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두 부호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과 빌 게이츠Bill Gates는 24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깊은 우정을 나눠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1년 한 파티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검소한 생활과 일에 대한 열정 등 공통점을 바탕으로 오래도록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특히 2006년 워렌 버핏이 전재산의 85%에 해당하는 370억 달러를 빌 게이츠가 이끄는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에 기부하기로 한 결정은 이 둘의 우정을 전세계적으로 주목 받게 했다.
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는 자신보다 연장자에 삶의 경험도 많은 워렌 버핏으로부터 경영과 관련한 많은 조언도 받아 왔다고 한다. 2003년 빌 게이츠가 워렌 버핏의 고향인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를 찾아 워렌 버핏의 단골 스테이크하우스에서 20달러도 안되는 가격의 식사를 하면서 스톡옵션에 대한 충고를 들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빌 게이츠가 워렌 버핏으로부터 추천받아 유명해진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책 『경영의 모험 원제 : Business Adventures | 존 브룩스 지음 | 이충호 옮김 | 이동기 감수 | 쌤앤파커스 | 2015년 03월 16일 출간』이 그것이다. 이 책의 소개에는 항상 따라붙는 문구가 있다. ‘워렌 버핏이 빌 게이츠에게 추천한 단 한 권의 책. 그리고 빌 게이츠, 자신이 최고의 경영학 서적이라고 지목한 책’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다. 이 책은 1969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 전에 출간된 후 이미 한 번 절판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한 빌 게이츠에 의해 직접 재출간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런 배경으로 2014년 재출간이 된 이후, 이 책은 유명세를 타고 곧바로 아마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뒤이어 2015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출간되기에 이른다.
이런 책을 누가 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 존 브룩스John Brooks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면, 경영 분야의 저술에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이야 다양한 경영 관련 서적이 널리 읽히고 있지만, 1960년대에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경영이란 생소하기만 한 분야였다. 그런데 저자는 경영이란 분야를 당시의 보통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게 전하려고 노력했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 경영 분야 대중 저술가들의 선구자격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숱하게 많은 경영 교양서 가운데 무엇 때문에 이 책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물론 두 세계적 부호의 선택이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렇다면 두 사람은 무슨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는지 여전히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다소 난해한 번역체로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책 제목처럼 ‘모험’을 하는 기분으로 차근차근 한 장씩 읽어나갔다.
책을 읽으며 느낀 바, 번역투의 문장은 그 원문 자체가 60년대에 쓰여진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자와 감수자도 꽤 고생을 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제목을 원제 ‘Business Adventures’에 충실하려고 했는지 『경영의 모험』이라고 했는데,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영 세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살펴본 책의 내용과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비추어볼 때 『경영은 모험이다』 정도가 제목으로 더 낫지 않았겠나 생각한다.
『경영의 모험』은 총 12개 장에 걸쳐 기업들의 경영 실패 또는 성공 사례를 다룬다. 억지로 교훈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며 독자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한편,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다. 한 편 한 편이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여기에 다 나열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실패와 성공의 가장 인상적인 사례 하나씩만 꼽기로 하겠다. 아마도 그것은 ‘포드Ford의 자동차 에드셀Edsel의 실패’와, ‘제록스Xerox의 복사기 개발 성공’이 아닐까 한다. 이미 이 책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내 생각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먼저 첫 장에서부터 저자는 포드의 새로운 자동차 모델 에드셀의 개발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당시 에드셀 개발은 포드가 최고의 인재들과 풍부한 자금을 투입한 전무후무한 자동차 신모델 개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몇 년 후 에드셀은 포드 뿐 아니라 자동차 역사상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남는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보면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뜻대로 되는 것 만은 아니란 점을 새삼 깨닫게 되며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한편, 에드셀이 실패했음에도 그 프로젝트에 몸담았던 이들의 후일담이 더욱 눈길을 끈다. 이들은 훗날 완전히 업계에서 추방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영역에서 활약할 기회를 얻는다. 지금은 실패로 비추어지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나중에는 반면교사가 되어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다른 장에서는 제록스가 복사기라는 새로운 발명품으로 사무기기 업계의 강자로 떠오르는 과정을 살펴본다. 체스터 칼슨Chester Carlson이라는 무명의 발명가가 각각의 나뉘어있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조합하여, 제로그라피xerography라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담겨있다. 제로그라피는 그 자체가 복사기의 핵심 기술임과 동시에 제록스라는 사명의 뿌리가 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모든 대단한 발명품들이 그러하듯 복사기 또한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크게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로부터 오늘의 모바일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정보 가공 유통 발전의 도도한 흐름의 한 단계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제록스가 복사기라는 새로운 영역의 상품을 개발하여 상용화하고 이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두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당시 기업들의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제록스의 사회적 기부와 연구 개발R&D, Research & Development을 높이 평가한다. 이를 통해서 제록스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고 평한다. 즉, 저자는 제록스를 현대적 기업의 모범 사례로 들고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목차에서 제록스를 발견했을 때,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Graphic User Interface에 대한 아이디어를 훔쳐왔다는 그 유명한 제록스 파크PARC, Palo Alto Reseach Center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제록스 파크가 인터넷의 전신인 이더넷Ethernet과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등 시대를 앞서는 기술을 개발하며 인터넷 시대의 기반을 닦은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1969년에 나온 이 책에서는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인터넷에 올라온 이 책의 서평들 중에는 제록스 내용을 언급하며 파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도 있는데, 이는 실제로 책을 읽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저자가 강조했듯이 기술 개발에 대한 제록스의 열정이 있었기에 파크의 신기술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자가 제록스의 사회적 역할을 조명한 것이 핵심을 짚은 것임에는 틀림없다.
빌 게이츠는 이 책을 추천하는 글에서 “다른 경영서 저자들과 달리 성공에 대한 교훈을 단순화하거나 목록화하지 않고, 주제에 대해 깊게 관찰한 뒤 주요한 인물과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소개한다.”며 “시간이 지나도 경영의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 저자의 통찰은 여전히 의미 있다.”고 말한다. 또 “이 책이 유효한 것은 도전에 직면한 경영자들의 강점과 약점 등 인간 본성에 대해 다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도 빌 게이츠의 생각에 깊이 공감한다. 이 책이 놀라운 점은 여전히 현재 우리 주변의 경영 환경에 사례들을 대입해도 맞아 떨어진다는 것에 있다.
한편, 나는 이 책에서 소개한 다양한 경영의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통해서 그간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지금은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과 만나는 외과 의사이지만, 수년 전 불모지나 다름 없던 모바일 기반의 원격의료 서비스를 개발하여 회사를 경영한 바가 있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 경영의 경험이 내 인생에 가져다준 가장 큰 자산은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한 안목이다.
경영의 언어로 말하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나는 그것을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과 길거리의 현란한 광고들이 당신에게는 흥미거리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경영자 입장에서는 실로 가공할 무기들임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는 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사방에서 총탄과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곳곳에서 폭탄으로 바닥이 움푹 움푹 패이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들이 보인 것은 아니다. 나도 그 전에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회사를 만들고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의 실체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차차 알게 된 것들이다.
이런 나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하나 하나가 값어치 있고 실감이 나는 이야기들이다. 직접적으로 경영을 접해 볼 수 없는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이 책은 경영이란 것에 대해서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 역시 간접 경험은 간접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나는 병원의 일개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더 이상 경영자가 아닌 피고용자의 입장이라는 이유로, 적당히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는 이유로, 나 자신이 일에 대해 갖고 있던 엄중한 자세가 변하지는 않았나 돌이켜보았다. 내가 최종 책임자이던 때와 비교해서 지금은 병원이라는 큰 조직의 울타리에 안주하며 나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았다.
나는 새로운 생각의 확장에 이르렀다. 저자가 12가지 사례를 통해 보여준 ‘경영의 대상’은 비단 ‘기업’ 뿐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도 될 수 있다. 직장에서 주어진 일 하나 하나에 기업의 경영자가 고객의 일을 대하는 것과 같은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하면 ‘그 개인 자체가 기업이고 경영자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앞으로 병원 안팎에서 일과 관련하여 누군가를 마주할 때마다 일전에 경영자의 입장에서 고객을 대할 때 가졌던 마음 자세를 회복할 것이다. 그것이 상사, 동료, 환자, 누구이건 간에 ‘나’라는 ‘개인으로 이루어진 기업에 일을 맡긴 고객이라는 생각을 갖고 경영자의 마음으로 일에 임할 것’이다.
『경영의 모험』에 담긴 이야기들이 값진 이유가 세세하고 풍부한 사례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실패와 성공의 이야기들이 반세기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기업에도 여전히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경영의 본질이 기업이나 개인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나’ 자신이 경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 글이 곧 이어집니다.)