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 시절 일기를 썼었다. 학교 숙제는 아니었고 부모님이 시킨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냥 쓰고 싶어서 썼었다. 일기장에는 조그만 자물쇠가 달려있었는데 손톱깎이로도 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무척 허술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자물쇠 덕분에 일기장에 쓴 글은 나만 읽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아주 가끔 그 일기장을 열어본다.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그때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어휘나 문장 구성은 서툴기 짝이 없지만, 그때의 감정과 정서가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그것은 아마도 나만 볼 글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솔직한 생각들을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이 블로그의 글들은 누군가에게 읽힐 것을 전제로 쓰인다. 여기에 쓴 글은 인터넷 주소가 부여되고 이메일로 배포되며 SNS로 공유된다. 그래서일까. 글을 쓰면서 ‘이런 글을 쓰면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리고 어느새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써도 될 글’을 타이핑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공감이란 게 뭐 별건가. 내 생각을 남이 동의하고 지지해준다면 그게 곧 공감이다. 그리고 공감은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남이 내 생각에 맞장구쳐주는 걸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사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유도 공감 가는 글을 써서 행복감을 얻으려는 거 아닌가. 문제는 그런 호응이 일으키는 도파민 폭발에 나의 두뇌가 길들어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그저 어떻게 하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쓸지만 주야장천 고민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감을 쫓으며 블로그를 운영한 지 어언 7년째에 접어드니 이제는 회의감이 좀 든다. ‘남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내가 그들이 원하는 존재인 척 글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이란 게 생각을 담는 그릇일 텐데, 그 알맹이가 내 것이 아니라면 글을 쓰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내 글이 싫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더는 내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의 취향까지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의 만족이 내가 보람을 느끼는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첩 속의 가장 자연스러운 사진은 자신이 피사체인 걸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찍힌 사진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읽는다는 걸 의식하지 않을 때, 마치 그 시절 자물쇠 달린 일기장에 썼던 일기처럼, 가장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 글은 독자들의 공감도 얻게 될 것이다. 이제 비로소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공감 가는 글쓰기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