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삶의 단계마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마주하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흠모하는 이의 마음을 얻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그 대상은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서로 다를지라도 인생의 각 순간마다 이것만은 꼭 이루어내야겠다는 그런 목표가 한두 개씩은 있다.
그것들이 무엇이건 간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원래는 내 것이 아니었으나 스스로 내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부터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목표가 된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 사실 안타까운 것은 이 목표를 이루고 싶은 마음, 즉 그 목표의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 나머지 결국에는 그 목표가 나의 주인이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우주 만물은 그대로 머무는 것 없이 모두 변한다고 했던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목표를 향한 절실함도 빛이 바랜다. 한때는 결코 내려놓을 수 없던 것도 시간이 흐르고 보면 왜 그렇게 매달렸나 싶어진다. 이거 아니면 죽고 못 살 것 같은 것도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게 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전에는 안 보이던 새로운 길이 열리고 전에는 그 존재조차도 모르던 새로운 사람들이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또 거기에 새롭게 맞추어 살게 된다.
20대 중반을 지나던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의대생에게는 졸업 전후로 두 가지 중요한 목표가 주어진다. 이른바 의사 국가시험 합격과 수련병원 취직이다. 흔히 줄여서 ‘국시’라고도 부르는 의사 국가시험은 의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다. 예과 2년, 본과 4년, 도합 6년 동안의 의과대학 교육 과정에 대한 총정리이자, 의대생에서 의사로 거듭나기 위해 치르는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시에 합격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졸업 후에 일하게 될 병원을 정해야 한다. 각자의 목표와 처지에 맞추어 취직할 직장을 고르는 모습은 다른 전공 졸업반 대학생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그 직장이 병원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수련병원에서 일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수련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쳐야 특정과의 전문의가 될 수 있다.
물론, 다른 학부의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의대생들도 졸업 후에 모두 같은 길을 가지는 않는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밝혔듯, 나는 졸업 후 1년 동안 유유자적하는 시기를 보냈다.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쉼 없이 달려온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 숨 고르기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1년의 휴식기를 뒤로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의과대학 졸업생 무리에 섞여서 내가 일하게 될 병원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중요한 결정을 한 뒤였다. 적어도 어느 병원에 지원할지는 오래전부터 마음을 정해두었던 터다. 내가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평생을 환자로 드나들었던 병원, 정문을 나서면 대학로가 있는 바로 그 병원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오래된 꿈이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훗날 의사가 된다면 그 병원에서 나를 치료해 준 의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해보고 싶었다. 나의 모습을 보고 나처럼 아팠던 아이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나를 대단하다고 평가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내심 기대되었다. 이런저런 심정이 한데 섞여서 어느새 그 병원은 내가 의사가 되면 반드시 일하고 싶은, 아니 일해야 하는 병원이 되었다.
그 무렵, 그 병원 사람들이 나의 모교에 채용 설명회를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른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루고, 채용 설명회 날짜에 맞추어 졸업 이후 1년 만에 다시 모교를 찾았다. 졸업 후의 모교는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겨우 1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드나들던 곳인데도, 다시 찾은 강의실 문의 낯선 느낌은 내가 과연 이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될지 망설이게 했다.
잠시 주춤하다가 조심스레 문을 밀고 들어가 강의실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몇 명이 더 들어와서 비어있는 자리를 채웠다. 잠시 후 예정된 시각이 되었다. 사회자는 간단한 병원 소개를 한 후, 고개를 돌려서 강의실을 찾은 그 병원의 교육수련부장을 단상 위로 불러 세웠다. 교육수련부장은 수련병원 내 인턴, 레지던트들의 채용과 수련에 관련된 업무를 총책임지는 자리다. 수련병원 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주 중요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병원의 주요 간부 의사가 이제 막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을 채용하겠다고 다른 대학교 강의실에 나타났다. 비유하자면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의 주요 임원이 일개 대학교에서 열린 신입 직원 채용 설명회의 마이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전공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이쪽 업계에서 보통 그런 궂은일은 그 의과대학 출신의 인턴이나 레지던트 아랫년차에게 맡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실 그 병원은 그런 홍보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신규 의사들이 지원하려고 줄을 선 병원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육수련부장이 채용 설명회에 직접 나섰다는 것은 실로 파격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연단에 오른 그 교육수련부장의 낯이 익었다. ‘설마.’ 하며 다시 쳐다봤다. 세상에,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그냥 알고 있던 게 아니라, 내가 본과 3학년 때 그 병원에서 실습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흉부외과 교수였다. 따로 연락할 생각조차 안 하고 채용 설명회를 찾았는데 그사이 교육수련부장이 되어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채용 설명회가 끝났고, 나는 그 교수가 앉아있는 앞자리로 내려가서 악수를 청했다. 나를 본 그 교수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꼭 자기네 병원에 지원하라고 했다. 이게 바로 운명이다 싶었다. 나를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온 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동안 환자의 처지로 드나들던 그 병원에 의사가 되어 돌아가겠다는 꿈,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막연한 꿈이 이제 현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사실 내 학부 시절 성적은 그 병원에 합격하기에는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결과를 장담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원서 접수가 마감된 후 공개된 경쟁률도 예상했던 것보다 높았다. 어쩌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절실했는지 모른다. 원래 손에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것보다도 잡을 듯 말 듯한 것이 더욱 마음을 잡아당기는 법이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이전까지 무언가를 그만큼 강하게 갈구했던 적이 없었다. 밤이 되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마음속에서 혹시라도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어도, 생각이 현실이 될까 봐 애써 좋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시간이 흘러 합격자 발표날이 되었다. 나는 아침 9시부터 병원 홈페이지의 채용 공고 게시판을 열고 기다렸다. 아직 담당자가 컴퓨터를 켜고 있는지 합격자 명단은 올라오지 않았다. 인터넷 새로고침을 누르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10분, 20분, 시간이 흘러도 합격자 명단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서도 합격자 발표는 실수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일 테다. 그래서 몇 번 더 검토하고 있겠거니 했다. 마음속으로는 ‘제발, 제발.’을 되뇌었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 합격자 명단이 올라왔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조회수는 그 사이에 이미 수십 명이 다녀갔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진 것일 테니. 심호흡을 하고 엑셀 파일로 만들어진 합격자 명단을 열어보았다. 응시번호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나의 앞 번호, 그리고 내 번호가 있을 자리, 하지만 나를 건너뛰고 다음 번호로 바로 이어졌다. 그 자리에 내 이름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없었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착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수정된 합격자 명단이 올라올 거라고 생각하고 인터넷 새로고침을 몇 번이고 다시 해봤다. 하지만 그날 오후가 되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나는 탈락했다.
너무 괴로웠다. 너무 괴로워서 며칠간 식사도 못 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정말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로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 병원은 내가 생각한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까지 내가 가고 싶은 단 하나의 길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상황이 꿈이기를 바랬다.
하루 이틀이 흐르고 일주일 이주일이 흘렀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심지어 인터넷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는 것이라고는 조용한 가운데 바르게 앉은 채로 눈을 감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가 꼭 그 병원에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그렇게 마음먹은 것일 뿐이었다. 모든 건 내 마음에 달린 문제였다. 따라서 내가 하지 않겠다고 정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전에는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손에 넣으려던 게 오히려 나를 손에 넣고 흔드는 상황을 비로소 직면하게 되었다. 내가 바라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목표에 내가 휘둘리는 상황이 나의 진짜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집착을 내려놓기로 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긴 시간을 지나온 지금, 다시 그 시절을 되돌아본다. 그 당시 나를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고요한 가운데 스스로를 돌아보았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고요하면서도 깨어있음, 불교에서 이를 두고 ‘적적성성寂寂惺惺‘이라고 부른다는 걸 훗날 알게 되었다.
혜민의 책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혜민 스님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06일 출간』의 제목은 바로 이 ‘적적성성’을 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책에 담긴 짧은 에세이와 조각 글들은 자의식 과잉이 넘쳐나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고요하고 깨어있는 가운데 잠시나마 집착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적적성성’을 실천하는 방안에 대해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사실 이 책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책이지만, 그래도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할 것 같은 미련이 남아 이렇게 또 정리하고 있다. 혜민의 본래 뜻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읽고 넘어가길 바란다.
첫째,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혜민은 책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기 원하는 행복이나 여유, 평화로움은 계속해서 뭔가를 구하는 마음이 쉴 때 비로소 경험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대상들을 계속해서 바꾸어가며 잠시 동안의 마음의 쉼을 얻기 위해 끝없이 분투하기보다는, 마음 자체를 쉬게 만드는 명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며 명상을 제안한다. 이처럼 명상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다가갈 수 있는 ‘적적성성’의 현실적인 실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조용한 가운데 바로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금 자신이 놓여있는 상황과 그 안에서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가만히 바라보자. 그것만으로도 ‘고요하고 밝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둘째,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돌아본다.
혜민은 “지금 하는 일을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할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낀다.”라고 말한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보다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물론 옳은 말이지만, 나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일에는 단순히 ‘남이 시키는 일’ 말고도, ‘남들의 찬사를 기대하며 하는 일’과 ‘본인의 집착 때문에 하는 일’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나의 20대 시절의 모습이 그러했다. 특히 마지막 것과 관련해서, 집착한다고는 스스로 차마 인정할 수 없어서 고상한 목표라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경우마저 있다. 이런 것들은 진정으로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남들로부터 찬사를 기대할 수 없어도, 집착이 아닌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셋째, 포기할 줄 안다.
할 수 없을 때는 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혜민도 “적당한 시점에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지혜입니다. 포기한다고 끝이 아니고 새로운 길이 또 열립니다.”라며 지혜로운 포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맞다. 진정한 용기는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는 것이다. 할 수 없을 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용기 있는 태도이다. 또한 이 용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집착에 사로잡히게 될 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적적성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의 시간 속에서 정신을 깨워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우리 삶의 주도권을 다시 되찾아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혜민도 “행복의 요소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바로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즉, ‘적적성성’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헛된 집착을 버리고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여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중반의 어느 겨울날, 나는 지원했던 병원의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그럭저럭 잘 이어졌다. 오히려 그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다. 요즘엔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어느덧 세상이 나에게도 나름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따금 직장에서 새로운 직원을 뽑는 자리에 면접관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그렇다.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면접이지만 아직 내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게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편안한 역할은 아닐 것 같다.
그들이 이제껏 한 땀 한 땀 살아낸 시간들을 글로 적어낸 이력서를 보고 있자면 내가 뭐라고 감히 이들의 삶을 평가하는 자리에 있는지 자문하기도 한다. 특히, 경쟁이 붙어서 누군가는 떨어져야 할 상황에서 지원자들을 마주해야 할 때는 마음이 영 좋지 못하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 안에서 과거 20대 시절의 나를 발견해서 더욱더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면접장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 그들에게, 특히 불합격이란 결과를 받아들게 될지 모를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다만 혹시라도 내 진심이 전해질 수 있다면 이 말 만은 하고 싶다. 실패해도 된다고. 여기가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잠시 쉬어가며 더 큰 도약을 준비하라고. 머지않아 그때가 올 때까지… 고요하면서도 깨어있기를.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
포기한다고 끝이 아니고 새로운 길이 열리는 다는 말
정말 와닿네요
선생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대한민국은 학창시절부터 순위를 매기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그것은 평생 계속 되었고 아마도 죽음이 그것을 해결해 줄듯 하다.
실패와 실수를 해도 다시 해 볼 수 있고 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번의 실패가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주변 상황과 자신의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
마음 먹기에 달린건데 젊을 때는 쉽지가 않았다.
오히려 삶을 어느정도 살고난후에 실패에 대한 맷집이 생겨났다고 할까.
실패와 시련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격려와 용기를 주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