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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유명한 식당 가운데 ‘3대째 내려오는 비법’ 이나 ‘60년 전통의 맛’과 같은 수식어를 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과 같은 문구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신뢰감을 안겨준다. 가족 외에 남에게 노출할 수 없는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남도 아닌 자기 자식에게 전해주는 지식인데 얼마나 중요한 정수만 뽑아서 전해주겠는가.

부모님이 식당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나는 음식 비법 같은 것을 전수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육에 열의가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그 이상의 소중한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그 가운데 아버지로부터 배운 삶의 지혜들은 이전 글에서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다.

일례로, 아버지가 나와 길을 걷다가 노숙자들이 헌혈한 후 얻은 빵과 우유로 허기를 때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일이다. 그들을 불쌍하게 쳐다보는 나에게, 아버지는 ‘그들이 나눈 피로 내가 위급할 때 생명을 구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또 언젠가는 아버지가 산책을 하다가 누군가의 사유지 팻말이 붙은 땅에서 돌맹이 하나를 집어들면서 “이 곳의 주인이 이 돌맹이를 한 번이라도 만져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내게 던진 적도 있다. 그 질문을 통해 ‘소유’란 허무한 것이며 결국 삶은 ‘여정’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 외에도 아직 이 블로그에서 다루지는 않은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가 나와 함께 산을 오르다가 내가 힘들어 멈춰 섰을 때 일이다. 아버지는 산에 놓인 계단들을 가리키며, “지금 그저 산을 오르는 것 만으로도 힘든데 누군가는 다른 이들을 위해 계단을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보이지 않는 서로의 기여와 희생 덕분에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다.

그리고 얼마 전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나와 아내를 닮은 작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아버지가 내게 무엇을 전해주고 싶었는지 조금씩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나 자신의 인간된 존엄성을 지켜가며 살 수 있는 ‘지적 자산’이 바로 아버지가 내게 전해주고 싶던 것들이리라.

나는 그런 배움이 그저 내 기억 안에서 소멸되도록 놔두고 싶지 않다.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이 조그맣고 소중한 아이도 내가 세상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알게 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로부터 얻은 ‘지적 자산’을 토대로, 이후 내가 철이 들고 나서 능동적으로 책을 통해 구한 지식들을 더하여 블로그로 정리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이 블로그는 내 아이에게 전하는 나의 삶의 경험과 배움의 전달체인 것이다.

계속 블로그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이미 이전 글에서 이 블로그의 운영이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 재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그 말도 사실이다. 다만 그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내가 이 사회로부터 혜택을 입고 살아온 사람으로써 해야 할 일을 밝힌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 블로그에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는 바로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 ‘지적 자산’을 모으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크다.

내가 오늘 새삼스럽게 블로그의 운영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한 이유, 그리고 내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경험과 지혜에 대해서 언급한 이유는 오늘 소개할 책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원제 : 30 Lessions for Living | 칼 필레머 지음 | 박여진 옮김 | 토네이도 | 2012년 05월 12일 출간>이 바로 나의 그러한 의지와 같은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칼 필레머Karl A. Pillemer는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 교수로 인간생태학 분야 전문가이다. 저자는 ‘코넬 대학교 인류 유산 프로젝트Cornell Legacy Project’라는 이름 아래 5년여에 걸쳐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정리한 결과물로 이 책을 썼다. 말하자면 이 책은 1인당 평균 80년씩 총 8만 년의 인생 경험의 집대성이다.

내가_알고_있는걸_당신도_알게_된다면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인들도 나름의 삶을 통해 경험을 쌓아온 인생의 현자로 본다. 따라서,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삶의 지혜들은 어찌 보면 평범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기나 물과 같이 가장 소중한 것은 사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평범함의 가치를 굳이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책의 내용은 원제 ‘30 Lessons for Living’에서 볼 수 있듯이 총 30가지의 삶의 교훈을 담고 있다. 이 교훈들은 크게 4가지의 큰 범주의 이야기로 나뉜다. 결혼, 직업, 양육, 노후가 그것이다. 이 4가지 기준에 따라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에 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첫째, 저자가 만난 노인들은 우선 결혼에 대한 자신의 인생 경험을 전한다. 그들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자와 가치관이 맞는지 여부라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검소한 삶을 지향하고 대화와 지식에 가치를 두는 아내와 나는 가치관이 일치한다. 이 부분에서 정말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화려하고 외향적인 삶의 방식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낭비적이고 기만적인 삶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지언정 화려하고 외향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각자의 개성이다. 우리 부부가 수수하고 내면에 충실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지 않은 삶의 가치관도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저자가 만난 노인들은 직업의 선택에 대하여 조언한다. 그들은 직업을 바라보는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라고 강조한다. 정직하게 일해서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다만, 혹시라도 최선을 다했음에도 적성에 맞지 않을 경우 과감하게 다른 일을 찾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다. 급여나 사회적 인식보다 ‘본인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직업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단 한번 사는 인생, 후회 없도록 살자는 말이다.

셋째, 노인들은 자녀 양육에 있어서 중요한 조언을 한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기 보다는 일상 생활에서 평범한 시간을 많이 나누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비싼 물건을 사주고 좋은 곳에 데려가는 것보다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 내 아이도 자라게 되며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것인데, 이 점에서 나는 한 가지 다짐을 추가하고 싶다. 카메라를 통해서 아이들을 촬영하는데 몰두하기 보다는 그 카메라를 내려 놓고 직접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훗날 화면으로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 카메라를 드는 동안, 지금 바로 눈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은 자신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솔직한 감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들은 나이듦을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은 그저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점을 일깨우며, 젊을 때부터 건강 관리에 신경을 쓰도록 당부한다.

특히, 후회 없는 삶에 대해서 거듭 강조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노년에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남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남을 속이거나 요령을 피우는 것에 익숙한 삶은 그 순간은 쉽게 쉽게 넘어가는 것 같지만, 결국 후회를 남긴다는 말이다.

저자가 만난 노인들과의 대화에서 주된 관심사이자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 조언의 주제였던 결혼, 직업, 양육, 노후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노인들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원칙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바로 그대로 남을 대우하라’는 황금률이다. 실로 중요한 말임에도 자신있게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나 자신의 모습에 반성하게 된다.

저자가 다룬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노인들로부터 온 이야기들이라는 것에 신선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다.

꼬장꼬장한 사고방식을 가진 노인들의 말을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생전 처음 본 젊은이, 심지어는 초기 임산부일 수 있는 젊은 여성에게 “어디 어른이 앞에 서있는데 멀뚱히 앉아 있냐!”며 자기가 앉겠다고 일어서라며 호통치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나이 값을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또한 권위에 기대는 이들이 실제로는 훅 불면 날아가는 허수아비와 다름 없다는 것이 내 평소 주관이기도 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처럼, 엉망으로 살아온 노인들 때문에 그 외의 점잖고 지혜로운 노인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주변에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이 연장자임에도 먼저 귀를 기울이고 대화로 일을 풀어가려는 노인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 세상을 더 멀리 보고자 어깨 위에 올라서고자 했던 바로 그 ‘거인’과 같은 이들이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삶의 기초를 다지는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 그리고 이제는 가치 있는 책들을 읽어가며 저자들과 간접적인 만남을 통해 내 삶을 위한 지적 자산을 늘리고 있다. 수많은 노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의 경험을 집약한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도 그런 지적 자산의 한 칸을 차지할 좋은 책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큰 목표가 있다. 나는 내가 얻은 이 지적 자산들을 최선을 다하여 내 아이에게 전하려고 한다. 나로 인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 아직까지 배고프면 울고 기분 좋으면 웃는 이 작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 이 아이가 삶의 순간 순간에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을 마주할 때마다 참고할 수 있는 무언가를 손수 만들어주고 싶다.

훗날 아이가 성장하며 자신만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혼자 있고 싶거나 나와 거리를 두고 싶을 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는 내게 허락된 삶의 시간이 끝날 것이고 그것은 아마도 아이의 삶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지적 자산을 지워지지 않는 형태로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 블로그를 방문하면 내가 자신을 위해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해 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은 내 방식의 아이 미래에 대한 준비다. 그렇게 나는 내가 낳은 아이의 인생이 물질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지적인 부분도 풍요로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꾸역꾸역 매주 책을 읽고 글을 올리는 진짜 이유이며 원동력이다. 그렇다. 나는 이 블로그를 통해서 내 아이를 위한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의 3개의 댓글

  1. 공통된 가치관을 갖고 살 수 있음은 축복입니다. 건강한 부부의 사랑만이 자녀를 행복하게 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2.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였는데….좀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다시 읽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혹을 앞두고 보니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느 하루의 웃는 얼굴로 아침인사, 잘 자라라는 가벼운 포옹…이런 것들이 아이들 맘에 내 사랑이 전달되리라 착각하면 살고 있어요.

    그럼 좋은 하루되시길….

  3. 저와 참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신다고 여겼습니다. 이 글 뿐만아니라, 앞서 기록하신 많은 분량의 글들도 같은 맥락이라 여겨지기도 하네요. 오랜 독서의 결과로 님의 긴 호흡과 사고의 깊이는 충분히 타인의 모범이 된다고 여겨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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