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카드는 1887년에 에드워드 벨러미Edward Bellamy가 발표한 미국 최초의 SF 소설 『뒤돌아보며Looking Backward』에 처음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하지만 실제로 신용카드가 상용화된 것은 1951년 미국 뉴욕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Frank McNamara가 식당에서 현금이 없어 곤란을 겪은 경험을 살려 설립한 ‘다이너스 클럽 카드Diners Club Card‘부터다.
이후 6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신용카드 뿐 아니라 셀 수 없이 다양한 가상화폐가 등장했다. 덕분에 오늘날에는 현금을 쓸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무거운 동전은 점차 그 쓰임새가 줄어들어 평소에 가지고 다닐 일이 거의 없다.
나는 이런 변화의 흐름을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장 입구로 들어갈 때 실감한다. 쇼핑카트를 가져가기 위해서 100원짜리 동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방식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쇼핑카트를 가져가려면 손잡이에 마련된 동전 삽입구에 100원짜리 동전을 밀어넣어야 한다. 그러면 찰칵 소리를 내며 앞의 쇼핑카트와 연결된 쇠사슬이 분리된다.
왜 쇼핑카트를 빌리는데 동전이 필요하게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집에 돌아갈 때 알게 된다. 쇼핑카트가 모여있는 자리에 되돌려 놓고 다시 자물쇠를 잠그면, 처음에 넣었던 그 동전이 다시 튀어나온다. 손님이 집에 갈 때 동전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 쇼핑카트를 한 곳에 모아놓고 가게 하려는 거다.
그런데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이게 과연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일까. 당신은 마트에 손님으로 오지 않았는가. 마트가 직원을 고용해서 해야 할 일을 왜 당신이 하는가. 그러면서 당신은 귀중한 시간 1~2분을 낭비한다. 혹시 같이 온 가족이 자동차 시동이라도 켜고 있다면 그만큼 연료도 낭비해야 한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이 1807년에 발표한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의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익숙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제대로 인식된 것은 아니다. 애초에 동전식 자물쇠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쇼핑카트를 옮기는 건 당신이 하지 않았을 일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마트는 당신의 100원짜리 동전을 볼모로 잡고 그들의 직원에게 시켜야 할 일을 당신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마트는 쇼핑카트 정리에 따르는 직원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아무 대가도 없이 하는 일을 다른 말로 ‘그림자 노동’이라고 한다. 그림자 노동은 원래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Ivan Illich가 1981년 자신의 저서 『그림자 노동 원제 : Shadow Work | 이반 일리치 지음 | 노승영 옮김 | 사월의책 | 2015년 12월 01일 출간』에서 주창한 개념이다. 그가 말하는 그림자 노동이란 임금에 기초한 경제에서 집안일처럼 보수를 받지 않고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켰다.
한편, 『그림자 노동의 역습 원제 : Shadow Work | 크레이그 램버트 지음 |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10월 21일 출간』에서 저자 크레이그 램버트Craig Lambert는 다른 측면에서 그림자 노동을 살펴본다. 그는 ‘셀프 서비스’처럼,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가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노동을 그림자 노동으로 정의한다. 이반 일리치가 경제적 수치에 잡히지 않는 집안일로서 그림자 노동을 보았다면, 크레이그 램버트는 기업이 그림자 노동으로 직원과 소비자를 착취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원래는 기업이 직원을 고용해서 임금을 주고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소비자에게 ‘셀프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아무 보상없이 떠넘겨진다. 이 단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기업은 직원을 줄일 수 있겠다는 판단에 이른다. 그 결과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비전문가다.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수준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 결국 나머지 일은 직장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몰리게 된다. 경영자들은 소비자도 공짜로 일하는 마당에, 돈받고 일하는 직원의 일이 조금 더 늘었다고 하여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는 곧 남아있는 직원이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소비자의 그림자 노동’이 ‘고용 감소’를 거쳐 ‘해고에서 살아남은 직원의 그림자 노동’으로 이어지는 원리다.
가까스로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앞서 냉혹하게 쫓겨난 이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자신들은 그나마 일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며, 시간이 갈수록 일이 늘어나도 참고 꾸역꾸역 해낸다.

그 결과를 보자. 누군가는 일자리가 없어서 곤궁한 상황에 처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일이 너무 많아 숨이 막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무심코 가담한 그림자 노동이 초래한 결과다. 물론 당신이 의도한 바는 아니다. 기업이 의도한 바다.
지금까지 그림자 노동을 조장하는 주체로 기업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그림자 노동은 세상 곳곳에서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당신도 얼마든지 예상치 못한 그림자 노동에 휘말릴 수 있다.
몇 해가 넘도록 졸업은 도와주지 않고 대학원생을 몸종처럼 부려먹는 지도교수, 입사 지원자를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꼬드기며 낮은 임금의 인턴 자리를 선심쓰듯 제시하는 경영진, 남의 집 귀한 자식에게는 열정페이를 외치며 본인 자식은 해외 유학 보내는 사장, 처음에는 탄탄한 노후대비가 될 것 처럼 말하지만 정작 개업하면 운영비도 건지기 버거운 치킨집 프랜차이즈.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청년의 알바비를 십일조로 털어가는 대형 교회 목사들.
남을 공짜로 부려먹기 위해 아무 거리낌 없이 남발되는 거짓 약속과 가증스런 자기 포장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누가 당신에게 그림자 노동을 시키는지 가늠할 수 있다면 적잖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기 내가 그 간의 경험에 비추어 정리한 ‘그림자 노동의 3가지 공통점’이 있다. 당신이 그림자 노동을 피해가는 데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란 당신에게 그림자 노동을 제시하는 누군가를 말한다.
첫째, ‘그들’은 당신이 마치 큰 혜택을 볼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그들’이다.
둘째, ‘그들’은 당신을 정신없이 바쁘게 만든다. 당신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셋째, ‘그들’은 당신이 선택하게 만든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포장만 당신의 선택일 뿐 내용물은 ‘그들’의 의도를 따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당신의 시간을 쓴 결과가 그림자 노동은 아닌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계산기라는 표현이 너무 각박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당신에게 공짜로 일을 넘기는 이들은 당신의 그런 허술한 마음을 파고든다.
이 사회의 가장 부조리한 일들 위로 그림자 노동이 드리워져 있다.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그림자 노동에 단 한 번뿐인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보자. 내가 제시한 ‘그림자 노동의 3가지 공통점’를 참고삼아 그림자 노동의 지뢰밭을 요령있게 피해가길 바란다.
아버지는 종종 내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준다. 그 중에는 건질 만한 것도 꽤 있는데 “절대로 ‘을’이 되지 마라.”도 그 중 하나다. 그 말을 하면서 아버지가 내게 해주신 이야기는 이렇다.
“네 능력이 100이라고 할 때, 절대로 120을 누리며 살려고 하지 마라. 그러면 나머지 20을 채워줄 것처럼 다가오는 누군가 때문에 ‘을’이 되어 살아야 한다.”
당신도 ‘을’이 되고 싶지 않다면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말이다. 이어서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갑’이 되어서 살 수 있는지도 귀뜸해 주셨다.
“만약 너가 100의 능력을 갖고 있다면 80만 누리며 살려고 마음 먹어라. 남에게 남는 20을 나눠주면 ‘갑’이 되어 살 수 있다.”
난 아직 ‘갑’도 아니고 딱히 그럴 만한 조짐도 보이지 않지만,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한건지는 이해한다. 욕심을 버리고 베풀라는 말이다.
욕심은 당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욕심낸다고 다 가질 수 있는게 아니다. 오히려 약점만 드러낸다. 누군가는 그런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가 작은 미끼를 툭 던져준다. 그 미끼를 덥썩 문 당신은 머잖아 그 미끼를 놓지 못해서 그림자 노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림자 노동은 한 마디로, ‘갑’의 자격을 갖고도 작은 이득에 사로잡혀 자발으로 ‘을’이 되는 것이다. 마치 마트에 손님으로 와서 100원짜리 동전을 되돌려 받으려고 직원처럼 쇼핑카트 보관할 곳을 찾는 이들처럼 말이다.
사실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빌리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마트에 장보러 가서 그럴 수도 있는 거다. 다만 쇼핑카트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밀게 아니라, 그 경험을 ‘우리 삶 속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든 더 큰 그림자 노동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가장 조심할 것은 당신에게 큰 혜택을 줄 것 처럼 시건방 떠는 ‘그들’이다. 당신의 욕망을 읽는 ‘그들’, 실제로는 ‘을’이면서 당신 앞에서 ‘갑’인양 행세하는 ‘그들’을 조심하라. ‘그들’만 멀리하면 치명적인 그림자 노동에 엮이지 않는 데 절반은 성공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정말 진리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항상 하는 일들에도 그림자 노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직장생활하며 회사에 조직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하는 일. 행동이 말이죠….
매순간 따지며 상순 없겠지만 누군가가 판을 짜놓은 세상에서 노예처럼 살것인지?생각하게 하는군요!!
아들과도 이런 얘기도 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문득 “쿼바디스” 영화
그 영화가 끝나며 자막이 되어 오르는
마지막 대사가 떠 올랐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Domine, Quo Vadis ; 주여 ! 어디로 가시나이까)”
얻을 만큼 얻으시고,
넓힐 만큼 넓히신 대형교회의 자칭, “주의 종” 님들~
순한 당신의 어린 양을 위해
행함이 있는 믿음의 교회이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원감축의 또 다른이름이네요
그림자노동~
마트갈때마다 조금 걸어 100원을 다시찾느냐
아님 100원을 버리느냐의 고민을 하게한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책을 넘어 사고의 전환
더 큰 그림을 볼수있게 해주는
신승건의 서재♡
감사드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