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노팅힐 서점과 포토벨로 시장

오늘은 무작정 영화 <노팅힐 Notting Hill | 1999>의 무대였던 노팅힐 서점The Notting Hill Book Shop과 그 주변의 포토벨로 시장Portobello Market으로 떠났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여유시간이 생겨서 아내와 어디로 떠날지 의논한 끝에 즉흥적으로 다녀왔다. 나와 아내의 데이트는 보통 그렇게 시작한다.

집에서 가까운 킹스크로스역Kings Cross Station에서 지하철을 타고 16분가량 간 뒤 래드브룩그로브역Ladbroke Grove Station에서 내렸다. 우리가 사는 곳은 런던London 중에서도 캠던Camden의 블룸스버리Bloomsbury라는 지역인데 래드브룩그로브역과 포토벨로 시장이 있는 곳은 켄싱턴Kensington이라고 한다. 캠던이나 켄싱턴은 한국의 구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단위다. 참고로 켄싱턴 바로 옆은 축구 구단으로 유명한 첼시Chelsea다.

포토벨로 시장의 첫인상

포토벨로 시장은 런던에서도 가장 큰 골동품 시장이다. 1837년부터 시작된 곳으로 2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고급 골동품 시장을 중심으로 과일, 야채를 판매하는 청과상과 일용잡화를 파는 시장 등 서너 개의 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평일이라서 그런지 무척 한산했다.

그런데 이 동네의 분위기 자체가 주말이라고 더 북적대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 같은 타지인들에게는 한 번쯤 와봄 직한 관광지이지만, 여기에 사는 이들에게는 그저 평생동안 평온한 삶을 이어가는 일상의 공간인 듯싶었다.

런던 시장, 미국 햄버거

포토벨로 시장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 식사 때가 되었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던 중 마침 바로 앞에 파이브가이즈Five Guys라는 햄버거집이 눈에 띄었다. 파이브가이즈는 흔히 미국의 3대 햄버거 프랜차이즈로 쉐이크쉑Shake Shack, 인앤아웃In-N-Out과 함께 언급되는 곳으로, 오바마Barack Obama 전 미국 대통령이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런던의 시장까지 와서 미국 햄버거를 먹는다는 게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여 파이브가이즈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노팅힐 서점,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여행 서적 코너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배도 든든하겠다 이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휴 그랜트Hugh Grant가 서점 주인으로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가 유명 할리우드 여배우로 연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노팅힐>의 무대, 바로 노팅힐 서점이다. 구글 지도를 열어보니, 바로 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기만 하면 거기에 노팅힐 서점이 있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이 서점은 여행 서적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서점의 안쪽 별도 공간에는 The Travel Book Co라는 여행 서적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여행 서적 코너 바로 앞은 천장이 유리 창문으로 되어서 외부의 햇볕이 서점 내부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래서 서점의 가장 구석진 곳이었지만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왕 온 김에 책을 몇 권 샀다. 물론 딸 아이를 위한 책도 하나 샀는데, 누가 아빠가 보건소 의사 아니랄까 봐 방역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골랐다. 최근에 나온 책인지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소개되어 있다.

여행 서적 코너를 돌아보고 있는 동안 한 가지 이유로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여행책이 구석 잘 안 보이는 곳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 서적 코너에 왔는데 이런 광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있던 중국 여행책 앞에 우리나라 여행책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어차피 요즘 중국에 가면 입국 후 28일 동안 격리를 해야 한다고 하니 중국 여행책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다음 헛기침 한 번 하고 아무 일 없는 듯 돌아 나왔다.

< > 표시를 좌우로 움직일 수 있다.

노팅힐 서점을 실제로 와보니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독립 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웬만한 우리나라의 독립 서점보다도 작은 크기다. 말하자면 그냥 작은 동네 서점이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여행객들이 한 번쯤 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거듭났다. 실제로 우리가 서점 안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에도 창밖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지나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새삼 콘텐츠의 위력을 실감했던 하루였다.

“노팅힐 서점과 포토벨로 시장”의 4개의 댓글

  1. 여행을 하다 서점에 들리면 꼭 여행 코너에서 한국 여행책을 찾게 되더라구요. 늘 구석에 있거나 없거나. 괜히 꺼내서 보다가 아 ~ 엉터리 내용 별로야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긴 시간동안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가족 모두 영국에서 건강하게 행복하게 좋은 경험과 추억 많이 쌓고 오기를 기원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