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갤러리의 그림들

2021-09-29 07:00:00

하루가 다르게 선선해지는 것 같더니 어느덧 9월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런던에 온 게 9월 초인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 내가 언제 또 런던이라는 멋진 도시에서 일 년이라는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하루하루 달력의 날짜가 넘어가는 데 약간의 조바심도 든다.

그럴만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금까지는 아내의 대학원이 오리엔테이션 기간이었지만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학기 과정이 시작된다. 평일 낮에 아내와 박물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던 주요 미술관들을 집중적으로 다녀볼 계획이다. 아내와 별 이견 없이 그 첫 목적지로 정한 곳이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이다.

내셔널 갤러리 소개

내셔널 갤러리는 1824년에 설립되어 곧 200주년을 앞둔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다. 영국의 영웅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의 기념비가 서 있는 트래펄가 광장Trafalgar Square의 북쪽 면에 접해 있다. 1805년 10월 21일 넬슨 제독은 나폴레옹Napoléon과 맞붙은 트라팔가르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이는 대영제국이 번영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작품의 범위는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초기 르네상스Renaissance부터 19세기 후반의 현대미술까지 아우른다. 영국 외에도 유럽 각국의 미술품도 두루 다루고 있는데 그 수준이 매우 높다. 특히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반 에이크Anthony van Dyck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로 대표되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들도 전시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 들어가면 아래와 같은 관람 안내도를 볼 수 있다. 관람 안내도의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약 1시간 반 동안 주요 작품의 시대적 순서에 맞추어 관람을 할 수 있다. 내셔널 갤러리를 처음 찾은 관광객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핵심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하려는 미술관의 배려가 느껴졌다. 우리도 관람 안내도의 화살표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작품 감상 중에 찍은 전시실 사진과 일부 작품, 그리고 메모한 내용을 위주로 관람기를 써보려고 한다. 관람기를 남기는 이유는 내 기억을 보존하는 개인적인 목적이 가장 크다. 다만, 이 글에서 내셔널 갤러리의 모든 전시실과 작품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대 분류나 세부 내용 등에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보기에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런 포괄성과 정확성을 원하는 독자는 내셔널 갤러리 홈페이지가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흔한 여행기일 뿐이다.

초기 르네상스

이탈리아 (1250-1350)

가장 첫 번째 방은 르네상스 이전 이탈리아의 작품들을 전시한 한 곳으로, 1250년부터 1350년까지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이 시대의 작품들은 주로 종교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제단 장식이나 십자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당시의 성직자들이 종교적 목적으로 소지하던 작은 그림들도 전시되어 있다.

한편, 이 시기의 이탈리아 회화는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인의 신성한 이미지를 담은 그림을 뜻하는 비잔틴 성화는 이탈리아반도 전역에서 유행했다. 비잔틴 미술의 특징인 금박을 입힌 배경과 그림의 짙은 색조는 많은 이탈리아 화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화가들은 비잔틴 미술의 주제도 많이 모방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12세기 비잔틴 미술에서 처음 시작된 슬픈 모습을 한 그리스도의 그림이다.

시에나 공화국 (1300-1450)

중세 후기의 시에나 공화국Repubblica di Siena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당시 유럽의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에나의 정치적 독립은 강력한 적국 피렌체Firenze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시에나 공화국은 이에 대항하여 성모 마리아를 그들의 여왕으로 삼았는데, 1308년 당시 가장 명망 있는 화가인 두초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는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한 시에나 대성당의 대형 제단화 마에스타Maestà를 그렸다. 마에스타의 앞면은 천국에 있는 성모와 아기를 묘사했고, 성직자에게만 보이는 뒷면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40개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시에나 공화국 전시실에는 18세기에 해체된 마에스타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이후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서양화의 중요한 전환점인 깊이와 공간감이 나타나 있다. 시에나 공화국의 그림들은 유럽 전역에서, 심지어 그들의 적국인 피렌체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모방되었다.

피렌체 (1300-1450)

14세기 초 아르노강Fiume Arno 유역에 있는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 및 문화 중심지였다. 피렌체는 유럽 대륙의 양모 무역을 지배했고, 피렌체의 화폐인 플로린Florin은 오늘날의 미국 달러나 다름없었다. 1340년대 후반에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지만, 그조차도 이 도시의 번영을 막지 못했다.

넘치는 부는 자연스레 피렌체에 예술을 꽃피우게 했다. 이 방에 있는 그림들은 1338년 당시 110개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피렌체의 성당, 수도원 및 수녀원의 제단화들이다. 자코포 디 시오네Jacopo di Cione의 작품은 그 당시 제단화들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잘 보여준다. 15세기로 접어들면서, 피렌체의 화가들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두초 디 부오닌세냐 등의 피렌체 화가나 다른 시에나 화가들로부터도 영향을 받아서 장엄한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전성기 르네상스

피렌체 (1470-1500)

1478년 4월 26일, 피렌체의 파치Pazzi 가문은 당시 피렌체를 통치하던 메디치 가문House of Medici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여기에는 파치 가문 외에도 살비아티Salviati 가문, 리아리오 가문Casa Riario, 교황 식스토 4세Sixtus PP. IV가 가담했다. 하지만 쿠데타는 실패했고,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메디치 가문은 수많은 피렌체 예술가들을 후원했는데, 당시 예술계의 젊은 유망주였던 필리피노 리피Filippino Lippi, 로렌초 디 크레디Lorenzo di Credi,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입어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기를란다이오Ghirlandaio 형제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 전시실의 그림들은 교회, 수도원 같은 공공시설 뿐 아니라 개인적인 공간을 위한 것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주로 성경의 특정 주제에 대한 후원자 개인의 신앙을 반영했다. 예컨대 보티치니Francesco Botticini의 <성모 승천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이나 피에로 델 폴라이올로Piero del Pollaiuolo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Martyrdom of Saint Sebastian>는 먼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는 있었지만, 후원자의 특별한 방문객만 가까운 접근이 허용되었다.

프란체스코 보티치니 (약 1446- 1497)

보티치니의 <성모 승천>은 피렌체의 정치가인 마테오 팔미에리Matteo Palmieri의 장례식을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사진 하단에는 그가 아내와 함께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모습을 묘사한 하늘의 돔은 피렌체와 피에솔레Fiesole 지역을 그린 아래쪽 배경과 대조를 이룬다. 이 그림은 팔미에리가 사망한 1475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Francesco Botticini, probably about 1475-6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Raffaello Sanzio와 미켈란젤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다. 우르비노Urbino에서 태어난 라파엘로는 초상화와 성모 마리아의 그림, 그리고 그의 개인적 매력을 통해 일찍 명성을 얻었다. 1500년부터 1508년까지 그는 이탈리아 중부, 시에나, 피렌체, 페루자Perugia에서 활동했다. 그는 위대한 동시대 화가인 미켈란젤로의 뒤를 이어 그림을 그렸다.

미켈란젤로는 처음에는 피렌체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의 작업장에서 화가 훈련을 받았고, 그다음에는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의 후원 아래 조각가로 훈련받았다. 내셔널 갤러리에는 피렌체와 로마를 오가며 작업한 그의 희귀한 그림 두 점이 모두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한편, 교황도 오랫동안 주요 예술가들을 바티칸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The Genesis>를 그리기 시작한 때가 1508년인데, 그로부터 이미 수십 년 전인 1481년부터 1483년 사이에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시스티나 성당Aedicula Sixtina에서 일하고 있었다. 1508년은 교황 율리우스 2세Iulius PP. II가 라파엘로를 바티칸으로 불러들인 해이기도 하다.

만년에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는 서로의 라이벌이 되었다. 이 전시실의 그림들은 라파엘로의 조화롭고 이상화된 화풍과 미켈란젤로의 웅장하고 역동적인 화풍이 서로 대조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라파엘로 (1483-1520)

라파엘로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몬트의 그리스도 수난도Mond Crucifixion>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몸은 십자가에 달려 있고 두 천사가 양쪽의 섬세한 구름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황금 잔에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받는다.

The Crucified Christ with the Virgin Mary, Saints and Angels (The Mond Crucifixion), Raphael, about 1502-3

하늘에는 태양과 달이 함께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동시에 일어난 일식을 나타낸다. 성 제롬St. Jerome과 막달라 마리아Mary the Magdalene가 십자가 아래에서 존경과 연민을 담은 시선으로 그리스도를 올려다보고 있다. 애도를 나타내기 위해 자줏빛 검은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 왼쪽에 서 있고 오른쪽에는 복음사가 요한John the Evangelist이 서 있다. 두 사람은 슬픔을 호소하는 듯 관람객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바로크

서양 미술사에서 바로크Baroque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지만, 일반적으로 대각선 구성과 환상적 효과를 사용하는 17세기의 대형 작품들을 가리킨다. 플랑드르Flanders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와 로마 조각가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의 작품은 이런 의미에서 흔히 바로크 양식으로 분류된다. 바로크의 어원은 모양이 불규칙한 진주를 의미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pérola barroca‘이다.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은 진주 중에서도 모양이 고르지 못한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겼는데, 이후 새롭게 등장한 미술 양식을 두고 르네상스 미술이 불규칙하게 변질되었다는 풍자적인 의미를 담아 바로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요 화가

루벤스 (1577-1640)

독일 태생의 루벤스는 플랑드르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는 종교개혁에 반대하고 가톨릭을 옹호하는 작품을 그려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루벤스는 영국 및 유럽 대륙 모두에서 성공한 화가였고 외교관으로도 일했다. 루벤스는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반종교개혁의 메시지로 청중을 현혹하는 작업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한편,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에도 열정적이었다. 루벤스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기에 수집가들은 그의 작품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결국 그는 제자 겸 조수들을 고용함으로써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루벤스가 그의 그림의 일부를 제자들에게 맡긴다는 사실은 그림을 의뢰하는 이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반 다이크 (1599-1641)

반 다이크는 십 대 중반에 이미 뛰어난 예술가가 된 천재 화가였다. 헨드릭 반 발렌Hendrick van Balen과 견습을 마친 그는 루벤스 아래에서 성경 및 신화를 주제를 그리는 작업을 보조했다. 1621년에서 1627년 사이 반 다이크는 이탈리아의 제노바 귀족과 로마의 주교 및 추기경의 초상화 화가로서 인기가 많았다. 오늘날 반 다이크는 그가 그린 초상화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루벤스와 마찬가지로 반 다이크는 높은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규모 작업장을 운영했으며 종종 의뢰받은 초상화의 일부를 제자들에게 맡겼다.

렘브란트 (1606-1669)

렘브란트는 초상화보다 성경과 신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초상화가 더 수익성이 좋았다. 이에 렘브란트는 1631년경 암스테르담에 정착 후 초상화 화가로 활동했고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거칠고 우울한 분위기의 렘브란트의 그림은 당시 유행과는 맞지 않았지만, 독보적인 인물 묘사 실력 덕분에 당대 유력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초상화 의뢰를 받았다. 렘브란트는 의뢰받은 초상화뿐 아니라 40여 점에 이르는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17세기 프랑스 회화

17세기 절대 왕정이 지배하던 프랑스 파리에는 자신의 경력을 쌓고자 하는 젊은 화가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1648년에 왕립 미술 조각 학교Acadé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가 설립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필립 드 샹페뉴Philippe de Champaigne가 그린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duc de Richelieu et de Fronsac의 전신 초상화와 같은 그림은 이 시기 프랑스의 힘과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정작 17세기의 가장 중요한 프랑스 화가는 파리에 살지 않았다.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은 루이13세의 궁정 화가로 일한 2년을 제외하고 1624년에 로마에 정착한 뒤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이상적인 풍경 속에 성경과 신화의 인물을 주제로 독창적인 작품을 그렸다. 웅장하고 세련된 화면 구성은 프랑스 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근대 회화의 시조로 불린다.

한편, 이 시기의 프랑스 회화를 이야기하면서 클로드 겔레Claude Gellée도 빼놓을 수 없다.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으로도 알려진 그는 17세기 가장 성공한 풍경 화가였다. 그의 후원자 중에는 스페인의 펠리페 4세Felipe IV와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PP. VIII 등이 있었다. 클로드는 이상적인 풍경과 항구의 모습을 주로 그렸고, 종종 실제와 허구를 혼합하기도 했다.

17세기 스페인 회화

17세기는 스페인 회화가 크게 발전한 시기이기도 하다.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는 군주제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소박한 스타일에도 변화를 주었다. 그는 그림을 멀리서 볼 때 강렬한 느낌을 전달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17세기 이탈리아 회화

17세기로 접어들면서 두 가지 다른 종류의 회화가 이탈리아에서 함께 발전했다. 하나는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와 귀도 레니Guido Reni로 대표되는 고전적 양식이며 또 다른 하나는 카라바조Caravaggio의 자연주의적 양식이다.

두 양식은 서로 다르면서도 자연 연구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은 바로크 양식의 특징인 역동적인 구성, 극적인 조명, 생생한 색상의 사용 및 강렬한 감정 표현으로 이어졌다. 이 전시실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로마, 피렌체, 볼로냐Bologna, 나폴리Napoli, 제노바Genoa에 있는 부유한 후원자들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의뢰되었다. 한편, 이탈리아의 바로크 회화가 있는 이 전시실은 미술관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기도 하다.

현대미술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그림의 색채, 색조, 질감 등에 관심을 둔 미술 사조로, 1860년대 파리에서 시작했다. 인상주의를 추구하는 화가들을 인상파라고 하는데, 이들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과 색채의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En plein-air. 그 당시 개발된 작은 휴대용 캔버스와 미리 혼합된 물감 튜브는 이들의 야외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클로드 모네 (1840-1926)
Water-Lilies, Claude Monet, after 1916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는 그림뿐 아니라 정원을 가꾸는 데에도 열정적이었다. 그는 1883년에 지베르니Giverny로 이사하여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는데, 위의 그림 <수련Water-Lilies>은 이때 가꾸었던 수련 연못을 주제로 그린 연작 중의 하나다.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 저하를 겪으면서도 수련 그림에 열정을 쏟는데, 모네가 남긴 전체 유화 2천여 점 중 수련을 주제로 한 것이 250점이란 점을 보아도 모네가 그의 정원과 수련 연못에 얼마나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수련 작품은 물에서 반사되는 빛이 수련과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41-1919)
The Umbrellas, Pierre-Auguste Renoir, about 1881-6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우산The Umbrellas>은 바쁜 파리 거리 속의 6명의 주요 인물들 사이로 관람객을 불러들인다. 그들 뒤에서 서성이는 군중은 그 너머의 대로를 거의 완전히 가린다. 그림의 위쪽 4분의 1은 최소 12개의 우산으로 채워져 있다.

이 그림은 4년의 간격을 두고 두 단계에 걸쳐 그려졌는데, 이는 1880년대 르누아르가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고전 미술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과정에서 나타난 화풍의 변화를 보여준다. 먼저 완성된 오른쪽 부분을 보면 어머니와 두 딸, 그리고 가운데에 옆으로 서 있는 여성의 모습에서 풍부한 색감과 붓의 질감이 특징적인 인상파 특유의 화풍이 잘 드러난다. 반면에, 두 번째 단계에서 완성된 그림의 왼쪽 부분을 보면 르누아르가 보다 선형적인 스타일을 채택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왼쪽의 젊은 여성과 그녀 뒤에 서 있는 남성은 그 윤곽이 명확하고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후기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라는 말 자체는 영국의 미술 비평가 로저 프라이Roger Fry가 1910년 <마네와 탈인상주의Manet and Post-Impressionism>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사용한 데서 비롯됐다. 후기 인상파 화가에 속하는 폴 세잔Paul Cézanne,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폴 고갱Paul Gauguin,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는 서로 작품 자체의 유사점은 없으나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컨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 사물의 정확한 모습을 기록하는 데 관심이 적었다는 사실은 인상파 화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Sunflowers, Vincent van Gogh, 1888

고흐는 친구이자 동료 예술가인 고갱이 아를Arles에 있는 자신의 집을 방문하기에 앞서 집을 꾸밀 목적으로 이 그림 <해바라기Sunflowers>를 그렸다. 오늘날 이 그림은 반 고흐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마치며

내셔널 갤러리를 돌아본 뒤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 미술관은 절대 하루 만에 돌아보고 말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런던에 있는 동안 틈틈이 찾아올 생각이다. 이번에는 주로 그 그림이 그려진 시대적 배경과 화가를 알아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다음부터는 그림 자체를 감상하는 데 시간을 더 써볼 참이다.

나 나름대로는 내셔널 갤러리에 관하여 공부하며 정리한다고 했지만, 앞서도 밝혔듯 내가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에 내 글에는 분명 미흡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미술 전공자나 혹은 비전공자라도 위의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을 발견한다면 언제든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는 언제든 환영이니까.

다음 계획

얼마 전 사우스켄싱턴South Kensington 쪽에 갔을 때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을 눈으로만 보고 지나친 적이 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그곳을 찾을 생각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중세부터 근대에 걸친 유럽 미술을 중심으로 동양 미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장식미술 공예 분야에서는 세계적 규모와 내용을 자랑하는’ 박물관이라고 나와 있는데, 과연 어느 정도일지 짐짓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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