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먹거리가 풍부해진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삶의 질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늘 명암이 있는 법이다. 풍요로운 삶은 한편으로 성인병이라는 또 다른 숙제를 불러왔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당뇨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미 우리 주변에 당뇨 환자는 드물지 않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14.4%)이 당뇨를 앓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65세 이상에서는 10명 중 3명(29.8%)이라고 한다. 이제는 누구도 당뇨에 걸리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늘은 당뇨에 관한 몇 가지 통념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하는데, 그 전에 잠깐 당뇨가 무엇인지에 대해 짧게 살펴보자. 아주 쉽고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려고 하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당뇨, 왜 문제인가?
우리 몸은 활동을 위해서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자동차가 달리기 위해서 연료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밥으로 쌀이나 빵을 먹는 것도 그 주성분인 탄수화물이 분해된 포도당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체내에 들어온 포도당은 일단 혈중에 머무르다가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에 의해서 에너지가 필요한 세포에 흡수된다.
당뇨는 바로 이 인슐린 작용에 문제가 생겨서 포도당이 세포에 흡수되지 못하고 혈중에 남아있는 질환이다. 인슐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혈중에 포도당이 넘치다 보니 그게 소변으로도 배출되어 말 그대로 ‘당뇨’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당뇨의 핵심은 그 이름과는 달리 소변이 아니라 혈액 속의 포도당이다. 혈중에 누적된 포도당은 작은 말초 혈관을 손상시키고, 다른 한 편으로는 혈중 지질을 증가시켜서 큰 혈관을 좁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당뇨의 합병증으로 알고 있는 주요 증상들이 결국은 혈류 장애인 이유이다.
혈류 장애는 초기에 뚜렷한 증상이 없다 보니 미리 관리하지 않으면 당뇨가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잘못된 알려진 당뇨 관련 상식들도 한몫한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젊은 나이에는 당뇨에 걸리지 않는다?
당뇨는 그 원인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췌장에서 인슐린 자체를 분비하지 못하는 것이 제1형 당뇨, 인슐린은 분비되지만 우리 몸의 세포가 그 인슐린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제2형 당뇨다. 인슐린이 혈중 포도당을 낮추라는 카톡 메시지라면, 보내는 사람 휴대폰이 꺼져 있으면 제1형 당뇨, 받는 사람 휴대폰이 꺼져 있으면 제2형 당뇨라고 할 수 있다.
제1형 당뇨는 발병 연령이 20대 미만으로 비교적 낮다. 인슐린 결핍이 원인이기 때문에 인슐린 주사가 치료의 핵심이다. 다만 전체 당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당뇨 환자의 약 2% 정도에 해당한다. 비록 비율은 낮지만 그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므로 젊은 나이라고 당뇨를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 제2형 당뇨는 우리가 흔히 성인병으로 알고 있는 질환이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과체중과 비만이 있을 때 생기기 쉽고 유전적인 영향도 있다. 제2형 당뇨는 주로 40대 이후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요즘에는 청소년 비만 등이 늘어나면서 그 아래 연령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당뇨에 걸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뇨는 인슐린 대사에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단 음식 그 자체가 원인은 아니다. 인슐린이 제 역할을 한다면, 설탕 등의 당분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어서 혈당 수치가 올라가더라도 곧 정상 범위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서 단 음식은 조심하는 게 좋다.
먼저, 단 음식을 섭취하고 운동 등으로 그 에너지를 적절하게 소비하지 않으면 체내에 지방으로 축적되어 과체중과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체중과 비만은 제2형 당뇨의 중요한 원인이다. 단 음식 자체가 당뇨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체중 증가는 장기적으로 제2형 당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다음으로 고려할 것은 이미 인슐린 대사에 장애가 있는 경우이다. 당뇨가 있는데 당분을 무분별하게 섭취하면 혈당이 과도하게 상승하게 된다. 높은 혈당을 방치하면 앞에서 살펴보았듯 다양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당뇨가 있거나 없거나 단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건 자제하는 게 좋다. 다만 그 이유가 단 음식이 직접 당뇨를 일으키기 때문은 아니다.
술은 당뇨와 상관이 없다?
얼핏 생각하기에 술은 당분이 없기 때문에 당뇨와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과도한 음주는 당뇨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크게 세 가지 면에서 그렇다.
먼저,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은 인슐린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들어서 췌장에 부담을 주고 인슐린 저항성을 높일 수 있는데, 이것은 당뇨 자체를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알코올은 저혈당을 일으킬 수도 있다. 우리 몸은 혈당 수치가 낮아지면 간에서 다른 물질을 분해하여 포도당을 보충하는데, 알코올이 그 과정을 저해한다. 그래서 혈당강하제나 인슐린을 투여하고 있는 당뇨 환자가 음주를 하면 급격한 저혈당에 빠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알코올은 1리터당 7kcal의 상당한 열량을 낸다. 따라서 과도한 음주는 지방의 축적으로 이어져서 제2형 당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당뇨가 있다면 음주는 특히 조심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미 마시고 있는 술을 절제한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의사들이 당뇨 환자들에게서 음주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아예 금주하도록 권하는 이유다.
소변에 거품이 있으면 당뇨가 있다는 증거?
갑자기 소변에 거품이 생기는 게 눈에 띈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혈당이 190mg/dl 이상인 경우 소변에 당이 배출되어 거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변에 거품이 있다고 반드시 당뇨가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신장의 다른 질환이 있을 때도 소변에 당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눈에 띄는 현상으로 특정 질병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가 있다. 소변에 거품이 있으면 당뇨의 증거라는 속설이 퍼진 이유도 아마 그런 것일 테다. 소변에 평소에 없던 거품이 보인다면 그 자체로 당뇨를 단정 짓기보다는 추가적인 혈당 검사를 통해 당뇨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게 필요하다.
참고로, 당뇨의 3대 증상이 있다. 바로 ‘다음’, ‘다식’, ‘다뇨’이다. ‘다음’은 ‘많이 마신다’, ‘다식’은 ‘많이 먹는다’, ‘다뇨’는 ‘소변을 많이 본다’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일 뿐이다. 아직 당뇨가 없다면 주기적인 건강검진으로 혈당 수치를 확인하는 게 좋다. 이미 당뇨가 진단된 환자라면 그 중요성은 더욱 클 것이다.
당뇨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
이것은 당뇨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는 제1형 당뇨 환자는 안타깝지만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제2형 당뇨는 그 중요 원인인 비만이 개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꾸준한 운동과 식단 조절로 얼마든지 약을 줄일 수 있고 더 나아가 투약을 중단할 수도 있다.
다만, 아직 혈당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와 상의 없이 임의로 투약을 중지하는 것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조절되지 않은 혈당 수치는 심각한 당뇨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 개선, 그다음은 혈당 조절, 마지막으로 투약 조절. 이 순서를 꼭 기억하자.
당뇨, 알면 이길 수 있다.
오늘은 당뇨와 관련하여 세간에 알려진 통념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부디 오늘 글이 당뇨에 관한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막연한 걱정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