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글루텐은 정말로 몸에 나쁠까?

밀가루 음식은 맛있다. 우리 주위에 빵이나 면 요리를 살찔까 봐 피하는 건 모를까 맛없다고 싫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한편으로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오늘 알아보려고 하는 글루텐gluten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다.

글루텐을 기피하는 사람들

언제부터인가 ‘글루텐 프리gluten free’ 즉 글루텐이 들어있지 않다고 내세우는 음식들이 부쩍 눈에 많이 띈다. 글루텐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처럼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되어버렸을까. 그리고 정말로 글루텐은 우리 몸에 나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우선 글루텐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글루텐이란?

글루텐은 밀이나 보리 같은 곡물에 존재하는 글루테닌glutenin과 글리아딘gliadin이라는 단백질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화합물이다.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을 하면 글루테닌과 글라이딘의 결합을 촉진할 수 있다. 그리고 글루텐은 불용성, 다시 말해 물에 녹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이는 밀가루 덩어리에 점성과 탄성을 부여한다. 그 덕분에 글루텐은 효모가 만들어낸 이산화탄소를 잡아두어 빵이 부풀어 오를 수 있도록 하고, 우동 면발 특유의 통통하고 쫄깃쫄깃한 식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글루텐이 정말 해로울까?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언제부터인가 글루텐이 건강을 해치는 유해물질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TV에 나와서 글루텐을 섭취하면 무시무시한 병에 걸릴 것처럼 겁을 준다. 그러면서 글루텐이 없는 ‘글루텐 프리’ 식품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들의 말처럼 글루텐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까.

셀리악 병, 글루텐 괴담의 시작

실제로 글루텐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셀리악 병Celiac disease이다. 글루텐이 체내에서 면역반응을 일으켜서 소장의 융모를 손상시키는 질병이다. 융모가 망가지면 영양분의 흡수에 지장이 생겨서 영양실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주요 증상은 설사나 복부 팽만감 등의 소화기능 장애로 나타나며, 유아의 경우 성장 장애나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병도 그렇지만, 셀리악 병도 방치하면 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속된 영양 결핍은 골다공증, 빈혈, 불임, 신경병증, 발작 등의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이 병의 환자들은 다른 자가면역 질환이나 소장의 비호지킨성 림프종과 같은 악성 종양에 걸릴 위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셀리악병이 의심된다면 바로 병원에 가서 항체 검사와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셀리악 병은 사람에 따라 증세가 다양하고, 보통은 원인이 된 음식의 섭취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증세가 호전된다. 또한, 밀가루 음식을 먹고 소화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밀도가 높은 밀가루 음식 자체의 특성에서 오는 것일 때도 많다.

그리고 이 셀리악 병에 관한 중요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셀리악 병은 서구에서는 인구의 5% 내외의 유병률을 보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대단히 드문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보고된 것도 단 한 명뿐이라고 한다.

글루텐 프리 식품의 효용성

물론, 셀리악 병 환자처럼 글루텐 프리 식품이 꼭 필요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셀리악 병의 유병률이 극히 드문 우리나라에서 평상시에 모든 이들이 글루텐 프리 식품을 고집하는 게 옳은지는 의문이다. 만약 밀가루 음식을 먹고 나면 유달리 속이 불편하고 심한 설사를 한다면 병원을 찾아서 혹시 셀리악 병 등의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글루텐 관련 장애가 있다고 진단이 돼서 치료를 시작한다면 그때 글루텐 프리 식품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글루텐 프리’가 건강식품의 한 종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의 과도한 섭취가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밀가루의 과다한 섭취가 문제라면 밀가루 섭취 자체를 줄이면 될 일이다. 심지어 글루텐 프리라고 해도 글루텐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거의 없는 것일 뿐이다. 굳이 가격도 비싼 ‘글루텐 프리’ 음식을 건강식품처럼 찾아다닐 필요는 없는 이유다. 오히려 그로 인해 식단의 불균형을 유발할 위험도 있다.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은?

사실 미디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음식에 대한 인식에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그중에는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도 많다. 예컨대 MSG가 실제로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건 이제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글루텐도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피해야 하는 독성 물질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단 한 명이 보고된 것이 전부인 셀리악 병,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과도한 우려 때문에 글루텐 프리 음식만 고집하는 게 현명한 일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제 미디어가 만든 글루텐의 괴담으로부터 자유free로워진, 진정한 글루텐 프리의 삶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