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고혈압에 관한 의외의 잘못된 상식들

우리 심장은 평생 동안 쉬지 않고 뛰면서 온몸으로 피를 보낸다. 이때 혈관이 받는 압력은 너무 높아도 안 되고 너무 낮아도 안 된다. 그럼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의 적정 수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까?

심장이 피를 힘껏 짜낼 때의 압력인 수축기 혈압, 이어서 심장이 피를 모을 때의 압력인 이완기 혈압이 그 기준이다. 수축기 혈압 120mmHg, 이완기 혈압 80mmHg, 간단하게 120/80을 정상의 기준으로 본다. 그런데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혈압이 항상 120/80을 유지할 수는 없다. 하루 중에도 어느 정도 오르내림이 있다. 문제는 너무 높은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 즉 고혈압이다.

고혈압은 수축기 혈압 140mmHg, 이완기 혈압 90mmHg, 간단히 140/90 이상으로 높아진 상태로 정의한다. 물론, 한 번 혈압을 쟀더니 높게 나왔다고 고혈압으로 진단하지는 않는다. 안정된 상태인데도 지속적으로 높게 나오면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고혈압은 대부분 그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본태성 질환으로, 유전적 요인과 함께 흡연, 비만, 스트레스, 고령 등이 발병의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고혈압학회에서는 ‘세계 고혈압의 날’을 맞아 국내 고혈압 현황에 관한 통계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 성인의 27.7%가 고혈압 환자라고 하는데, 지난 14년간 무려 1.94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환자 수는 늘어난 반면, 혈압약 투약을 통해 제대로 관리 중인 환자는 60.4%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늘은 흔히 사실처럼 알려진 고혈압에 관한 상식 가운데 잘못된 것을 짚어보고 바로잡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고혈압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10명 중 4명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혈압 관리와 혈압약 투약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혈압이 높아도 증상이 없으면 괜찮다?

흔히 고혈압이라고 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목에 핏대가 서면서 목덜미를 잡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고혈압 환자들은 평상시에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혈압 진단도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진료 현장에 있다 보면, 30~40대의 비교적 젊은 연령층에서 고혈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낄 때가 많다. 한창 사회 활동을 하는 연령층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술, 담배, 스트레스 등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면서도 고혈압에 대해 방심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혈압 수치가 140/90을 넘는데도 별다른 증상이 없다며 그냥 지내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증상이 없다고 정말로 괜찮은 게 아니다. 고혈압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에 따라오는 합병증 때문이다. 증상이 없다고 고혈압을 그대로 방치하면 심부전증, 심근경색증, 만성신부전증, 뇌졸중, 시력 소실, 실명 등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혈압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혈압은 반드시 120/80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 인체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혈압이 딱 어떤 범위 안에 고정되어 있을 수 없다. 혈압에 문제가 없는 사람도 계단을 오르거나 뜀박질을 한 뒤에 혈압을 재면 일시적으로 높게 나온다. 그래서 혈압 측정은 긴장을 풀고 안정된 상태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두고 두 차례 이상 측정한 결과를 참조해야 한다.

만약 혈압이 계속 120/80을 넘긴 하지만 140/90 미만에 머물러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20/80을 넘었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을 ‘고혈압 전 단계’라고 하는데, ‘아, 앞으로 좀 더 혈압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구나.’하는 정도로 생각하면서 혈압 관리에 신경 쓰면 된다. 오히려 120/80이라는 기준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게 또 다른 혈압 상승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위험하다?

고혈압 못지않게 저혈압을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저혈압은 수축기 혈압이 90mmHg, 이완기 혈압이 60mmHg 이하인 경우를 말한다. 그동안 의학계에서는 정상 혈압을 기준으로 혈압이 너무 낮으면 주요 장기에 혈액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위험하다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근래에는 저혈압에 대해 너무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심지어 한 연구에 따르면 수축기 혈압 90~99mmHg, 이완기 혈압 40~49mmHg일 때가 정상 혈압인 수축기 혈압 120mmHg, 이완기 혈압 80mmHg일 때보다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다만 고혈압 약을 먹고 있는데 자주 어지럽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불편한 증상이 있고 혈압을 재봤더니 낮게 측정된다면 의사와 상의하여 혈압약의 복용량을 조절해 볼 수 있다.

고혈압 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더라도, 체중 감량과 식이 습관 조절로 위험 요인을 제거하면 의사와 진료를 통해 혈압약의 복용량을 점진적으로 감량할 수 있다. 그러다가 궁극적으로는 혈압약을 중단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혈압약을 중단한 이후에는 가정용 혈압계를 이용한 지속적인 혈압 측정이 이어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혈압약 복용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혈압은 평생 동안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다. 혈압약도 그 관리 방법의 하나로 여기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혈압이 정상이면 약을 끊어도 된다?

고혈압을 잘 관리하면 언젠가 약을 끊을 수도 있다는 말이 큰 희망으로 다가오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집에서 혈압을 쟀을 때 계속 정상이면 그때부터는 그만 먹어도 되는 걸까?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복용량 조절과 중단 여부는 철저하게 의사의 진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환자가 임의로 약을 끊고 진료실에 와서 아무 말도 안 한다면, 의사는 높은 혈압 수치를 보고 복용량을 늘릴지도 모른다. 그 반대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환자에게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병원에 가는 것은 의사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다. 의사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누구보다 환자 자신을 위한 일인 이유다.

혈압약 때문에 장기 손상이 올 수 있다?

혈압약을 오랫동안 먹으면 장기 손상이 생길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사실 세상에 부작용의 위험성이 없는 약은 없다. 다만 그 약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부작용의 위험을 크게 넘어서기 때문에 복용하는 것이다. 혈압약도 마찬가지다. 아주 드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복용하는 쪽이 더 이롭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장기 손상이라는 점에서 보면 혈압약을 복용해야 할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 혈압약을 복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심장, 뇌, 신장 등을 비롯한 주요 장기에 가해지는 과도한 혈압을 조절하여 합병증을 막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혈압약을 복용하여 혈압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장기 손상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고혈압 관리를 위해 반드시 기억할 점

오늘은 고혈압에 관해 잘못 알려진 상식들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혈압 조절과 혈압약 복용과 관련한 오해를 중심으로 다루어 보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고혈압 관리를 위해 중요한 세 가지 사항을 짚어보자.

  • 첫째, 고혈압의 발병 연령이 낮아지고 있으니 젊은 나이라도 주기적인 혈압 측정을 통해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한다. 혈압을 측정할 때는 하루 중 같은 시간에 충분한 안정을 취한 뒤에 측정해야 추이를 확인하기 쉽다.
  • 둘째, 체중 조절과 함께 금연, 절주를 실천하고 음식은 짜지 않게 먹는다.
  • 셋째,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절대 임의로 중단하지 않는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의사와 먼저 상담하도록 한다.

아무쪼록 오늘 글이 고혈압 관리에 관한 오해를 해소하고 올바른 정보가 자리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혈압에 관한 의외의 잘못된 상식들”의 4개의 댓글

    1. 경험담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고혈압으로 걱정하는 독자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관리하셔서 건강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1. 임신 중에 고혈압이었다 출산 후 정상이 되었으나 40대 중반 어느 날 심한 두통으로 찾은 병원에서 고혈압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주변엔 고혈압인 지인이 없어 오로지 의사 선생님 말씀에 의존, 약을 먹기 시작했지요….약 복용 일주일 만에 쓰러졌고 응급실에 실려 가 또 한번 실신을 했는데 그 땐 기립성 저혈압이라고…이후 외래 진료로 최종 고혈압 진단을 받아 지금까지 약을 복용 중입니다. 복용한 지 10년 지난 어느 날 혈압이 잘 잡힌다며 약을 줄여 보자는 다른 선생님 제안으로 약을 반으로 줄여 복용 하면서 아직까지 혈압은 정상수치를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고혈압 증상에 대해 즉각적 처방 보다 식이요법, 운동, 체중감량 등을 제안, 시간을 둔 혈압측정 등으로 혈압에 접근하는 것 같아서 바람직해 보입니다. 저는 너무 일찍부터 약에만 의존하게 된 것 같아 그부분이 많이 아쉬웠어요…

    1. 갑작스러운 고혈압 진단으로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저도 의사이기 이전에 환자로 살아온 사람이기에, 겪으셨을 상황과 그 순간의 감정에 저 자신의 일처럼 공감이 갑니다. 지나간 일에 너무 미련을 두지 마시고 앞으로 잘 관리하시면서 건강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