서대로, 더 샤드The Shard와 영국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Palace of Westminster가 눈에 띈다. 유명한 시계탑인 빅 벤Big Ben은 아쉽게도 수리 중이었다. 2022년 상반기에 수리가 마무리된다고 하니 영국을 떠나기 전에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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